중선거구제의 폐단과 實例 (45회...

선거를 두 번 치르고 나니 1구 2인 중선거구 제도는 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제도가 아니라고 절감했다. 돈이 안 든다고 중선거구로 바꾼 모양인데 결과적으로 돈은 더 들고 지역 내 ‘소지역감정’ 유발에 기여하는 제도라 하겠다. 예를 들어서 상주 유권자들은 “코가 삐뚤어져도 상주사람은 상주사람을 찍을 낍니더”라고 말하는 것이다.

박정수 후보가 실력이 있는 것 알지만 상주에서는 상주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하고, 김천에서는 김천대로 김천사람이 상주사람 찍어주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들이 오고 갔다. 그뿐 아니라 당선 후에도 두 국회의원간의 반목 때문에 운동원들까지 편 가르기를 하게 되고 서로 공 다툼으로 별로 아름답지 못한 사건들이 많았다.

그런데 학자들이나 선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중선거구제나 대선거구제를 부르짖는데 그것은 탁상공론에서 나오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이론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저술한 교과서에도 그렇게 썼다. 하지만 막상 남편 선거운동을 체험하고 나니 현실은 이론과 달랐다.

그 당시 김천시민들의 숙원사업 1위가 감천교 확장이었다. 증가하는 시민들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노폭이 좁아서 늘 교통체증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이는 10대 국회 당선 직후부터 자나 깨나 감천교 확장을 위한 예산확보에 힘써온 것을 나는 안다. 그 일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민정당의 이진우 경북도당 위원장이 건설부장관이 대구 아양교 관계로 내려가는 길에 감천교를 시찰한다며 두 지역구의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다음해 예산에 산정이 된다고 해서 그이는 그날 마침 올림픽 특위모임 때문에 김천에 내려가지 못했다. 그 후 이진우 도당 위원장과 건설부장관으로부터 대구의 아양교 예산 20억 가운데 8억을 감천교 확장에 쓰기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 김영삼 총재, 데릭 캐나다 대사, 박충훈 부총리와 함께 한 남편 박정수 의원

82년 12월 3일 드디어 기공식이 있는 날이었다. 수천 명의 김천시민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이는 이 공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뛴 당사자였으므로 태평양건설의 김 회장에게 다리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달라는 부탁까지 해놓았다.

그런데 기공식 현장에 가보니 민정당원들이 “정휘동 의원님 감사합니다”고 쓴 현수막을 붙여놓았다. 우리 운동원들은 분명히 박정수 의원이 무소속이라도 발이 넓어서 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현수막을 보니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가 날짜까지 박아 넣은 현수막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민정당 측에서 기공식 날짜를 변경하려고까지 시도한 사실도 드러났다.

두 의원이 축사를 했다. 청중 속에서 “박정수 말 잘한다” “제일이다” 등 박수가 터지자 이번에는 민정당원들이 자극을 받았다. 민정당에서 정 의원이 유치한 예산이라고 고집을 해서 그이가 건설부장관에게 정 의원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이진우 의원과 같이 감천교 시찰 갔을 때 처음 만났다고 했다는 것이다.

진실을 부인하려는 측과 진실을 밝히려는 측간의 알력이 심화되어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이 양측 다 현수막을 철거해달라고 중재해서 사건은 불씨는 남긴 채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 하나만 보아도 중선거구제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의원 간의 불협화음으로 주민들을 분열시키지 않을 수 없는 제도이다.

▲ 10대 때 국회 본회의 발언을 하는 박정수 의원

영국에서 수백 년 간 지켜오는 소선거구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선거구제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유권자에게 선택을 쉽게 할뿐 아니라 선거자금도 교과서에 있는 이론과는 달리 중・대선거구제보다 훨씬 덜 든다고 생각한다. 중선거구제에서 우리는 돈과 사람이 더 필요했다. 후보자와의 개인적인 접촉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에 변화가 없는 한 우리나라에서는 대선거구제라 해도 돈이 더 들것이 뻔하다. 이론과 현실은 이 분야에서는 확실히 다르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국민회의에서 독일식 선거구 제도를 선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지역구 제도와 정당 명부제를 동시에 실시하는 2원적 선거제도를 말한다. 얼핏 보면 한국의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데 바람직한 제도같이 보여 나도 한때 찬성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다당제를 낳게 하는 폐단이 있어서 오히려 의회 내 안정세력 구축이 어려워지므로 정치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분단국가이며 아직은 냉전기류가 완전히 거두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당제의 폐단을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도 바라는 지역구도 타파는 영국과 같이 소선거구제를 통한 내각책임제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나 개인의 소신이다.

한편 1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부터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주말이면 그이는 지역구로 갔기 때문이다.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남편을 따라가고 방학이 되면 며칠씩 김천에서 지내곤 했다. 직장이 있어서 내조를 못해주는 데 대해 늘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