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바하마, 에쿠아도르, 홍콩,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카타르 등지에 정유공장을 지었고, 이란에 석유화학공장, UAE(United Arab Emirates)에는 정유공장과 담수화공장을 지어주었다.
창업초기인 1970년만 해도 외국에 나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원들의 해외경험은 개인에 따라서 달랐겠지만 초행자가 많았고, 대개 공통적으로 김치를 그리워했다. 또 온대 지대인 한국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사시사철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지방 기후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란에 다녀온 어떤 사원은 그곳의 열기와 모래바람을 얘기하며 “지옥이 어딘가 했더니 바로 거기더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한번 공사현장에 투입되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 1~2년을 계속하여 현지에 머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사원들은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으로 어려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타국의 생활을 잘 견디어 냈다.
그러나 에쿠아도르로 간 어떤 사원은 그곳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공사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아 본부인이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또 우리 사원이 처음 도착한 중동 지방의 해변에는 크고 작은 대합조개가 무수히 널려 있었다. 그곳 주민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조개를 안 먹기 때문에, 주먹만한 조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사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것들을 주어다가 포식을 하여 얼마 후에는 조개의 모습이 바닷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전엔지니어링이 공사를 하는 나라들을 부지런히 순방했다. 공사 진행상황을 살필 뿐 아니라, 사원들의 숙소에 함께 기거하며 그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가도 살폈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가사를 할 줄 몰랐다. 방은 어지러울 대로 어지럽고 엉망이었다. 나는 직접 비와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고 시장에 나가 쌀과 식료품을 사다가 사원들을 위해 밥과 찌개를 끓여주기도 했다. 솜씨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한국식 음식 비슷한 것이어서 사원들은 열광하며 먹어주었다.
회사는 어느덧 사원이 수백 명이 넘었고, 사업은 순탄하게 뻗어 나갔다. 엔지니어링을 하다 보니 한국 제도의 제약 때문에 부득이 업체수를 늘려야 했다. 예를 들어 건설법으로는 건설회사라야 건설을 위한 주계약자가 될 수 있고, 엔지니어링 회사는 용역만 맡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외건설촉진법이라는 게 있어 해외건설업 면허를 가지 회사라야 해외공사를 맡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한국에서 건설회사가 다른 분야보다 먼저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엔지니어링 회사의 자매회사로 신한기공건설주식회사(新韓機工建設株式會社)를 만들어 해외공사를 맡도록 했다. 신한기공은 공장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건설회사이다. 이후로 현대, 대림, 삼환 등이 해외 플랜트건설에 진출하였으며 대우건설이 해외건설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이 되어서였다.
내가 초창기에 중동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석유관계 일을 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왕비 동생인 카말 아담 씨와 같은 유력인사들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엔지니어링과 신한기공 두 회사는 기술 설계와 건설 양면으로 순조롭게 성장해 나갔다.
신한기공은 애초에 불과 500만원의 자본으로 발족했다. 경영체제는 강원석유 사장을 하던 6총 동서인 박만희 씨가 사장, 이남주(李南柱) 씨가 실질적인 경영을 맡는 전무가 되었다. 자본금은 수년 내에 36억원으로 늘어났다.
신한기공은 정유공장의 아스팔트 가공장치(Asphalt Oxidizer) 제작공장 설치에 참여했고, 유공의 인천터미널을 위시해서 정유공장, 화학공장, 저장고, 발전시설, 제철기계공장, 석유화학공장, 담수화 공장, 산소생산을 위한 저온시설을 수많은 건설사업을 수행하면서 크게 성정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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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정유공장(1971.) /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플랜트 수출로 기록된 싱가포르 정유공장 배관 설치 공사를 수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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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이 설립 후 처음으로 중후판공장 기계설치 공사를 했을 때 신한기공은 평화건업(롯데건설)의 하청을 맡아 공사에 참여했다. 이 공사는 제1기 설비공사로서 1972년 4월 준공되어 제철소 생산설비의 원조가 되었다. 전엔지니어링은 이런 종류의 공사를 하던 JGC와 함께 일하게 되면서 JGC와 깊은 유대를 갖게 되었다.
JGC는 지금까지 약 2만 건의 프로젝트를 국내외에서 수행한 실적을 가진 엔지니어링 회사이다. 1928년 10월 25일 동경에서 발족한 이 회사는 UOP의 공장 라이센스를 구입하고 나서 1930년부터 엔지니어링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5년 해외사무소를 처음으로 서울에 개설한 것을 개시로 세계 각국에 진출했다.
철강은 모든 산업의 기초물자이며 방위산업에도 필요불가결한 재료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에 제철공장을 세울 의도를 밝혔을 때 상당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초지일관 “자주적 103만 톤 사업계획의 수립”의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공장이 완성되었던 준공식 날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흔히 우리나라 공업이 중화학공업 시대의 문턱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벌써 문턱을 훨씬 지나 상당히 깊은 분야에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준공을 보는 이 포항제철은 생산규모에 있어서는 1차적으로 조당 103만톤 규모가 됩니다. 선진 여러 나라에는 지금 현재 연산 1,000만 톤이 넘는 대규모 공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이 공장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을 따라가기 위한 출발에 있어서 첫 개가를 여기서 올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공장은 금년부터 계속해서 260만 톤으로 확장 공사를 하고 또 계속해서 1979년 말까지는 700만톤 규모까지 확장할 계획을 지금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1980년대에 가면 우리나라 철강 수요가 국내만 하더라도 약 1,200만톤 내지 1,300만 톤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 하에 포항종합제철의 1차, 2차 확장공사와는 별도로 이와 병행하여 연산 약 1,000만톤 규모의 제2 종합제철공장 건설을 지금 예의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공장들이 전부 계획대로 순조롭게 추진되어서 1980년대 초에 가면 우리가 지금 지향하고 있는 100억달러 수출이라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100억 달러 수출을 할 때가 되면 총 수출량에 있어서 중화학분야의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약 60%를 넘게 될 것입니다. 100억 달러 수출에서 약 60억 달러 이상은 중화학 분야의 제품이 나가야 된다 하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준공을 보게 된 이 종합제철은 앞으로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하나의 근간이 되고 가장 깊은 핵심체가 된다는 것을 한번 느끼게 됩니다.......”
박태준(朴泰俊) 포항제철 사장은 공사업체들을 매달 현지로 불러 공사를 잘 해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회의에는 현대건설 정주영(鄭周永) 사장의 모습도 보였고, 나도 참석하곤 했다. 내가 못 갈 때에는 남기동 부사장이 대신 참석하기도 했다.
남기동 씨는 나보다 손위이지만 어려서부터 같은 혜화동에 살던 친구이다. 그는 후일 상공부 화학과장을 하다가 쌍용시멘트회사를 창설하는데 주역이 되었으며 그 후 동양시멘트 사장을 지냈다. 여담으로 부연하면 쌍용이라는 이름은 그가 주장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