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부터 나는 일본의 테이진[帝人]과 이토추[伊藤忠商事株式會社]가 선경(鮮京)과 공동으로 기획하는 성유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테이진은 일찍부터 이란에 석유채굴권을 얻어 석유시추를 하고 있었으며 그 원유를 사들일 수 있는 정유공장을 선경과 합작으로 한국에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계획을 드디어 실현하려고 그들은 나에게 교섭해온 것이다.
이 사업을 위해 테이진이 선경과 교환한 계약서에는 석유공장의 설계와 건설 및 경영권은 전적으로 전민제에게 맡긴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내가 거의 단독으로 울산정유공장을 지어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 실적을 평가했던 것이다. 사업의, 타당성 검토와 공장설계는 이렇게 해서 전엔지니어링이 맡게 되었다. 나는 한국일보사 뒤에 있는 빌딩에 사무실을 얻어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부의 석유사업 승인을 맡기 위해 수속을 밟고 있는 동안 테이진이 이란에서 시도하던 원유 시추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왔다. 원유가 나오리라 믿은 곳에서 안 나온 것이다. 그래서 테이진으로서는 달리 원유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나는 선경의 최종현(崔鍾賢)사장과 테이진의 오야 신조[大晟信造] 사장의 위촉으로 이토추와 테이진 사람들과 동행하여 사우디로 건너갔다.
사우디는 그때만 해도 원유생산을 완전히 국유화하지 못하고 미국의 메이저 오일로부터 이권료(利權料)를 받아 원유를 팔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우디는 자기 나라에서 나는 원유인데도 메이저 오일이 내는 이권료에 해당하는 분량만큼의 원유만을 팔수 있었다.
우리는 사우디에 도착하자 석유담당 대사 모하메드 조크달 씨, 페트로민(Petromin)의 총재 타헤르 씨, 파이잘(Faisal) 왕의 처남 카말 아담(Kamal Adaham) 씨, 석유상 야마니(Shaikh Ahmed Zaki Yamani) 씨를 만나 원유구매에 대한 교섭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카말 아담 씨는 자기 조카 베드라위 씨가 불포화 폴리에스터 수지 공장을 짓고 싶어 하는데, 도울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원유를 어떻게든 얻어내나 하는 과정에서 그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협상의 결과 미국의 에슐랜드(Ashland), 일본의 테이진, 이토추, 선경, 전엔지니어링이 공동으로 50%를 출자하고 나머지 50%는 사우디 측이 내는 자금으로 합작회사를 만들어 전엔지니어링이 불포화 폴리에스터 수지 공장을 짓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는 약속대로 이 공장을 제다에 지어 주었다.
선경석유는 원유공급의 길도 확보하고 정부의 허가도 나와 순조롭게 출범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1973년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일단 주춤하게 되었다.
이때를 전후에서 걸프오일은 나에게 석유공사를 무료로 넘길테니 가져가라는 말을 건네 왔다. 걸프오일은 쿠웨이트 석유채굴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걸프오일과 유공이 체결한 협정조건에는 “걸프오일이 쿠웨이트에서 나는 원유를 싼값으로 유공에 독점 공급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과거에 걸프오일이 유공의 건설과정에서 돈을 빌려주는 댓가로 요구한 조항이었다. 그러나 쿠웨이트가 다른 아랍 국가와 보조를 맞추어 유전을 국유화 하는 바람에 걸프오일은 더 이상 약속한 가격에 원유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다.
걸프오일은 내가 원유를 대신 공급할 능력이 있다면 석유공사를 나에게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제안을 마음 속에 접어두며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한편 선경에서는 걸프오일이 석유공사를 민간에게 넘길 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들이 맡으려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내게는 무보수라고 했지만, 선경이 인수할 경우 걸프오일이 내건 조건은 1억 달러였다. 당시 유공의 자산가치는 10억 달러를 넘었는데 이것을 원유공급 조건의 실행불가능성 때문에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최종현 씨는 그래도 테이진 이토추와 새로 공장을 짓는 것보다는 기존의 공장을 인수하는 것이 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대한석유공사 운영권은 걸프오일의 손에 있다가 결국 선경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현재 선경 소유의 유공은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나는 성격이 신중한 편이라 걸프오일의 유공 인수 제안을 놓고 여러 가지로 꼼꼼히 따져보고 있었다. 그러나 걸프오일은 유공을 정리하는 것이 시급했는지 선경에 이것을 넘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때 시작된 이 거래가 종결된 것은 전두환 정권이 노태우 정권으로 바뀌는 시기, 그러니까 1988년이었다.
1973년 전 세계는 유류 공급의 절대 부족으로 일대 경제난에 봉착했다. 미국은 원래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를 사용해왔으나 가스의 매장량이 12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량의 기름을 대용하게 되었다. 미국의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는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1972년에서 1975년 사이에 세계 원유 소비량은 대략 하루에 1,300만 배럴이었으며 이 중의 3분의 1을 미국이 소모하고 있었다. 당시 통계적으로 볼 때 전 세계의 원유매장량 5,000억 배럴 중에서 4,000억 배럴이 중동에서 나오고 그 중 절반에 해당하는 2,000억 배럴이 사우디의 몫이었다.(200년 측정치로 전 세계의 원유 매장량 1조 2,000억 배럴 중에서 7,600억 배럴이 중동에 있고, 그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600억 배럴이 사우디 몫이었다)
사우디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위주로 중동정책을 펴온데 대해 만만찮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은 사우디 뿐 아니라 중동의 나라들이 모두 공유하는 것이었다. 1차, 2차, 3차에 걸친 중동전쟁을 통해 아랍국가들은 서방국가가 일관해서 이스라엘 편을 들어 두둔해온 것에 대해 분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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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차 중동전쟁 발발 기사 (동아일보 1967. 6.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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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일어난 3차 중동전쟁만 하더라도 1차 중동전쟁의 정전협정에서 엄연히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골란고원에 이스라엘이 무단으로 경작조치를 발표하는 바람에 시리아가 분노하여 무력충돌을 유발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시리아는 이집트의 도움을 요청했고, 이집트도 동의하였으나 6월 5일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 기습공격을 가하여 아랍제국의 비행기 400대를 일조에 격파하여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바람에 이집트는 4일 만에 UN정전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에서 작전을 종료한 뒤 이번에는 주력부대를 골란고원으로 보내 시리아를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 기갑부대의 맹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정정권유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전쟁은 6일 만에 끝나 6일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요르단은 3일 만에, 이집트는 6일 만에, 시리아는 5일 만에 그리고 아랍제국 전체가 6일 만에 손을 들어 정전을 수락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