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중동전은 1973년 10월 6일에 일어났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건국에 성공한데다 세 차례에 걸친 아랍제국과의 전쟁에 모두 승리하여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그 결과 방위예산을 삭감하여 경계심이 약화된 데다 전국의 관심이 그해 10월에 있을 총선거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틈을 타사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의 연합군이 시리아 반도와 골란고원에서 일제히 기습을 가해왔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된 다옌과 군 수뇌부는 일단 후퇴한 후 전략을 세워 반격에 나섰다. 그들은 두 군데 전선에서 싸우는 것은 불리하기 때문에 먼저 시리아군과 결전을 벌인 다음 이집트 군을 상대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이스라엘 군은 골란에서 시리아군을 격퇴하고 다음으로 시나이반도에서 이집트 군의 방어선을 뚫고 수에즈운하를 건너서 수에즈시를 점령했다. 뒤 이어 10월 28일에는 UN안전보장 이사회가 UN군 긴급파견을 결의하여 제4차 중동전쟁을 마무리 짓게 했다.
이 전쟁은 역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으나 과거의 전쟁과는 달리 아랍인 측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긍지를 회복하였고 그것을 깃점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정치적으로 무기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9월 1일에 시리아는 국내 주요 석유회사의 외국인이 소유하는 51%의 주식을 일체 국유화 한다는 폭탄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국유화학 석유회사에서는 원유를 1배럴당 6달러로 팔되, 금으로 환수 가능한 화폐로만 거래한다고 하였다. 이 가격은 국제환율 변동과 원유시장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수시로 재조정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은 서방세계에 일대 에너지 위기를 몰고 왔다. 지금까지 모든 에너지원을 석유에만 의존해오던 서방세계에서는 석유부족으로 인해 기간산업의 생산이 감축되고 그 바람에 야기된 가격상승으로 세계경제는 막심한 불황과 인플레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순조롭던 경제성장이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고 고물가와 인플레의 위협 앞에 민생은 오그라들게 되었다. 지금까지 친이스라엘 노선을 가던 서방세계는 부득이 전 아랍중동정책으로 방향을 바꿀 태세를 갖추었고 OPEC(석유수출국기구) 측에서는 메이저 오일이 독점하던 원유가의 결정권을 장악하여 세계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왕은 9월 3일 경고문을 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편중하는 정책과 이스라엘에 대한 무제한 원조 제공을 중지하라. 미국이 이 경고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사우디는 원유 생산을 줄일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 OPEC은 9월 16일에 빈(Vien)에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원유의 기본가격을 규정했던 테헤란 협정과 트리폴리-라고스 협정내용을 수정하여 원유가격을 대폭 인상하기로 하고 10월 8일부터 서방 원유판매회사를 상대로 가격 인상 협상을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OPEC의 10개국 석유장관들은 시리아가 단행한 서방 6대 석유회사의 51%자산 국유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서방 석유회사가 대항한 경우 OPEC가 집단행동으로 나올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하여 시리아정부가 시작한 정책은 전 세계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 이라크, 쿠웨이트, 이집트, 정부는 자국 노동자에게 여차하면 파업을 벌여 미국 메이저오일의 문을 닫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10월 17일에 있었던 OPEC회의에서는 이라크, 이란, 사우디, 쿠웨이트, 아부다비, 카타르의 6개 산유국이 원유가를 17% 인상키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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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파동으로 인해 맞은 비상 사태를 전하고 있는 동아일보 1973년 11. 27.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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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판국에 이틀 후인 10월 19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220만 달러를 원조하겠다고 발표하여 아랍권의 반미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한편 4차 중동전쟁은 10월 21일 아랍과 이스라엘이 휴전에 들어감으로써 일단락 지어졌다.
사우디는 원유를 대폭 감산하면서 수요국가들을 3가지 등급으로 분류하고 등급에 따라 차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3가지 등급이란 ①우호국 ②비우호국 ③기타였다. 아랍 우호국에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 터키, 레바논,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인도, 튀니지, 이집트, 브라질이 들어 있었고, 비우호국에는 한국, 미국, 일본, 스페인, 필리핀이 들어 있었다.
비우호국에 대한 원유공급은 5~20% 감량이 예상되었다. 이러한 조처는 미국을 주 대상국으로 한 것이긴 했으나,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도 함께 포함되는 것이었다.
한국은 석유파동이 세계를 덮쳤을 당시 제3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 중에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연두기자회견에서 1980년대 초까지 수출에 1백억 달러, 국민소득 1인당 1,000달러를 달성하여 상위 중진국이 되도록 중화학공업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언명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철강, 비철, 금속, 조선, 전자, 화학산업 등을 선정하여 중점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공업육성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해야 가능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OPEC 10개국은 12월 1일부터 원유생산을 80% 감산하고 가격을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잘 나가던 5개년 계획에 찬물을 끼얹고 국가경제에 중대한 타격을 주는 청천의 벽력이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걷기운동, 주간소등, 광고용 네온사인 규제, 대중목욕탕 신규허가 억제, 관광레저여행 제한 등의 조치를 내렸다. 야간업체들은 영업시간을 단축해야 했고, 이를 어긴 업주들은 영업정지를 당했다.
레미콘 공장에서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시멘트가 굳어 버리고 화학 섬유공장에서는 기계가 멈추어 기계 속에 있던 원료가 녹아버리는 등 웃지 못 할 불상사들이 연발했다. 서울의 밤거리는 6.25당시를 연상시킬 만큼 어두워졌고 시민들 생활은 여러 가지 제약을 받게 되었다.
한국이 당황했던 것은 기름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데다 비축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기도 힘들고 가격이 마구 뛰는 원유는 그때 마침 호르무즈(Hormuz)해협을 지나고 있는 사우디 유조선이 20일 후 한국에 도착하면 마지막이었고, 그 다음에는 경제발전 계획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