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일은 이렇게 해결되었지만 나 개인의 사업은 복잡한 국제사정으로 난관을 겪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혁명의 소용돌이와 중동전쟁의 싸움터가 된 이란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3년 4월 이란의 국영석유화학회사(National Petrochemical Company)와 일본의 미츠이[三井] 그룹 등 5개사는 50대 50의 합작으로 이란-일본석유화학회사(Iran Japan Petrochemical Company)를 설립하여 이란에 대단위 석유화학 단지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총공사비가 45억 달러에 달하는 대공사에 전엔지니어링과 신한도 하청업체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란의 국내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격동적이었다. 당시 이란 국왕 팔레비는 친미 친영 노선을 위하여 석유 채굴권과 판매권을 영미에게 양도하여 37년간의 재위를 누려왔다.
팔레비는 구미(歐美)를 본 딴 근대화정책을 채택하였으나 경제 개선이 뒤따르지 못하고 그가 내건 토지개혁은 오히려 대지주와 성직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이슬람 성직자들은 아야툴라 루훌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의 지도 아래 팔레비 비판운동을 벌였다. 국가 정보기관에 의해 반대하는 국민이 1만 3000명이나 살해되었다. 국내에서는 국왕에 대한 저항이 더욱 거세어 갔다.
한국과 이란은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1977년 서울과 테헤란에 각각 <테헤란로>와 <서울로>를 만들기까지 했다.
이런 와중에 이란에서 LIPC의 하청공사를 하고 있던 전엔지니어링과 신한기공은 공정률 70~80%까지 완성해가고 있었으나 정세가 악화일로로 들어서자 1979년 2월 하순부터 5차례에 걸쳐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공사팀을 해체하지 않고 정세가 호전되면 즉시 재개할 생각으로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의 희망과는 달리 정세는 악화되어 갔다.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미국인 50여명이 인질로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편 외국에서 귀국한 호메이니는 팔레비를 몰아내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여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팔레비가 펴던 서구화의 반대되는 ‘이슬람 근본회귀’의 슬로건을 내걸고 아랍세계의 맹주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의 인질이 구출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자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더욱 냉각되어 갔다. 그런 속에서도 이란은 LIPC에게 공사 재개를 강력히 요구했다, 1980년 3월 일본 측에서는 공사 재개 준비를 시작했으나 9월에 이란-이락크 전쟁이 터져 중단되고 말았다.
1980년 9월 신한기공의 김명기(金明基)씨 등 3명의 팀이 LIPC공사 재개를 외한 예비조사를 하기위해 일본팀과 함께 아바단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20여일 동안 소식이 끊긴 채 있다가 터키의 앙카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무사히 귀국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그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전엔지니어링과 신한기공에게 큰 충격이었다. 토목 건축시설의 피해는 비교적 가벼웠으나 기기, 전기, 계장시설을 거의 완료된 상태에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의 피해액도 천문학적이었다. 우리 회사는 공사비로 450만 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송금이 지연되는 동안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져 돈을 송금 받는데 실패했다. 이것은 회사로서는 큰 손실이었다.
이라크의 선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락크 전쟁은 미 대사관 인질사건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이 이란 측에 팔레비의 동결된 재미 자산을 반환키로 동의한 것이다. 인질은 1981년 1월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무사히 풀려났다.
당시 중동지역에서는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이 확장일로에 있었다. 1978년 5월에 아프카니스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이란의 이슬람세력에 영향을 받은 저항세력들이 항쟁을 시작했다. 이 항쟁은 곧 내전상태로 확대되어 갔다.
좌익정권은 세력 유지를 위해 소련에 지원을 요청하여 소련의 군사고문단이 대거 투입되었다. 그 결과 1979년 12월에는 친소 강경파 카르말이 소련군의 간섭 하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소련의 위성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세력의 저항은 끊이지 않아 고르바초프 정권이 등장한 후인 1988년에야 소련은 아프칸에서 완전 철수했다.
1988년 8년을 글어온 이란-이라크 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란의 전쟁 피해액은 3,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1989년 10월 이란과 일본은 IJPC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이란 NPC가 공사를 계속 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측이 출자금 722억 엔과 ICDC의 대여금 1,259억 엔을 포기하고 정산금으로 1,300억 엔을 이란 측에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머나먼 중동까지 나가서 열심히 수행하던 사업이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고 파괴당하는 사례를 지켜보면서 나의 마음은 참담했다. 국제정치의 현실은 작은 나라의 작은 기업이 미치지 못하는 차원에서 냉혹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