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커다란 참나무
전옥제 | 막내동생
내가 민제 오빠를 생각할 때, 나는 커다란 참나무를 떠올린다. 그는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옆에 있었다. 사실 그는 내게 오빠 이상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쭉 그래왔듯이 지금도 나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이다.
민제 오빠는 세 오빠 중 맏이이긴 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오빠는 아니다. 철없고 낭만적인 시절에 나는 오빠에게 내가 외국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 이것은 매우 드물고도 ‘점잖은 사회’에서는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었다.) 그는 나의 세 오빠 중 가장 마음이 열려있고 자유주의적이었다. 둘째 오빠는 나와 말을 하지 않았고, 셋째 오빠는 정신을 잃다시피 했다.
민제 오빠에 대한 나의 가장 이른 기억은 아주 어린 시절 어느 비 오는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오빠들이 모두 집에서 뛰어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세 오빠가 모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어나갔고, 물론 나도 따라가다가 넘어져서 코를 긁혔다. 오빠는 단단히 혼이 났다.
나는 오빠에게 짐이었음이 분명하다. 12, 13, 14 혹은 15세 먹은 소년이 2, 3, 4 혹은 5세의 여동생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오빠는 내게 친절하고 잘해주었다. 나는 그가 나를 등에 업고 어르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런던에 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이미 50줄에 들어섰을 때 같이 방문 온 그의 학교 시절 친구가 자기도 나를 업어주곤 했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돌아 다닌던 시절 민제 오빠와 언니의 집은 모두 한국의 딸들이 친정으로 돌아오듯이, 나와 로빈과 내 아이들이 돌아갈 수 있는 친정이었다. 민제 오빠나 언니도 오스트레일리아에 오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오빠 부부는 시드니, 아들레이드, 그리고 에이어즈 록(Ayer's Rock)에도 오셨다. 마지막 방분하신 것은 2009년 5월 우리의 50번째 결혼기념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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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동생 옥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남편 애슈윈(Robin Ashwin)의 결혼직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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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을이 온 지금에도 민제 오빠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나의 참나무이다. 그러나 이제 내가 오빠를 위해서 뭔가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처럼 나는 수천마일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으며, 따라서 나는 농담과 웃음과 삶의 기록을 그와 공유하지 못한다. 내가 좀 더 가까이 있었으면 한다.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
로빈 애슈윈(Robin Ashwin) | 매제, 막내 동생 옥제 씨의 남편
1956년부터 1958년까지 나는 ‘한국의 통일과 재건을 위한 유엔위원회(UNCURK)의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로 서울에 있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거의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 기구의 이름으로는 다소 말이 안 되는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기구가 한 가지 공헌한 것이 있다면 나에게 전민제 씨의 여동생인 옥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다.
전옥제 양은 당시 이화여대 불문과 강사였으며, 프랑스 작가들의 통역사로 문인들이 티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작가들 때문에 나도 참석을 하게 되었다. 약간 사실을 왜곡하여, 나는 일주일 후에 전 양과 저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우리는 내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갈 때까지 18개월 내내 정기적으로 만났다.
당시에 옥제는 나를 자기의 어머니에게 소개했지만 민제나 다른 두 오빠들에게는 소개하지 않았다. 민제나 다른 오빠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하리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지만, 그들은 반대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옥제의 어머님이 1958년 후반에 돌아가셨다. 옥제가 그 슬픈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나는 그녀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와서 나와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답장을 썼다. 다소 망설이던 그녀는 동의했고, 시드니로 날아왔으며, 우리는 1959년 5월 결혼했다.
1960년대 초반에 우리는 런던과 독일 본의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에 차례로 배치되었다.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에 민제가 우리를 방문하러 왔던 것이 내가 그와 가진 첫 만남이었다. 그는 당시 제네바에 살면서 UNCTAD(유엔 무역개발기구)에 근무하고 있던 둘째 오빠 명제와 동행이었다.
그들이 체류하는 며칠 동안 나는 각각 사업계와 경제계에서 명확히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두 명의 뛰어나게 명석하고 성취도가 높은 처남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을 돕고 싶었으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외교 업무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별로 주지 않았다.
그 후 몇 년간 우리는 민제와 명제를 좀 더 자주 보았고, 그들의 아내인 영균과 향주도 만났다. 민제는 우리가 방콕, 뉴욕, 카이로에 근무할 때 방문하여 며칠씩 머물렀으며,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캔버라에 오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문제나 걱정도 민감하게 공유했으며 재정적으로나 다른 도움이 필요할 때 재빨리 도와주었다. 우리가 그에게 비슷한 역할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항상 걱정이었다. 최선의 방책은 아마도 우리가 중동이나 다른 곳의 그의 사업 활동을 돕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내가 본의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로 있을 때 셋째오빠 학제도 만났는데, 그는 새로 임명된 한국의 과기처장관의 자격으로 그곳을 방문하였다.
내가 1991년 외무부에서 은퇴했을 때, 민제는 그의 엔지니어링 사업을 접었으나, 은퇴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업분야에서 폭넓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자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 후에 우리는 그의 가족과 여러 차례 서울에 머물렀고(때로는 그들이 아들레이드에 와서 우리와 머물렀다) 우리는 그들의 성취에 대하여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기술자와 과학자로서의 민제가 한국과 다른 나라의 화학, 석유, 그리고 건설업계에 남긴 실적, 그리고 영균이 문학연구 분야에 남긴 업적, 그리고 그의 아들 딸들이 사업과 학계에서 이룬 업적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열려있고 이해 깊은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는 전민제 박사는 1953년 이후 대한민국의 재건과 발전과 성공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이 기여는 확실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