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애연가
한 반년 정도 다녔을까 하였는데, 전 회장님이 그 당시 기술담당 상무이사이셨는데 무슨 일인지 자본주들과의 충돌로 그 회사를 퇴사하시게 되면서 성정자 여사, 이선종 선배를 따라 나도 함께 그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전 회장님은 그때 을지로 2가에 건물 한 층을 빌려 <전화공설계소>라는 간판을 걸고 그곳에서 우리들이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전화공설계사무소는 한미화학 건설 이전에도 몇 년 유지하셨던 회사 명칭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공부하는 일이고 전 회장님이 어쩌다 일거리를 가져 오시면 성 여사가 주로 많이 하셨고,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어떻게 하여 저희들 급여도 챙겨주셨습니다. 어쩌다가 스폰서가 생기면 고급 음식점에 가시는데 우리들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때부터 고급 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복사기 같은 것이 없어서 도면이나 목사는 거의 청사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조직에서 내가 막내이므로 햇볕 쪼여 청사진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6촌 형이 와서 보고 대학 졸업하고 그런 일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때 전 회장님은 대한조선공사 남궁연 사장과 함께 한국석유화학회사를 설립하셔서 울산에 정유공장 세우시려고 한국석유 상무이사님으로 일하셨습니다. 우리 KOCO클럽 회원이며 지금 미국 LA에 사는 문인일 선배가 그때 그곳에서 일하셨습니다.
당시 전 회장님은 하루에 럭키스트라이크(Lucky Strikeㆍ담배 브랜드의 하나) 두 갑을 태우시는 지독한 애연가셨는데, 방안의 공기가 너무 탁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 즉시 담배를 끊으시고 지금까지 오셨습니다.
얼마 후 전화공설계사무소는 남대문 5가로 자리를 옮기시고 그곳에서 적은 규모의 황산공장 설계ㆍ건설, 시멘트공장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feasibility study) 등의 일을 수행했고 저도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석유는 없어지고 5·16군사정부의 비상계획본부가 정유공장 건설을 추진함에 따라 전 회장님도 그 일에 열중하셨고, 그 일에 브리핑자료를 만드는 작업이 수시로 일어났는데 내가 글씨를 잘 쓴다고 그 일이 모두 나에게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하는 일이 너무 지루하던 중 친구들의 권유가 많아 한국화학 인천공장으로 회사를 옯겼습니다. 폐 질산 회수시설을 설계해보라는 지시에 따라 ‘폐 질산을 증류하는 단위조작’ 공부를 많이 하였습니다. 3개월이 지나니까 대한석유공사라고 하는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입사시험 광고가 나왔습니다. 그때 한 Unit씩 방호벽(Dike)로 에워싸여 있는 다이너마이트 공장 하나가 폭발하여 그 내부 작업하던 인원과 시설이 흔적도 남지 않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대한석유공사의 입사시험은 1962년 8월인가 청파동 신광여자고등학교에서 치렀는데 지망생이 너무 많아 학교 교실 모두를 채웠다고 들었습니다. 나에게 배정된 교실에 들어가니 내 자리는 맨 앞줄이었고, 문 가까운 쪽이었습니다. 시험 치는 동안 전 회장님(당시 대한석유공사 기술담당 이사)께서 각 방을 돌아보셨던 것 같은데 내가 시험 치르는 방에 들어오시자 마자 저를 보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인사도 못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무섭게 보이셨으니 나의 합격은 어렵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험성적이 나쁘지 않아 소수 인원을 뽑는 합격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미화학, 해림화학, 전화공설계사무소에서의 경험 덕분에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후일에 들었습니다만 전 회장님께서 그 결과를 보시고 ‘그래도 내 밑에서 훈련 받은 친구가 잘 하는구나’라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 회장님은 대한석유공사 부사장으로 계시면서 석유공사 내부에 강력한 엔지니어링팀을 구성하자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공장에서 서울 본사로 발령하셔서 프로젝트 엔지니어,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보직을 주셨습니다. 전 회장님이 1970년 대한석유공사를 그만두실 수밖에 없으셨던 바로 그 직전까지도 저에게 “이제 우리 마음대로 엔지니어링팀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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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년 일본 나라(Nara)에서 서울대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이재성 교수와 함께 한 전민제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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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기술수준
전 회장님은 대한석유공사를 접으시고 전화공설계사무소의 맥을 잇는 전엔지니어링주식회사를 대한석유공사 근처에 있는 빌딩에 건립하셨습니다. 성정자 여사와 KOCO클럽의 민석홍 사장은 바로 전엔지니어링에 합류하셨습니다. 나를 포함한 대한석유공사의 몇몇 엔지니어들은 점심시간 또는 퇴근 후에 전엔지니어링의 경험 없는 젊은 엔지니어들, 제도사들에게 Process Engineeering, 탑조설계, 배관설계 등을 무보수로 가르치는 아름다운 일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당시 엔지니어링 회사를 무척 하고 싶었습니다. 대한석유공사의 모든 프로젝트를 외국 엔지니어회사에 맡겨야 하니 우리나라는 언제 저들의 기술을 배워 우리 기술로 우리의 공장을 지을 수 있겠나, 그 꿈을 이루는 것이 그때의 나의 소망이었습니다. 내가 다 못하면 누군가 이어서 언젠가는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니 젊어서 빨리 시작하자는 각오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맡고 있었던 Crude Unit, Common Utility Plant 및 석유화학 부대시설 건설 프로젝트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였고, 이들의 완공 후인 1971년 말에야 전엔지니어링 주식회사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 3, 4년 간은 교육프로그램이 주였고, 겨우 배관설계를 할 수 있게끔 되었을 때 전 회장님은 일본에서 배관설계, 구조설계 등의 일들을 얻어 오셨고, 그러면서 국내 엔지니어링 회사에 맡기는 국내 프로젝트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전 회장님은 정부 중화학공업 계획에 협력하여 창원공업단지, 온산공업단지 계획에도 외국기술회사의 협력을 통하여 지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는 민석홍 사장이 맡아서 수행하였습니다.
한편 전 회장님은 새로운 정유공장을 구상하시고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테이진, 이토추, 미국 애슐랜드 캐미컬, 선경, 전엔지니어링, JGC가 참여하는 온산 정유공장을 추진하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타당성 조사는 성정자 여사가 주로 맡아 하셨고, 거대한 분량의 조사결과를 엮어 내셨으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승인이 미루어지면서 성공하지 못한 사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1977년에는 애슐앤드 캐미컬의 기술도움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홍해 연안의 도시)에 불포화풀리에스터 수지공장을 턴키 수주하여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1977년, 1978년에는 이수화학 연성알킬공장을 기초설계부터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엔지니어링의 사세는 신한기공과 이수화학과 함께 나날이 확장되었습니다. 대우그룹에 넘겨지기 전의 전엔지니어링의 기술 능력은 우리나라 최고의 수준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신한기공에서는 건설을 배우고 이수화학에서는 공장 운전을 배워, 그러한 기술로 Process Engineering으로부터 상세설계 detail Engineering, 건설, 시운전, 공장운전 등을 일괄 수행할 수 있다는 전 회장님의 기술경영 포석에 의하여 엄청나게 큰 기술,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링 회사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체적인 영업활동은 전 회장님이 모두 맡아서 해주셨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1980년 군사정부의 해외건설업 개정에 따른 신한기공의 해외공사 수주불능 조치로 신한기공의 경영이 어려워졌고, 회사의 자금 관리 기술이 부족했던가? 1983년 12월이 끝이었습니다. 전 회장님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었을 것입니다. 이 충격을 이기신 오늘이 전 회장님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도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그러한 충격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배울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사회적 재활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서원하셨던 아내는 목회자 박사 공부를 하였고 지금은 시골 개척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과거를 잊어버리는 버릇 때문에 지금의 삶에 무척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전 회장님과 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로스엔젤레스 남쪽에 있는 Saddlebak 교회 담임목사이신 워렌 목사가 2002년에 펴내고 2003년 베스트셀러가 된 ’목적지향의 삶‘에서 주신 말씀처럼 나의 삶을 하나님이 전 회장님을 통하여 이루어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주위의 많은 분들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저를 돕게 하셨다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 회장님 오래 오래 나 교수님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지내시기 바랍니다.
2011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