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분해시설 건설 준비 - 수행학습
이사님은 피츠버그 본사에서 본사 중역들과 회사의 나프타분해시설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 사업에 관한 기본방침 및 계획에 합의를 보신 후 프랭크 파일을 대동하고 휴스턴 소재 실무회사 사장들을 만나 합의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위한 시행계획에 합의하셨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 제가 엔지니어링 부서 전문가들과 함께 입찰안내서를 작성하기 위한 사업지시와 필요한 업무지원의 제공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프랭크 파일의 대동은 이사님의 무게와 격을 한층 높이는 것이어서 회담도 순항하였을 것이 분명하고(저를 회의에 함 차례 대동하심), 점심식사나 저녁식사를 최상의 장소로 모실 뿐만 아니라 그 태도가 정중하였습니다.
또 회식이 있을 때에는 저를 항상 합석시켜 주셔서 사무실에서 같이 작업하는 기술자들이 말만 듣고 가보지 못한 곳을 저만 쉽게 다녀온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높으신 분을 모시고 다니면서 호강도 하고 견문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있었던 실소를 금치 못할 일화 두 가지.
일화 - 하나
점심이나 저녁을 시작하기 전에 이사님을 포함하여 모든 분들이 마티니와 얼음(취향에 따라 레몬 조각을 첨가하기도 함)을 두어 잔씩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마실 것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마실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딴 분들이 마시는 것을 당연히 마셔야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저도 같은 걸로’ 주의로 나갔습니다.
이사께서는 중앙에 앉으시고 말석에 앉아있는 저와는 거리가 있어서 도움을 주실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건너편에 앉아 있던 저스티스 바안즈(후일 프로젝트 매니저로 같이 일함)가, “너 마티니를 좋아하느냐”고 하기에 아니라고 하였더니 “그러면 위스키 사우어를 마셔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여서 이후 어디서나 위스키 사우어 전문이 되었으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여전하였습니다.
일화 - 둘
어느 점심식사 자리. 메뉴에서 먹을 것을 고르는데 당시에는 식탐도 많고 같은 것이라면 비싼 것으로 고르고 싶은 마음에 주방장 샐러드, 수프, 주요리, 커피 순으로 주문하였는데 멀리서 어찌 들으신 이사님 “그걸 다 먹으려고?” 제 대답 “그럼요.” 주방장 샐러드가 한 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부끄러운 실수를 통하여 미국생활을 익혀나갔습니다.
나프타분해시설 본격화
이사께서 휴스턴을 떠나신 후에 저는 숙소를 워위크호텔에서 걸프오일 가까이에 있는 사보이 필즈호텔(Savoy Fields Hotel)로 옯겼습니다. 당시에는 미화 25달러의 일당으로 모든 것을 꾸려 나갔어야 했으며 작은 부엌이 붙어 있어서 서울에서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던 저에게도 여러모로 경제적이고 편리하였습니다.
|
|
| ▲ 에너지의 도시 휴스턴의 2000년대 [출처 ; 휴사모] |
|
휴스턴에서 입찰안내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원이 서울 본사로부터 왔어야 했으며 작업의 협의와 지원을 위하여 기술부장(문인일)과 석유화학부장(이홍석)이 다녀갔습니다. 문인일 부장의 체류기간 중에는 자동차를 임차하여 주말에는 휴스턴 근방 여러 곳을 방문하기도 하고 특히 샌 안토니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박람회 ‘헤미스페어68’의 한국관을 방문하고 감동하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휴스턴에 둥지를 틀고 있으니 걸프오일이 기술원조협약에 따라 제공하는 훈련프로그램 때문에 휴스턴을 방문하거나 경유하는 회사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주말 나사(NASA)의 우주센터 방문이 필수코스였고, 운이 좋아 제가 요리하는 특식(김치볶음밥이나 찌게 등)을 대접받는 행운을 누린 친구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4월 중순에 이사께서 부사장으로 승진하시어 모든 기술직 사원들의 축복을 받으시고 저희들의 사기를 높여주셨으며, 정유시설의 확장에 더하여 석유화학사업과 윤활유 기유사업으로의 다변화, 그리고 장거리 송유관 시설의 건설 등 회사의 급격한 성장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회사와 함께 부사장님의 발전과 성장은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의 첫 휴스턴 체류 중에 다시 들러주신 부사장님, 전체 프로젝트를 BTX 방향족화합물을 위한 패키지와 EF올레핀(에틸렌계 탄화수소)을 위한 패키지로 분할하여 전자를 실행하기로 결정하시고 미덥지 못한 저를 지도, 지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행으로 걸프오일의 조직과 사람들 속에서 맡은 일을 나름대로 괜찮게 수행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때에 남겨주신 두 가지 조언. 하나는 미국사람과 어려운 협상을 하여야 할 경우에는 상대방은 여러 사람이 필요에 따라 파상으로 줄기차게 밀고 오기 때문에 체력(수면과 주량 포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같이 일하는 미국 동료들이 별거 아니더란 우쭐한 저의 생각이 어떻게 이사님께 들켰는지 미국 사람들은 조직의 상위로 올라갈수록 똑똑 유능하여지고 너와 비교하려면 네가 우리나라에서 속하는 층위와 동일한 층위에 속하는 미국사람과 비교하여야 한다고 경계하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엘리트 의식과 일에 임하여 가져야 할 인내력을 자극하여 주신 조언이었고, 이후 큰 지침이 된 것들이었습니다.
8월에 들어 나프타분해 프로젝트의 관리, 집행을 위한 전담부서로 석유화학 프로젝트부가 신설되고 프로젝트 책임자 저스터스 바안즈, 부책임자 박종률, 프로젝트 엔지니어 김정석, 조재수, 허달의 진용이 구성되었습니다. 회사로서는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고 기술적으로도 가장 복잡한 시설을 건설하는 중대한 사업이었습니다.
나프타 증기 분해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M. W. 켈로그(이하 MWK), 러머스, 스톤 앤드 웹스터, 유오피 / 프로콘 등에 입찰안내서를 발송하고 접수한 제안서를 서울과 휴스턴 엔지니어링 부서가 협력하여 비교, 평가한 끝에 계약자로 뉴욕주 뉴욕 소재 MWK를 선정하였습니다. 따라서 1969년 4월 이후 저는 김정석과 함께 MWK 사무실에서 주재기술자로서 프로젝트 매니저 저스티스 바안즈, 공장 기술자 랄프 컬랜드와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보고선은 저스티스 바안즈, 걸프오일 엔지니어링 매니저 앨든 노먼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