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돌연 38선을 넘어 남침했다. 이것은 완전히 허를 찌른 공격이었다. 마음 놓고 있었던 국군은 일시에 몰려든 공산군에 의해 밀려나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안심하고 자리를 지키라는 허위방송을 하면서 하나 밖에 없는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재빨리 남쪽으로 후퇴했다.
불시에 이북 탱크가 서울로 들어오더니 빨간 리본을 가슴에 단 사람들이 설치고 날뛰며 모든 공공기관은 인민위원회가 차지했다. 동회에는 정치보위부가 들어서고 공산군은 수시로 민가에 들이닥쳐 지주, 자본가, 농민, 노동자의 착취자인 이른바 악질분자들을 잡아갔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벌이던 이들이 사회주의를 사상의 주축으로 삼았듯이 이 시기의 지식인들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작용하여 좌익이 불법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좌익사상으로 기우는 성향이 있었다.
그러나 6.25는 막연히 사회주의를 동경하던 사람들의 몽상을 여지없이 깨는 작용을 했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에 들어온 인민군들은 실망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100배나 가혹하고 무지스러웠다. 그들의 하는 일은 주로 남한의 물자를 닥치는 대로 북으로 실어가고 사람들을 무작정 잡아들이는 일인 것처럼 보였다. 이북 점령군이 만들어 낸 공포의 무법천지는 정치적 혹은 사상적 이데올로기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남한 주민들은 공산군 치하가 어떤 것인지를 넌더리나게 실감했다. 김일성은 6.25가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Iosif V. Stalin)에게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있었고, 또 마오쩌둥(毛澤東)에게서도 같은 약속을 얻어내고 있었다. 한편 남한에서는 여수 순천사건으로 인하여 8개 사단 중 4개 사단이 지방에 파견되어 내려가 있었으며 군비도 북한군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즉각적인 요청을 받은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를 긴급 소집하여 북한의 남침행위를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회원국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미 해군 7함대를 급파하여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동시에 해 공군을 파견했다. 그리고 6월 28일 도쿄에 있던 미군 극동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元帥)를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한국전에 참가한 16개국 군대의 총 사령관이 되었다.
국군은 초반부터 밀리더니 맥없이 수원, 오산을 내주고 금강으로 후퇴했다. 정부는 대전에 일단 자리를 잡았다가 다시 대구로 옮겨가고 마침내 부산까지 내려갔다.
나의 약혼자 영균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와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상황이 갈수록 긴박해지자 나는 약혼자와 운명을 같이 하자면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변이 터진 후 나는 혜화동 우리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내내 처갓집에 숨어 있었다. 남자들은 집에서 나서기만 하면 의용군으로 잡혀가기 때문에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8월 1일 장인 장모님 앞에서 정화수(井華水) 한 그릇을 떠 놓고 맞절을 했다. 이것이 우리의 결혼식이었다.
8월 2일 그래도 나는 혜화동 우리 집에 결혼소식을 알려야 되겠기에 길을 나섰다. 그러나 효자동에서 중앙청(지금의 경복궁 터)까지 가기도 전에 의용군으로 잡히고 말았다. 나는 그 길로 남산 밑에 있는 초등학교로 끌려갔다. 일본시대에는 히노데[日出] 소학교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교정에는 나처럼 잡혀온 많은 청년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교사로 들어가 공중전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사태를 알렸다.
한참을 높은 학교 담 너머로 밖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달려오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담장 안에 나와 길가에 선 아내와의 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너무 멀었다. 우리는 서로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는 호박잎에 싼 주먹밥 뭉치를 담장 위로 던져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나와 말 한 마디 건네 보지 못한 채 아내는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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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의 장정들이 인민의용군에 징집되어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출처 ; 전쟁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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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자 지휘관이 우리를 집합시켰다.
“몸이 아픈 자는 왼쪽으로 가고 건강한 자는 제 자리에 남아 있어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왼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나는 그 명령이 심상치가 않아 그대로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움직임이 멈추자 지휘관은 사병을 시켜 왼쪽에 대고 총을 쏘게 했다. 위협사격이었다. 왼쪽에 갔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다시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들 중 여러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소동이 일단락 지자 우리는 대열을 짓고 행진을 시작했다 대열은 을지로를 거쳐 종로거리를 통해 동대문을 향해 갔다. 날이 저물어 사변은 완전히 깜깜했다.
결혼한 지 하루 밖에 안 된 나는 소학교 담밖에 맥없이 서 있던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도망칠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동대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하나의 기회로 생각되었다. 동대문 밖 숭인동에는 내가 지은 빙초산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계도 내가 하고 건설도 내가 했기 때문에 나는 하수도관이 어디로 어떻게 지나가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청량리를 향해 가는 큰 길 오른쪽에 경마장과 형제주점이 있고 그 앞에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하수구는 개천을 향해 입을 벌린 형체로 나 있었다. 그 하수도로 들어가면 하수도가 길 건너 반대편 숭인동으로 해서 우리 공장으로 통해가게 되어 있었다.
형제주점 앞에서 나는 소대장을 보고 말했다.
“소변을 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눠.”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럼 빨리 해.”
나는 길 갓으로 걸어갔다. 도로의 노면보다 한층 낮은 개천이 보였다. 나는 소변을 보는 척하다가 아래로 뛰어내려 하수구로 뛰어 들어갔다. 하수도관의 높이는 약 1m 20cm쯤 되고 냄새나는 오수가 발목이 잠기는 깊이로 흐르고 있었다. 즉시로 뒤에서 따발총 소리가 났다. 나는 하수도관 속을 허리를 굽히고 뛰어가다 말고 오수 속에 얼굴을 파묻고 납작 엎드렸다. 총소리는 집요하게 계속 되었으나 내게 맞지는 않았다. 어둠의 덕을 보았단 것이다. 굉장히 오래라고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뒤 대열은 행군을 시작하여 지나갔다.
감히 지상으로 올라갈 염도 못하고 나는 하수도관을 통하여 숭인동 공장까지 300m나 되는 거리를 갔다 전신이 오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개의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간신히 우리 공장 부지 내에 있는 하수구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에야 나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그대로 증류탑 안으로 숨어들었다. 증류탑은 직경이 1.5m, 키가 3m 정도의 크기여서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공장에서는 차현 씨의 부인이 혼자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차현 씨는 공장 직원이었는데 나와 함께 잡혀가는 대열의 우리 소대의 소대장이었다. 그는 분명 내가 도망치려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개천으로 뛰어내려 하수도관 안으로 뛰어 들어갈 때까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자신은 잡혀가면서 나를 살려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