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부터 우리는 뚝섬에 있는 한미화학회사를 위해 일간 10톤을 생산할 수 있는 접촉 식 황산공장을 설계하고 건설했다. 황산공업은 화학공업의 기초공업이며 남한에는 당시 인천에 조선화학비료회사 소속으로 하루 생산량 20톤의 노후한 탑식 황산공장이 있을 뿐이었다. 해방 전 일본인이 하던 흥남 질소공장의 황산 생산량이 하루 1,270톤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빈약한 규모였다.
한국에 있는 재래공장은 대부분이 연실식(鍊室式) 공장과 탑식(塔式) 공장이었으나 외국에서는 접촉식 황산 공장을 세워, 조업의 간이화와 유지비 저하, 수율 향상을 도모하는 추세에 있었다. 한국의 황산공업은 그에 비해 너무나 빈약하고 기술과 자본력을 모두 외국 원조에 의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는 이런 패턴에서 벗어나 어리 힘으로 공업적 비약을 도모해보겠다는 의욕이 솟구쳤다.
그래서 외국 수준에 떨어지지 않는 접촉식 황산공장을 설계하여 8개월 만에 설계를 완성했다. 성수동에 부지를 사고 공장을 건설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 우리가 공장을 세우자 2개 업체의 경쟁자가 나서서 외국에서 우리와 같은 용량을 생산하는 공장 시설을 12만 5,000달러에 사들여 와서 조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공장은 능력이나 품질에 있어 그들의 품질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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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년 해림화학 공장에서 / 사진 가운데 성정자 씨, 그 외쪽으로 이선종 씨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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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9월 15일에 공장의 시운전을 했다. 시작한지 3시간이 지나자 산배관(酸配管) 접속 부분의 석면 패킹이 녹아 순환산(循環酸) 새어나와 운전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조사해보니 순 석면판을 만들라고 지정, 제작시킨 석면판에 식물섬유가 40% 이상 섞여 있었다. 일을 맡아 한 업체에서 이쪽 주문을 무시하고 멋대로 한 탓이었다. 이런 사태를 겪고 보니 공장 규격과 제품의 엄정한 검사기관의 필요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서울신문사에서 나오던 영자신문 <Korean Republic>에 우리 공장 소식이 실렸다. 영어로만 신문을 읽을 수 있었던 이 대통령이 이 기사를 보고 어느 날 갑자기 한미화학을 찾아왔다. 6.25 전쟁 후 산업개발의 큰 발자국인 이 공장을 대통령으로서도 보아 두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놀랍고 반가운 마음으로 대통령을 안내하여 공장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후에 범한 여러 가지 정치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라의 발전에 대하여 진정한 관심을 가진 애국자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황산은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같은 구내에 있는 해림화학회사 이름으로 황산알미늄 공장을 지었다. 이보다 앞서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온 최황 씨란 이가 최상업(崔相業) 교수의 아버지 최창수 씨의 도움을 받아 ECA 자금 10만 달러를 들여 황산 알미늄 제조기계를 사온 일이 있었다.
그 분들은 어찌 된 셈인지, 기계를 사온 뒤 공장을 짓지 못하여, 기계가 놀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 기계를 사다가 황산알미늄 공장을 지었다. 당시 서울시의 수돗물을 정수하기 위해서는 고령토와 황산알미늄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해림화학에서 나오는 황산알미늄은 쉽게 판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한미화학과 해림화학은 처 외삼촌인 배제인(裵濟人) 씨가 사주이고 나는 명목상 중역이었으나, 이 두 공장의 설계와 건설을 하는 동안 나는 그에게서 한 푼의 보수도 받지 못했다. 수입이 없는 나는 돈이 없어 효자동에 있는 집에서 뚝섬에 있는 공장까지 걸어 다닌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며 무슨 뚝심으로 그런 대우를 받아가며 일을 해냈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유일한 위안은 내 힘으로 또 하나의 공장을 만들어낸 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피땀 나는 노력의 유일한 대가는 1959년 받게 된 서울시 문화상뿐이었다. 김동일 선생을 위시한 서울시 문화상 과학분야 심사위원들은 내가 이 공장을 순전히 화학공학적 수법으로 설계한 것을 평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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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년 수상한 서울시문화상 자연과학상 상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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