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껏 열심히 보살핀 관계로 양계는 첫해부터 성공이었다. 병아리들은 잘 자라주었고, 알도 잘 낳아주었다. 양계는 성공했지만 날이 갈수록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치솟아 오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는 자기네 고등학교에 오라고 하고, 모 상고에 다니는 친구도 자기 학교로 오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던 차에 청량상업고등학교에서 편입생 모집이 있다고 친구가 알려주어서, 어느 날 청량상고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중학교 졸업장과 우등상장, 개근상장 등을 가지고 가 보여드리면서 고등학교 1학년이 아니라 2학년에 편입시험을 보겠다고 떼를 썼다.
결국에는 졸업장과 상장들을 확인하시고서 시험을 보라고 하셔서 즉석에서 국어와 영어 시험을 봤는데, 영어는 단어 10개의 뜻을 쓰는 것이었는데, 아홉 개는 정확히 맞혔고 국어도 낱말의 10개를 쓰는 것인데, 식은 죽 먹기였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배운 천자문 실력이 여기서 발휘되었다.
교장선생님 존함이 박격흠(朴格欽) 선생님이셨는데, 존경 받는 분이었다. 내 평생에 처음으로 나를 구제해 준 은인이셨다. 공립학교에서 정년퇴직 하시고 사립인 대신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오랫동안 계시다가 타계하셨는데 찾아뵐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운이 좋아서 2학년 편입학은 되었지만, 입학금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제대하셔서 집에 돌아와 농사일을 하고 계셨지만, 고등학교 진학할 형편이 아니었다. 나 혼자 몰래 저질러 놓은 일이지만 혼자서는 해결할 길이 없어 결국에는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둘째 외삼촌댁에서 쌀 두 가마를 장리쌀로 꾸어다가 팔아서 입학금과 1기분 수업료를 내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안 다니고 2학년부터 다니게 되었더니, 영어나 국어, 경제, 사회 등 암기 과목은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딱 두 과목이 문제가 되었다. 주산과 해석기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일반수학을 안 배우고 바로 해석기하를 배우게 되니까 기초가 없어 이해가 안 되어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기하는 잘 궁리해보면 증명하라는 게 눈에 보여서 재미가 있었지만, 해석 기하는 그게 안 되었다. 더 어려운 과목은 주산이었다. 상업학교에서는 주산이 중요한 과목인데, 남들은 1학년 때부터 주산을 배워서 잘 놓았지만 나는 도저히 따라 잡을 길이 없어서 결국 두 과목은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영어 교과서는 ‘모델’이었는데, 모델은 어려운 문장으로 구성된 교과서였지만 모르는 단어들을 노트에 열심히 찾아서 발음기호와 뜻을 상세히 적고는 매일매일 암기해나가니까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책에는 숙어도 많이 나오고 이녹 아든의 수필은 아름다운 문장이어서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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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 3학년 가을 경기도 용문사 수학여행 / 뒷줄 오른쪽 2번째가 필자, 필자 앞이 김영희 현 남양주 시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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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때 영어 담당은 최명규 선생님이셨는데, 편입학 시험 때 인연이 있던 분으로 총각 선생님이셨고, 3학년 때에는 유석린 선생님이셨는데, 코맹맹이 소리로 깐깐하게 영어를 잘 가르쳐 주셨다. 국어 선생님은 2학년 때에는 이형실 선생님이셨는데, 편입학 시험 때 합격시켜 주신 분으로 나를 각별히 아껴주셨다. 3학년 때에는 이문재 선생님이셨는데, 고전을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고 학생들마다 호를 지어 주셨다. 내 호는 효산(曉山)이었는데,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혼자 애용하였다.
고등학교 입학 할 때는 학교가 전농동 서울시립대학 구내에 함께 있었다. 청량중학교 때에도 전농동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동네에 입학하여 1년 정도 다니다가 청량리동으로 이사했다. 중학교 때에도 전농동 교사에 입학하여 석 달쯤 있다가 청량리동으로 책상 걸상을 하나씩 들고 이사한 기억이 난다.
교정은 오래된 학교 터라 수목이 울창한 곳이었다. 한 학기 동안 죽어라 하고 열심히 하다보니, 남들보다 조금 앞서기는 실력이 되어 중위권을 좀 넘어 중상위권에 들어가는 것 같아 공부에는 더욱 자신이 생겼다.
고2 때 최명규 영어 선생님이 고3 때는 독일어를 가르쳤다. 3학년 봄 어느 날, 약혼을 하셨다고 싱글벙글 하시면서 고급 시계인 투가레스를 수업시간에 종종 자랑하시기도 하였다. 의정부에서 기차로 통근하셨는데, 약혼녀는 서울교통 사장 집 딸이라고 했다. 당시 서울교통은 많은 관광버스를 갖고 있었고, 회사 사무실도 광화문에 있는 큰 회사였다. 약혼하시고 무척 좋아하시는 최명규 선생님이 무척 부러웠었다.
우리 반에는 금곡중학교 동창생이 세 명 있었는데, 한 사람은 초등학교 선배로 금곡에 있는 용마식당 최윤희 사장이고, 또 한 사람은 초등학교 후배인데 행방불명된 지 오래 되었다. 지금동에 사는 김영희라는 친구는 양정초등학교 출신으로 대동중학과 대동상고를 1년 다니다가 2학년에 편입학 해 와서 나와는 같은 반이 외었는데, 현재는 남양주 시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