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통학열차 (12화)

경춘선 통학열차에는 내 학창시절의 많은 애환(哀歡)이 담겨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경춘선 통학열차와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1959년부터 65년 사이에 고등학교 2년과 대학 4년을 합쳐 6년 간을 아침저녁으로 통학열차에 몸을 실어 날았다. 당시의 통학열차는 승객차량이 아니고 화물차량을 개조해서 만든 것으로, 문은 넓은 미닫이 철문이고 차량 안에는 공원의 벤치 모양 나무판자로 의자를 만들어 길게 늘어놓았다.

겨울철에는 무쇠난로에 연탄을 피워 난방을 하였다. 화물 칸으로 만든 것이어서 옆 칸으로 가는 통행 문이 없기 때문에, 옆 칸으로 옮겨 가려면 다음 정거장에 가서 바꿔 타야만 했다. 두 해 쯤 지나서야 열차의 반쯤은 객차 차량을 달고 다니다가 나중에서야 모두 객차로 바뀌었다.

맨 앞에서 끄는 증기기관차였다가 60년대 초 들어와서 디젤기관차로 바뀌었다. 증기기관차는 석탄을 때고 가마솥에서 수증기를 내어 수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을 작동시켜서 움직이는 것이다. 경춘선은 산악지대여서 경사가 심해 비탈길을 올라갈 때는 아주 천천히 힘들여 올라가곤 했다.

경춘선에는 금곡터널과 마치터널이 있는데, 터널을 지날 때면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석탄 그을음이, 여름에는 차창을 통해서 열차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얼른 창문을 닫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얀 교복이 석탄 검정에 그을리기 일쑤였고 얼굴마저도 시커멓게 되었다. 새로 나온 디젤기관차는 힘이 좋아서 증기기관차보다는 언덕길도 거침없이 올라갔고 그을음을 내지 않아서 좋았으나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연기가 없기 때문에 멋진 풍경은 사라졌다.

우리 집은 경춘선 평내역에서 마석 쪽으로 500여 미터 쯤 떨어진 철길 가까이에 있었는데, 집 앞에는 기차가 들어올 때 신호를 보내는 시그널이 있었다. 아침밥을 국에 말아서 먹는 게 아니라 삼키다시피 하고는 기차와 함께 뛰어 정거장에 서 있는 열차의 맨 꽁무니 칸을 타기가 일쑤였다.

6년여를 기차통학을 하다 보니, 밥먹는 게 빨라지고 뛰는 데는 달리기 선수가 되었다. 간혹 아침 기차를 놓치게 되면 금곡까지 걸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다.

아침 통학 열차는 춘천역에서 떠나오는데, 춘천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가평ㆍ청평ㆍ마석에서는 여러 명이 있었다. 기차는 평내ㆍ금곡ㆍ사능ㆍ퇴계원ㆍ갈매ㆍ화랑대ㆍ신공덕ㆍ성북ㆍ월곡역을 거쳐서 종창역인 성동역에 도착했다. 성동역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제기동 2호선 지하철 옆에 있는 미도파백화점 터였다. 70년대 중반에 경춘선이 성북에서 청량리로 가는 경원선과 연결되어 월곡을 지나는 노선은 없어지게 되었다.

1960년 대 통학열차의 환경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하였고, 또한 정시에 떠나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느 날 우리 통학생들은 성동역에서 정시에 출발을 못하게 되는 것을 기화로 승차거부 데모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주동자가 되었다. 순식간에 무심코 한 행동이 경찰서에 보고가 되어 우리 주동자 몇 명은 청량리 경찰서에 끌려가서 밤새 조사를 받게 되었다.

▲ 1960년대 경춘선 증기기관차 / 화물칸에 사람을 가득 태운 광경이다 [출처 ; 서울시, 서울사랑]

다행히 우리는 조직적인 서전 모의가 없는 우발적인 요구행동이어서 훈방조치로 그 다음날로 풀려났고 아침 해장국 대접까지 받게 되었다. 경찰서장이 직접 훈방해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들의 행동은 사회를 혼란케 하여 북한을 돕게 되는 이적행위(利敵行爲)가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경찰서 밤샘조사였다.

경춘선 통학열차에서 예쁜 여학생들을 아침 저녁으로 만나게 되는데, 여학생 얼굴을 보는 것도 하루의 기쁨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 여학생은 동급생으로 D여고 3학년이었는데, 키는 좀 작은 편이어서 내 어깨 높이정도였고, 얼굴은 동그랗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영리하게 생겼다.

우리는 만나면 목례정도로만 인사하는 사이였다. 너무나 깨끗하고 정숙한 인상이었다. 그 여학생에게는 사촌 남동생이 있었는데, S공고 2학년생으로 같은 집에서 통학하는 것이어서 이 친구부터 사귀어 그 집에까지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 여학생은 원래 고향이 춘천으로, 춘천사범 병설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D여고에 재학 중이었고, 3학년이 되어서는 학생회장도 하고 학교신문에 시(詩)를 발표하는 문학소녀였다. 나의 짝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만 갔지만, 대학교에 진학해서 만나기로 결심하고 있던 어느 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모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원서를 내고 한 교실에서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면접 때 나란히 두 줄로 서서 면접실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옆에 나란히 단짝같이 서게 되어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고, 그 여학생은 그 대학에 합격이 되었으나 나는 낙망하게 되어 우리의 운명은 갈림길에 서야 했다.

지금 그 여학생은 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현재 중요한 보직을 맡고 있다. 신문에 가끔 글도 쓰고 TV에 종종 출연하고 에세이집도 출간하고 많은 저술을 내는 훌륭한 교수이며 사학자가 되었다.

통학열차는 많은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여학생들과도 만나는 ‘만남의 광장’이 되어서 기차통학은 그런대로 즐거웠다. 선배 대학생으로부터는 영어해석이나 물리학같이 어려운 과목들을 물어 배울 수 있었고, 또한 참고서나 교과서까지 얻을 수도 있었다.

내가 존경했던 통학 선배님들이 몇 분 계셨다. 이만호 형은 마석에 사는 분으로 한양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학과 학생이었는데, 늘 수줍고 겸손하신 분으로 검소하기 이를데 없어 항상 물들인 검정 바지에다가 검정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일반물리학을 원서로 배워 고생하였는데, 영어 원서를 쉽게 잘 설명해주신 분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한 분은 정수경 형이다. 원래 집은 화도면 담내리였는데, 담내리는 마석이나 대성리역의 중간지점으로 기타통학 하기가 불편하여 사릉에서 기차통학을 하였다. 이분 역시 점잖으시고 말수가 적고 아주 괜찮으신 분으로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다녔는데, 가끔은 월곡역에서 내려 의릉(조선 20대 경종과 계비 선의 왕후의 능, 옛 이문동 안기부 자리)를 거쳐서 회기동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다니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신문학과를 종공하고 지금은 한양대학교 신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0년대 초 경춘선의 열악했던 통학열차에서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한양대 신문학과 교수, 그리고 필자 동국대 조경학과 교수 등 세명의 대학교수를 배출하였는데, 모두 남양주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