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쿠데타와 조기방학 (14화)

5.16군사쿠데타

대학 입학식이 3월 10일에 있었고, 대학생활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난 후 오월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대학생이 된 기분도 컸으려니와, 캠퍼스에는 꽃과 숲으로 우거졌고 또한 절간 같이 아름다웠다.

만발했던 개나리꽃도 지고 화려했던 봄꽃도 다 떨어져서 버찌가 빨갛게 익어갈 무렵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 맞듯 5.16군사쿠데타가 터진 것이었다. 모든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 정문 출입은 금지되어 학교를 못 가게 되더니 여름방학으로 곧바로 이어졌다. 따라서 대학생활의 1학년 첫 학기는 5.16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고3때 4.19학생혁명이 일어나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지 1년도 못되어 새 정권은 안정도 못 본채 군사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군사정부는 대학에도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 중 하나가 병역제도였다. 기존의 제도에는 일반인은 3년이 만기복무였지만 대학생에게는 ‘학보’라는 제도가 있어서 일년 반 동안만 군복무는 하는 제도였다. 학보 외에 ‘교보’라고 하는 것도 있어서 초ㆍ중ㆍ고 교사들의 군복무기간도 일반인의 반으로 줄여주었다.

교보나 학보는 군번의 맨 앞자리 숫자가 00으로 시작되어서 흔히들 ‘빵빵군번’이라고 불렀다. 우리 학과에서도 일찍 입대한 학우들은 00군번을 받고 군대에 갔다. 당시 사립대학들은 정원 외에 청강생을 정원의 3~4배를 뽑았었는데, 청강생들은 00군번을 받을 수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고서 졸업 후에 입영을 하려면 입영연기원을 내야 했는데, 연기원을 내면 대학 4년간은 입영영장이 안 나오고 졸업해야 입영영장이 나왔다. 입영연기원을 내지 않으면 보통 22세가 되는 대학 2~3학년 때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는데 5.16쿠데타가 터지면서 군사정부에서는 군사기피자를 잡아다가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소시키다보니, 입영대상자였던 1941년생과 42년생은 모두 입영할 기회가 없어지고 그 대신 모두 제1보충역으로 편입되었다.

제1보충역이란 제도는 병역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고, 다만 군대 입영을 보류하는 제도일뿐이었다. 따라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41, 42, 43년생들은 대부분 제1보충역으로 편입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4~5년 뒤에 입영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문교부장관은 문희석 씨였는데, 해병대 대령출신이었다. 그때도 대학의 구조조정이 논란이 되었는데, 학과 간 통폐합과 대학 간 통폐합이 논의되었다. 당시 위정자들의 사고로는 서울특별시에 농업대학이 필요치 않다는 결론이어서 서울시립농업대학은 서울대학교 수원 농과대학과 꾸준히 통합이 논의되기도 했고, 연세대학교와 합병한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 동아일보의 5.16군사쿠데타 기사 (1961. 5.17.)

수원 농과대학과 통합한다는 설이 거의 확정적이었으나, 천만다행으로 서울시립농대는 서울에 꼭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서 무사하게 살아남게 되었다. 당시 문희석 문교부장관이 직접 전농동캠퍼스를 둘러보고는, 캠퍼스 분위기가 너무 좋고 아름다원서 통합의 결심을 취소했다는 뒷 이야기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농동 캠퍼스는 아름다운 곳이다.

서울에 쌀이 동이 나서 조기방학하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미국의 케네디정부는 줄곧 군사정부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 군사쿠데타에 대한 보복으로 쌀 원조는 수출도 안 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같이 쌀이 자급자족되지 않는 나라로서는 쌀을 수입할 만한 외화도 없고 어느 나라에서 원조받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때는 보릿고개가 한창인지라 전국적으로 도시에서는 쌀이 품귀하게 되었고,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쌀이 대량으로 부족하게 되었다. 농촌에서조차 쌀이 부족하니 서울까지 쌀이 올라올 수가 없었다.

서울시립대의 기숙사에서도 쌀이 부족해서 밥을 지을 수가 없게 되어 결국 5월 하순 들어 조기방학을 해야만 되었다. 2학년 1학기 수업은 석 달만에 끝나게 되었고,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정상보다 달포 가량을 조기방학을 하게 되었다.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리 집에서는 이해 봄 울벼를 심었다. 울벼는 수확량이 일반벼보다는 작지만, 일찍 살이 생산되므로 값이 좀 높은 편이었다. 조기방학이 되어 울벼 심은 논에서 새 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참새들은 울벼 심은 곳에 먹을 것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악착같이 몰려들어 즙만 생긴 벼이삭을 쪼아 먹어버려 벼이삭은 쪽정이만 남게 되고 벼농사는 낭패가 되고 만다.

나는 꼭두새벽부터 저녁까지 일곱 마지기 논을 뺑뺑 돌면서 참새와의 전쟁을 치렀다. 참새는 하도 약아서 쫓으면 멀리 도망가지 않고 조금씩만 피해 다닌다. 그러다보면 논을 하루에도 몇 바퀴씩 돌게 마련이다. 여름방학 중 어느 날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대청마루에서 낮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난데없이 참새 떼들이 새까맣게 하늘을 덮고 날아 들어와 나는 훠어이, 훠어이~ 하고 새를 쫒기까지 하였다.

열심히 새보기를 한 덕분에 2학기 등록금은 햅쌀로 해결할 수가 있었다.

천마산 중턱에는 상명학원의 생활관이 있었다. 그 당시 가격으로 평당 3원을 주고 수십만 평의 임야를 구입하고는, 생활관과 부속 건물 그리고 학원장 배상명 교장의 빌딩을 지었다. 상명여고의 주 운동 종목은 수영이었는데, 선수훈련을 위해서 야외 수영장도 그곳에 만들었다.

천마산 임야에는 참나무가 많아 상명학원에서는 수익사업으로 참나무를 베어서 숯을 구웠는데, 당시 숯은 밥 짓는데 필요한 고급 땔감이었다. 천마산 곳곳에 숯가마를 만들고 숯을 구워내어 한 데 쌓아두고는 밤새 도둑을 막기 위해서 감시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이 숯지키는 밤일을 하였다.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동대문상고 다니는 이용휘 군과 함께 이 일을 했다. 이용휘 군은 후일 경기도 의회 의원을 지냈었다. 경춘선 통학을 하면서 귀가해서 저녁밥을 먹고 나서 밤 근무를 하고, 아침에 동틀 무렵이면 집으로 내려와서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하였다.

어느 날 깊은 밤중이었는데, 시퍼런 불빛이 쌍눈으로 비치면서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란 적이 있었다. 천마산에 사는 호랑이였는지 몰라도 하여간 큰 짐승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