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병리학
2학년 1학기에 있는 식물병리학 3학점 강좌는 김응룡 교수님이 담당하셨는데, 식물병리학은 병원균인 세균ㆍ진균ㆍ자낭균ㆍ담자균ㆍ불완전균ㆍ바이러스 등의 병원체가 식물체내에 침투하여 식물체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나는 밤이면 천마산에서 숯 감시하는 밤일을 하고 있어서 시험공부 할 기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험을 본다 안 본다 갈팡질팡 하다가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결과는 F학점이었다. 처음 당하는 F학점이라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나와 친했던 이길흥도 마찬가지로 F학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재수강을 해야 했다. 우리가 국회도서관에 가서 문헌을 뒤지니까 일본에서 발행된 <식물병리학> 책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을 가지고 열심히 병리학을 공부하였다. 리포트가 나오면 이 책을 참고문헌으로 해서 깨끗이 제출하였다. 대학도서관에는 ‘Introduction to Plant Pathlogy>란 미국원서가 있었는데, 출판사는 McGraw-Hill Book Company였고 1943년 발행 제2판이었다. McGraw-Hill에서 발행되는 농업과학 시리즈는 모두가 훌륭한 책들이었다. 저자는 워싱턴대학교 교수 Prederick Heald 박사였다. 책 내용도 좋고 그림도 있어서 아주 이해하기가 쉬웠다.
이 책은 조균류ㆍ자낭균류ㆍ담자균류ㆍ세균류ㆍ바이러스 등의 순서대로 병원균을 해설하고 여기에 속한 병들을 설명한 책이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 여름방학 중 꼬박 이 책을 번역하다시피 하면서 매달렸다. <식물병리학>은 재수강하여 A학점을 받았고, 또한 확실하게 공부하게 되어 후에 대학에서 <조경관리학>을 강의하게 될 때 큰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데, 이것도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60년대에 장학금은 학과 학년별 수석 한명에게만 받게 되는 아주 빈약한 상태였는데, 이 어려운 장학금을 받아보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었지만 4학년 모두 허사였다. 특히 <식물병리학> F학점을 받고서는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 4년간 8학기 동안 장학금은 한 번도 받아보지도 못하고 졸업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30여년이 지난 후 모 대학의 교수로 있는 입학동기생이 30여 년 전의 일을 사과한 적이 있었다. 내용인즉, 내가 장학금을 타게 되었는데 자기가 집안사정이 어려워서 교수님께 부탁해서 나 대신 자기가 장학금을 받았었는데, 지금까지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사실을 아느냐고 사과 겸 묻는 것이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고, 그때 나도 가정 형편이 어려웠었지만 지난 일이므로 전혀 개의치 말라고 거꾸로 위로한 일이 있었다.
대학 4년 간 여덟 번의 등록 중에서 단 한번이라도 제 때에 등록금을 내본 적이 없었고, 1차기간이 지나고 2차기간이 지나고 3차 등록 기간에 가서야 겨우 낼 수가 있었으며, 그것마저도 여덟 번 모두 꾸어다가 내고 졸업하였다.
천황산 개간
3학년 여름방학에 박광철 교수님(과수원예학) 인솔 하의 개척봉사단은 경남 밀양에 있는 천황산으로 가서 산시 개간사업을 벌이는 목찬균 선배님의 일을 돕기 위해 떠났다.
농공학과를 졸업한 목 선배는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나와는 동향이었다. 지금은 남양주와 양주군으로 분리되었지만, 1960년대의 양주군은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되어 떨어져 나갔고, 현재의 양주군ㆍ동두천시ㆍ구리시ㆍ남양주시가 모두 양주군에 포함된 넓은 지역이었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가다 밀양역에 내려 무화과 과수원을 보고 놀랐다. 무화과는 서울에서는 월동이 안 되고 전농동 캠퍼스의 표본온실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표충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절을 둘러보고 산행 채비를 하였다. 산행 길은 두 군데가 있었는데, 하나는 표충사 뒷산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것이고, 다른 한 길을 산골짜기 개울을 따라서 고사리 분교를 지나서 휘돌아가는 길로, 시간은 더 걸리지만 쉬운 길이었다. 우리는 늦은 오후가 되어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에 표충사 뒷산의 빠른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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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켐퍼스 화단에서 정다운 친구와 / 신우균 현 공주대 조경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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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보름치의 식량과 부식, 그리고 숙영장비를 등에 지고 산행을 하자니 산길이 너무 가파른 지라 오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점심은 밀양읍내에서 먹고 왔지만 힘들고 지치고 시장기도 있었다. 농업경영학과 2학년생인 김정모는 산악부원답게 무거운 짐을 독차지하고도 지친 기색도 없이 잘도 올라가는데 부럽기까지 했다. 시장기가 심해지니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맹물에 간장을 타서 마셨더니 갈증도 사라지고 허기진 것도 좀 가실 수 있었다.
천황산은 해발 1189미터의 밀양과 울산을 가르는 웅대한 산으로, 특이한 것은 해발 약 1000미터 정도인 곳에 고원평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눈이 많이 와서 일본인들이 스키장을 개설했었으나, 그 후로는 눈이 오지 않는다고 하는 영남의 명산이었다.
목찬균 선배는 이 고원평야에 들어와서 개간사업을 펼치고 있었는데, 워낙 넓고 혼자 개간하기 힘들어 농학도들의 개간을 청해온 것이었다. 우리 개간팀은 보름에 걸쳐서 약 6백평 정도를 개간하였다. 곡괭이와 괭이로 산을 파고 일구어 밭을 만드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KBS방송국에서 나와 취재도 해갔다. 우리는 6백평 정도를 개간하였는데, 아나운서는 6천 평을 개간하였다고 과장시켜 말하라고 해서 열 배로 부풀려 방송하기도 했다.
개간사업 중에 나에게는 별도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천황산 개간지의 표충산 중간에 있는 고사리 분교는, 약초채집과 감자농사를 짓고 사는 개간민들의 자녀들이 표충사가 있는 마을의 학교에 다니기에는 너무 멀어서, 그들을 위해 산중에 만든 10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 분교였다. 방학 중 고사리분교 학생들을 모아놓고 오전시간에만 수업지도와 생활지도를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산골생활이고 보니 옷이고 신발이며 남루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무신의 바닥은 다 헤졌고, 그나마 칡넝쿨로 신발을 돌돌 감고 다녔다. 해발 700~800미터 쯤 되는 곳인데, 천궁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약초를 많이 심었다. 천궁밭을 지나자면 약초 냄새가 코를 자극할 정도로 향내가 났다.
점심 때는 감자를 삶아다 주는데, 내가 평생 먹어본 감자 중에서 그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감자가 파삭파삭하고 알알이 흩어졌다. 소금이나 설탕없이 그냥 먹어도 맛이 좋았다. 감자는 원래 한랭지(寒冷地) 작물인데 그곳 기후가 적합해서 맛이 좋은 것 같았다. 낮에는 여름 햇볕을 충분히 받고 밤에는 온도가 10˚C 이하로 뚝 떨어지니까, 한 낮에 광합성 작용을 많이 해서 만들어진 동화녹말이 밤 사이에 저장기관이 되는 땅속 줄기에 모여 커다란 식량창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간한 6백평의 땅에 당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식물을 심었으나 고원평야에 바람이 워낙 세차게 불기 때문에 줄기가 부러져 자랄 수가 없었다.
목찬균 선배는 이듬 해 이곳을 포기하고 대관령으로 들어가서 배추농사를 시작하였는데, 이 분이 우리나라 고랭지 채소 재배의 선구자가 되었다. 대관령 사람들은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도, 감자농사가 잘 되어 연중 보리밥은 모르고 사철 흰쌀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 선배는 지금도 대관령에서 고랭지 채소재배를 하고 계시는데, 고랭지 채소 전문가로 유명인사가 되었고, 강원도 농민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