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사태와 4학년 시절 (18화)

6.3사태

4학년 1학기가 석 달 쯤 지날 무렵 전농동 킴퍼스는 신록이 한창이어서 아름다웠었다. 1964년 10월 3일 정문이 굳게 닫히고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휴교령은 곧바로 여름방학으로 이어졌다.

당시 군부정권에서는 한일회담을 벌이고 있었고, 당시 김종필 공화당 당의장은 쿠데타주체세력으로 한일회담의 한국대표였다. 이때 대학가에서는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데모가 심해졌고, 결국 군사정부는 대학을 원천봉쇄하기 위하여 휴교령을 내리게 된 것이다.

군사정부는 식량난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산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넓히고 유휴하천을 개간하여 농지를 만들어 식량증산에 힘을 쏟았다. 산지 개간은 야산을 개간하여 유실수를 심는 것과 계단식으로 야산을 개간하여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도 청룡뿌리라고 부르는 야산이 있었는데, 마을 동쪽을 길게 감싸고 있는 구릉지였다. 권 씨라고 하는 외지 분(경상도 사람)이 산을 사서 개간하기 시작했다. 야산 개간은 잡목들을 베어내고 나무뿌리와 풀뿌리를 파내어 밭을 일구는 작업이었다. 나는 이일에 매달려서 여름방학 두 달간은 개간 작업을 하였다. 아침 여덟시에 나가서 괭이와 곡괭이로 땅을 일구는 힘든 일이었지만, 나는 젊어서 어른들과 일하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권 씨라는 분은 육군 대령으로 예편해서 한국전력 감사실에 근무하는 분으로 5.16 군사쿠데타 이후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는, 그 시대에 잘 나가는 인물이었다. 주말이면 내려와서 개간하는 일을 시키면서 직접 일꾼들과 어울리는 자상한 사람이기도 했다.

▲ 국화전시회에 출품한 국화 대륜대작품을 꾸미고 있다 / 뒤에 보이는 표본온실은 80평으로 당시 전국 최대온실이었다.

그 분의 고향은 경상도 함양이었는데 군부세력들과는 좋은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쿠데타세력과도 연계가 있어서 5.16이후 한국전력에 근무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시 대학생인데다 일도 열심히 하고 또한 동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주니까, 권씨, 역시 나를 많이 아껴주고 보살펴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취직은 자기가 책임지고 시켜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병역도 미필이었지만, 일반 기업체에 취직할 뜻은 전혀 없었다.

하루 일을 하는 중에 오전 10시와 오후 3시면 휴식 겸 간식 시간으로 노동현장에는 늘 막걸리와 간식이 나왔지만, 나는 동네 어른들이 권해도 결코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내가 술을 처음 마셔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천마산에 천렵을 가서 피라미와 가재를 잡아 매운탕을 끓이고 밥을 지어먹으면서 술도 이때 처음 마셔보았는데, 그 술이 백양 위스키였다. 이 술은 값싼 화학주로, 이 술을 마시고서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져 몇 시간 만에 깨어난 적이 있었는데, 이후로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

▲ 4학년 1학기 공원설계 시간에 서울 남산공원에 답사를 갔다 / 사진 속의 사람 중 4명이 대학 교수가 되었다.

대학 4년생

전농동 대학 캠퍼스에서 정문을 나오면 막걸리집이 여러 개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하학할 무렵이면 과 친구들은 종종 이 막걸리집에 들러 막걸리를 마셨지만, 나는 대학 다니는 동안 일체 술집에는 출입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돈도 없었지만 내 장래 일을 생각하면 술집에서 술 먹을 상황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4학년 2학기가 되지 대학생활도 마지막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친구 이길흥과 함께 시사영어학원에서 문창순 <영어독해>와 <다이제스트> 강의를 수강하였고, 변영태(卞榮泰, 1892 - 14969) 선생님의 <영어독해>도 수강하였다.

변영태 선생님은 대통령 후보에 입후보했던 분으로 이승만 정권 때 외무부장관을 지내신 분이셨는데,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쓰고 남은 경비를 반환하신 것으로 유명하신 분이셨다. 문창순 씨는 통역관 출신이라고 하는데, 목소리가 맑고 고왔을뿐더러 간단명료하고 쉽게 해석을 잘해주셨다.

2학기 늦가을에 영어학원을 빠지게 되는 것이 아까워서 수학여행을 빠지게 포기하였다. 대학졸업반이 되어 2학기마저 다 지나가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12월이 되어서 농공학과 김영환은 해병대 장교(해병대 후보생 34기) 시험에 합격하여 진해로 떠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