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학교 가입교 (21화)
  제4장 해병대장교 임관

1년간 근무했던 상명여자중학교는 2월 28일 날짜로 사표를 내고 입학하였던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은 등록을 마쳤으나 휴학기간이 별도로 남아있어, 어쩔 수 없이 휴학 소속은 서울대 불문과에 다니는 O실이에게 맡기고 3월 3일 진해로 떠났다.

3월 4일이 가입교 날짜여서 경부선열차를 타고 가다가 삼랑진에서 갈아타고 창원까지 가서 또 진해로 가는 기차를 바꾸어 타고 경화역에 내렸다. 경화역은 종착역인 진해역 바로 전의 간이역이었다. 밤중에 역에 도착하여 근처 여관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 8시에 진해교육기지사령부 제3정문을 찾아 징집장으로 갔다.

안내하는 모든 병사들이 친절히 안내하여 주어 호감이 갔다. 장교 될 사람에 대한 예우는 각별한 가 싶었다. 해병학교에 도착해서 정렬을 시키는데도, 앞으로 오십시오! 뒤로 오십시오! 왼쪽으로 도십시오! 오른쪽으로 도십시오! 구령이나 명령이 아니고 정중한 존칭을 썼다. 해병대 장교교육은 모두 존칭을 쓰고, 장교교육은 과연 예우가 다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내 이발관에서 2~3cm의 짧은 상륙형머리로 깎아지고 난 다음 4개 구대(區隊)가 편성되더니 작업복, 동(冬)내의, 장군화, 양말, 단화, 농구화 등 각종 피복들과 MI소총을 비롯해서 철모, 배낭, 야전삽, 모포 등이 산더미 같이 지급되어 정리하기에 바빴다.  

3얼 4일에 가입교 선서식이 있었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해병학교 35기 사관후보생은 모두 157명이었다. 선서식이 끝나자마자 고분고분하게 대했던 구대장들의 태도가 완전히 백팔십도 바뀌면서 갑자기 서슬이 퍼래졌다.

해병학교 사관후보생 중대장은 해사 14기 송재신 대위인데,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신사다운 면모가 보였다. 제1 구대장은 해사 16기 박상이중위인데, 마산출신으로 성질이 괴팍해보였다.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후보생의 배를 후려치는 습관이 있었다.

제2 구대장은 해사 17기 김갑수 중위인데, 충무 출신으로 몸이 작고 날렵했다. 제3 구대장은 해병학교 32기 김흔종 중위로 대전 분인데,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후덕한 성품이었다. 제5 구대장은 해병학교 33기 김정훈 소위인데, 구대장 4명 중 유일한 해병 소위로 우리는 별명을 떡보라고 붙였다.
 
▲ 진해 천자봉에서 / 천자봉은 진해 해병학교 기지 피교육자들에게는 해병혼이 담겨 있는 곳이다. 단독무장 또는 완전무장으로 종종 천자봉 행군을 했다. 앞줄 가운데 지휘봉을 든 구대장 김갑수 중위는 우리 교육을 끝내고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 진해에서 장군을 꿈꾸며
 
가입교 기간은 3일간으로 이 기간에 모든 교육 준비를 마쳐야 했다. 정밀 신체검사에서 신장과 체중을 재는데, 신장은 170cm, 체중 120파운드였다. 체중기에 올라서면 눈금이 움직이고 들여다보는 곳은 돋보기처럼 생겨서 큰 글씨로 나타났는데, 120숫자가 황소 눈같이 크게 보였다. 요새 와서 120파운드를 kg으로 환산해보니 55kg이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몸무게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하도 날씬해서 나무젓가락 같았다. 요새 55kg이라면 초등학교 6학년생중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골이 상접(相接)한 상태였다.

나는 제2구대로 배정받았고, 후보생 번호는 48번이었다. 지급 받은 관품(官品)들은 옷장에 일정한 방향으로 진열을 하였고, 담요는 두 장 씩 지급받았는데, 직각이 되도록 접어서 진열해야 했다.

내무실은 한 방에 4명이 쓰도록 되었는데, 양쪽으로 일층과 이층에 침상이 있고, 방 한가운데는 책상 네 개가 모여 있다. 한편으로는 사물함이 나란히 네 개 있고 다른 한쪽에는 MI소총 총가(銃架, 소총을 기대어 놓는 받침)가 있다. 신발장은 따로 없고 침상 밑에 신발을 나란히 늘어놓게 되었다. 신발 종류만 해도 장군화, 반장화, 단화는 항상 구두 약칠을 해서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나야만 했다.

병사(兵舍, 군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집)는 이층 콘크리트 건물이었는데, 벽색깔이 푸른빛이어서 우리들은 흔히 청와대라고 불렀다. 가입교 기간은 3월 4일에서 6일까지 사흘간이었는데, 모든 피복들과 장구들을 받아서 진열하기에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밤이 되니 3월이지만 난방이 안 돼 몹시 추웠다.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청와대는 진해만 바닷가에 있어서 바닷바람이 불어 닥쳐 추운 가운데 고향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157명이 가입교했다가 3명은 자진 퇴교를 원해서, 군번을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으로 귀향조치가 되었다.  

 
  해병대 장교 지원 (20화)
  해병학교 입교선서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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