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반 교육_1 (23화)
  제4장 해병대장교 임관

후보생 교육기간 중 그래도 견디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초등학교 등하교길 십 여리를 걸어서 다닌 덕택에 다리가 튼튼해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몸무게가 55kg밖에 안 되었지만, 시골에서 농사일 하며 걷고 뛰놀던 체력으로 버티어낸 것이다. 도회지에서만 자란 사람들은 신체가 좀 약한 편이었고, 특히 구보에서 약했다. 나는 단거리와 중거리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해병대 후보생 교육에서 구보는 매우 중요한 체력 단련 중의 하나였다.
 
후보생 초반기 때만하더라도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해병학교에 입교한 것이 한편 서운한 구석이 있었다. 모처럼 합격한 서울대학교 대학원이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원생은 극히 드문 존재였다. 대학원 석사과정만 마쳐도 대학 전임 강사로 나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망설이기도 했지만, 현실에 충실했고 경주 최 씨의 고집과 인내로써 인내하여 해병소위로 임관하게 된 것이다. 임관 일주일 전 부터는 정복과 정모를 쓰고 보행연습에 들어갔다. 장교의 보행은 품위를 위해서 중요한 태도였다.

157명이 해병학교에 입교해서 3명이 가입교 기간 중 자원 귀향하였고, 후보생 교육기간 중에는 12명이 임관하지 못하고 퇴교당하여 142명이 해병소위로 임관하게 되었다. 1966년 5월 28일, 나는 나이 스물여섯 살에 해병소위로 임관하였다. 장교 임관식에는 동기생 가족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날씨마저 화창하였다.

해병대 의장대 시범과 군악대 연주는 임관식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어주었다. 1주간의 보상 휴가가 주어져서 고향집으로 금의환향하였다. 해병대 장교 하정복을 입고 서울바닥을 일주일 간 누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생인 이길흥 군과 그의 애인, 그리고 그의 친구도 소개 받아 함께 즐겁게 보냈고, O실이네 집에도 이길흥과 함께 가서 O실이 어머니한테 푸짐한 대접도 받았다. 장교로 임관되고 나니 주변의 대우가 완전히 달라져 보였다.
 
▲ 해병소위 임관 (1968. 5.28.) / 다이아몬드는 후보생 계급장에 땀방울이 모여 이루어진 결정체이다
 
1주일간 보상휴가를 마치고 다시 진해로 내려오자 해병학교 제16기 기초반 교육과정이 시작되었는데, 1966년 6월 7일이었다.

장교로 임관하고 나니 후보생 때와는 모든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선 금테줄이 달린 정모(正帽, 정복에 갖추어 쓰는 정식의 모자)를 쓰고 정복(正服, 의식 때 입는 정식의 옷)을 입고 과업출장에 나갔다.

정복 어깨 견장에는 해병소위 계급장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폴라 와이셔츠 칼라에는 자그마한 해병소위 계급장이 빛났다. 임관 직전에 보행법을 교육받았지만, 구보만 하다가 보행만 하게 되니까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신발도 장군화 대신 단화를 신으니 가벼워서 신은 것 같지 않았다.

더욱이 달라진 점은 식당이었다. 후보생 때는 간이식당에서 보리밥을 먹었지만, 임관 후에는 장교식당에서 흰쌀밥을 먹는 것이 특별히 달라진 점이다. 후보생 때에는 식당엘 가도 구보였지만 임관하고 나서는 장교식당에 갈 때도 정렬하여 보행을 하였다. 해병소위 계급장을 달고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의 자긍심이 생기게 된 것이다.

기초반 교육은 일반학, 화기학, 전술학 등 3개 분야로 나누어진다. 일반학은 교양과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군대예절, 해병대전사, 국제법 등이고 화기학은 소부대 지휘관이 알아야 할 M1소총, AR자동소총, 60mm 박격포, 81mm 박격포, LMG기관총, 106mm 무반동총 등의 제원과 사격술 훈련이고, 전술학은 분대공격, 방어, 소대공격, 방어, 행군 및 숙영, 독도법, 탑재 등의 교육과 훈련이다.

과업은 오전과업과 오후과업 시간의 학과목들로, 주로 강의실에서 교관으로부터 수업을 받고, 조별과업은 주로 구보 또는 제식교련을 하였고, 석별과업은 야간보행법, 야간독도법, 야간공격, 방어훈련 등인데 과업이 끝났다고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검이 끝나고 나서도 두려워진다. “순검 끝 그대로 취침” 구령이 나오면 하루가 정말로 끝나는 것이지만 “순검 끝 병사 떠나 5분전” 구령이면 밤잠 다 자고 특별훈련에 들어가는 것이다.

야간 특별훈련은 후보생 때나 기초반 때나 마찬가지로 혹독했다. 해병정신은 이 야간 훈련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반 교육기간에는 외출 외박이 있어서 그나마 후보생 때보다는 좋았다. 토요일 오후에는 외출 외박이 실시된다. 소위 봉급을 받은 것도 있어서 비록 적지만 주머니에는 용돈이 있었다. 외출 외박 나가면 자유의 몸이 된다. 진해 시내를 벗어나 부산도 좋고 대구도 좋았다. 진해만 벗어난다면 다 내 세상 같았다.

후보생이나 기초반 장교 면회자는 푸짐하게 먹어 영양 보충하는 날이다. 기초반에 들어와서 쌀밥을 먹는다고 하지만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외출나가면 우선 찐빵집부터 들른다. 찐빵은 주문 즉시 나오기 때문에 배를 채우기에 좋았다. 그 다음에 중국집으로 가서 짜장면부터 시작해서 탕수육, 라조기 등으로 포식을 하고 고량주도 한 잔 곁들인다. 식사를 끝내고 나와서 장군화를 신으려면 불러진 배로 인하여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 장군화 끈을 매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배가 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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