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에 도착한 지 몇 주일이 지나서야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편지를 올렸다. ‘여차여차해서 월남에 와서 청룡부대 소대장으로 전투를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는 내용이었다. 파월 직전에 고향 집에 며칠 간 다녀왔지만, 월남 전쟁터로 떠난다고는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또한 양주군수에게도 편지를 썼다. 나는 양주군 미금면 호평리 출신으로 현재 월남에서 청룡부대 소총소대장으로 참전하고 있는데, 내가 언제 전사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 부모님은 농촌에서 나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느라 고생 많이 하신 분인데, 내가 만약 전사하게 된다면 부모님께 불효가 막심하니 우리집을 좀 보살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들에게도 간단히 편지를 보내 내가 월남에 와서 소총소대장으로 참전 중임을 알렸다.
길룡작전(吉龍作戰) 명령이 떨어졌다. 이 지역 내에 억류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명의 미 육군 병사들을 구출해내기 위해 펼쳐진 작전으로 5월 18일부터 열흘간에 걸쳐 한ㆍ미ㆍ 월 합동작전으로 바탄간반도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작전을 펴서 140명의 적 사살과 6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아군도 수명의 사상자를 냈다. 처음 나가는 작전이라 몹시 흥분되고 두려웠다. 열대지방에서 철모를 쓰고 방탄조끼까지 입었으니 제법 무거웠고 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소대장의 휴대 무기는 45구경 권총이지만, 권총은 정글전쟁에서 무용지물이다. 권총은 휴대하지 않고 그 대신 M2칼빈 소총을 휴대하였다. 해병대 기본무기는 M1소총이었는데, M2칼빈 소총이 월남에는 더러 있었다. M2칼빈 소총은 M1소총에 비하면 가볍고 작아서 총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가벼워서 휴대하기에는 편리했다.
소대장의 휴대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작전지도이다. 월남의 군사지도를 플라스틱 필름으로 덮고 색연필로 공격로와 적의 예상 집결지를 표시한 것으로, 작전 나가기 전에는 도상연구를 충분히 해야 하고 작전 중에는 수시로 지형을 살피고 공격로를 확인해야 하는 소중한 물건이어서 방탄복 왼쪽 가슴에 품고 다닌다.
6중대에서는 내가 부임하기 전에 106고지 전투에서 공용화기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여단장이 노발대발하며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라 하여 여단 내 모든 작전에 참가시켰기 때문에 1년 내내 뛰어야 했다. 월남에 온지 한 달이 지나갔지만, 기동하다보면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가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일주일 간이나 흔들리는 배를 탄 원인도 있었겠지만 온대 지방에서 갑자기 열대지방으로 옮겨와서 기후에 적응이 안 된 탓인 듯 했다.
작전 중에 뛰다보니, 가슴에 매단 수류탄의 몸통은 빠져나가 없어지고 주사기 같은 뇌관만 달려 있어 놀란 일이 있었다. 수류탄은 상남훈련장 교장에서 강의만 듣고 한 개씩 투척해본 것이 고작이었고, 분해 결합은 해본 일도 없었다. 전령을 불렀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탄복 가슴에 달린 수류탄 꼭지를 뽑아서는 뇌관을 꺾어서 그냥 내다버린다. 노련한 병사는 과연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작전 중 사탕수수밭을 통과하는데, 밭 한가운데에다 커다란 무쇠 가마솥을 걸어놓고, 사탕수수를 잘라서 솥에 넣고 불을 때서 당분을 추출하여 설탕을 만들어내는 것도 보았다.
목표 고지에 뛰어올라 공격하여 점령하고 나니, 모든 병사들의 수통은 모두 빈 상태였다. 마치 한 줄기의 스콜(열대지방에 내리는 소나기)이 쏟아지자 병사들은 판초를 펴서 빗물을 소통에 따라 붓고는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마저 아까워 입에다 적시는데 꿀맛이다. 기동을 하다보면, 옷에 땀이 젖었다 말랐다 하기를 거듭하고 옷에는 소금이 하얗게 낀다.
길룡작전에서 큰 접전상황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최초의 작전으로 많은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우선 월남의 지형과 기후를 익힐 수 있었고, 정글에서의 기동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월남은 원래 안남(安南)이었는데, 1958년 프랑스가 침공하기 시작하여 1887년에 결국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일본군의 점령지가 되었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월맹과 월남으로 나뉘어 위도 17° 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갈라졌다. 월맹은 호지명이 이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월남은 17° 이남만의 선거를 통해 고딘 디 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세워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려졌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펼친 호지명은 월남 사람 모두가 독립운동가로서 존경하는 인물인 반면에, 고딘 디 엠은 비록 대통령이 되긴 하였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 성장(省長)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존경받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호지명은 김구 선생 같은 분으로 추앙받는 분이고, 고 딘 디엠은 일본 식민지 시절 일본 정부와의 앞잡이 벼슬을 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보면 맞다.
월남의 지형은 마치 S자 같은 모습으로, 남북으로 길고 허리가 잘룩하다. 남북의 길이는 1.750km으로, 위도 상으로는 북위 8° 30′에서 23° 24′에 길게 걸쳐있다. 이에 비해 폭은 좁아서 북부에서 375km이고, 중부의 가장 좁은 곳은 50km 정도밖에 안 되었다. 라오스와 국경을 이루는 곳은 1.500km나 되는 긴 쯔엉송(長山)산맥이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계절은 우리나라 같은 사계절이 아니고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진다. 청룡부대가 있던 중부지방은 9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로 비가 주룩주룩 오기 일쑤이고, 4월부터 8월까지는 건기로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낮에 스콜이라고 부르는 소나기가 한 줄기 내려 갈긴다.
옷은 두 벌이면 연중 갈아입을 수 있기 때문에 옷 걱정은 필요 없다. 우리나라처럼 철따라 옷이 필요한 게 아니고 또한 난방도 걱정이 안 된다. 우기철에는 밤이 되면 좀 서늘하기 때문에 담요 한 장을 덮어야 잘만하다. 열대지방이므로 비가 많이 오고 햇빛은 따가워 벼농사는 삼모작(三毛作)이 되었다.
촌로들은 한문자를 잘 알고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은 한문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프랑스 신부들이 베트남어를 알파벳으로 표기하여 교육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시가지의 상점 간판이나 절간의 현판, 가정집 기둥의 주련(柱聯, 기둥이나 바람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씨)들은 모두 한문이었다.
우리의 진술 책임지역은 광나이성 빈손군 일대였다. 인접부대로는 북쪽에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 존슨 대통령의 사위가 해병 대위로 그 부대 중대장으로 참전 중이었다. 당시 신혼 초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의 사고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6.25전쟁 때 미국 벤프리트 아들이 참전하여 전사했고, 모택동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도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참전했다가 평북 대유동에서 미군기의 폭격으로 30세에 전사하였다. 그 시신은 지금도 평남 회창군 혁명농원의 일반 농원에 잠들어 있는데, 모택동은 자기 아들의 시신만 찾아올 수 없다고 북한에 그냥 두었다고 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1951년 11월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전에 참전 중인 그의 아들 육군 소령을 면회하지 않고 귀국하였는데,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하여 면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의 장남 야코프주카 시빌리는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당시 포병 소위로 포로가 된 것을 독일이 독일군 고위 정보장교와의 교환을 제의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는데, 1943년 독일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하다가 사살 당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아들 4형제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하여 최전방 근무를 하였고, 케네디 대통령도 해군 중위로 PT109함장으로 참전하였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이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가 격추되어 동승한 부하 2명이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우리나라 남자 국회의원 288명 중 73명이 군대 미필이므로 네 명 중 한명이 군대에 안 간 꼴이 된다. 그 아들들도 37명이 병역면제라고 한다. 현대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선경의 최종현 회장의 두 아들, 한진 조중훈 회장의 세 아들, 롯데의 신격호 회장의 두 아들, 효성 조석래 회장의 큰아들 등이 현역 미필이라고 한다. 외국 지도자와 그 아들들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나 재벌 총수들은 깊이 반성해야 나라가 바로 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