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멈추고 어둠이 가시자 우선 매목대를 찾아 나섰다. 우리 매복대는 우군과 적군 틈 사이의 공동묘지에서 죽은 듯 배를 깔고 엎드려 적군과 우군의 총알이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얼마나 초조하고 두려웠던지 초죽음이 다 되어 있었지만, 모두들 살아 있었다. 부둥켜 안아주고 살아 있음을 기뻐해주었다.
중대진지에 돌아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소대 정찰준비 명령이 떨어진다. 겁 많은 중대장은 월남 최고참 소대장인 내가 제일 듬직했던지, 아니면 미운 털이 박힌 것인지 우리 소대에게만 명령이 계속 떨어진다. 중대방어진지로 소대병력을 이끌고 정찰을 나갔다. 적의 시체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부상자를 끌고 가느라 땅바닥에는 긁힌 자국이 여기저기 줄지어 있고, 피흘린 자국도 보인다. AK소총과 각종 무기들이 핏자국에 물들어 널려 있었다.
이놈들도 되게 당한 모양이었다. 러시아제 권총과 쌍안경을 노획하고, 45구경 미제 권총도 노획하였다. 6중대는 방어작전에 살아났고, 특히 우리 소대는 매복에서부터 시련의 연속이었으나, 전사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것이 우리 소대가 겪은 구정공세전투였다. 아래 글은 우리 소대 권봉천 일병의 전투상황 기록이어서 소개 안 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싸웠다.
해병 일병 권봉천
오늘이 1월 30일 명절이다. 고국에서는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즐기는 날이다. 오후 1시 30분경 헬리콥터가 중대 CP에 내렸다. 연일 실어오는 보급품인 실탄과 C레이션을 싣고 온줄 알았는데, 완전무장을 한 청룡들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월남 신병이 온줄 알고 반가워 뛰어가 보았더니 눈동자와 옷차림이 신병은 아닌 것 같다. 잠시 후 중대장님의 지시로 내린 청룡들을 각 소대에 배치시켜 우리 소대에도 약 1개 분대가 지원왔다.
배속 나온 전우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6시 30분쯤 되었다. 저녁식사를 C레이션으로 간단히 마치고 나니 백색 핸드 파라솔 1발이 올랐다. 비상 신호다.
전 중대는 완전 전투준비로 각 개인호에 배치붙었다. 오늘은 왜 일찍 비상을 붙일까? 분대장님께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 월맹군 2개 대대가 우리 6중대를 공격한다는 정보가 들어와 3대대 9중대에서 1개 소대가 우리 중대를 지원 왔다는 것이다.
잠시 후 분대장님이 소대본부에 다녀오더니, 오는 우리 소대에 매복명령이 떨어졌으니 매복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 날 따라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며 철조망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전선이고 군인인지라 감정을 억제하고 매복지점까지 무사히 나가 3분대가 전방, 우리 1분대가 측방을 맡고, 조명지뢰와 크레모어를 매설하고 배치 붙었다.
근무자 2명을 세우고 온종일 태양 아래서 시달린 몸이다. 불길한 예감이 들고, 고향의 할머님과 동생 생각으로 뒤숭숭한데 비상! 하는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조명탄이 하늘 높이 올랐고, 꽝 따따......., 3분대 쪽에서 사격을 한다. 급기야 일어나 맹수와 같은 눈알을 굴리며 전방을 살폈으나 아무 것도 모이지 않았다.
3분대 쪽에서는 사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잠시 후 소대장과 남은 분대원들이 지원 나왔다. 그때 3분대 근무자의 말에 의하면, 3, 4명이 앞 숲을 타고 기어오다가 사격과 함께 쓰러진 1명을 업고 숲속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잠시 후 매복대는 철수하라는 소대장님의 명령이다. 무전기를 타고 명령이 왔다. 철수하여 분대에 돌아와서 무장을 풀고 식은 땀을 닦으려니 매복자 집합이라는 분대장님의 명령이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웬일인지 그날따라 어수선하기만 하다. 단독무장을 하고 나갔더니, 1소대 앞 철조망 안에서 청음초 매복을 나간다는 것이다. 철조망으로부터 약 30야드 쯤 데려다주고 1소대 분대장은 돌아간다. 마치 첫사랑의 애인을 보내는 마음이다.
엄폐되고 관측이 좋은 자리를 찾아 배치된 후 얼마나 지났을까. 1소대 우측에서 조명지뢰가 처지면서 우리 CP에선 총성과 함께 철수하라고 고함을 쳐 뛰어 들어갔다. “무엇이냐. 왜?” 하면서 소대장님이 되묻기에 “영문도 모르고 철수하라고 해서 왔다”라고 말하자, “이놈들, 너희들이 왔다갔다 하다가 조명지뢰를 터뜨렸지?”하고 묻는다. 어이없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정말? 생과 사를 가리는 마당에서 거짓말은 않겠지? 그럼 청음초는 다시 제자리로 가고 요번에 조명지뢰가 터지면 르포를 써라”고 명령한다.
또 다시 본 청음초 자리로 나갔다. 10분이 지났을까. 우리 중대 CP에서 조명탄이 오르며 타타타타....., 경기관총이 우리 쪽으로 불을 뿜는다.
“근무자 어떻게 된 거야? 철수신호 없더냐? 들어갑시다.”
한 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친다.
“안 돼! 사격을 하는데 어떻게......”
오색신호탄이 오른다. 사격 끝이다. 이제는 철수할까 하고 망설이는데, 또 다시 불 뿜는 사격이 계속되었다. 이젠 전 화기의 문을 연 것 같았다. 묘지를 엄폐하고 한 손으로 M16을 꼭 쥐고 전방을 겨누며 엎드려 있었다.
점점 가깝게 떨어지는 유탄과 로포에 당황한 전우들이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맨다. 음 이젠 마지막이구나. 신음 비슷한 소리를 하며 옆 전우가 뒹군다. 또 한 전우는 “고함을 쳐 봅시다” 하며 엎드린 채 손으로 땅을 파헤치며 온몸을 비튼다. 꾸르릉 꽝, 이젠 포병대대마저 우리 6중대로 포구를 돌린 모양이다.
월남 고참 해병인 나는 전우를 데리고 어찌해야 할 줄 모르겠다.
“슉~! 꽝꽝!”
흙덩어리가 온통 몸을 덮어씌운다. 전우들은 점점 더 버둥대며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맨다.
“꾸~꽝! 따따따......”
용케도 우리 주위에만 포탄이 떨어진다. 흙덩어리들이 등 위로 우수수 떨어지면 나도 모르게 윽! 하고 몸을 움츠리며 주먹에 있는 힘을 다 준다.
그때 한 전우가 엄숙하게 “이젠 하늘에 맡기고 날이 밝기나 기다립시다.” 하지 않는가. 그때 나도 두려움과 무서움을 옆 전우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표정을 밝게 하며 “인명은 재천이라 하늘에 맡기자. 결코 신은 우리를 헛되이 버리지 않는다.” 라고 덜은 말을 옆 전우에게 말했다.
귀먹은 이에게 전화 걸기다. 몇 시나 되었나? 도저히 안 되겠다. 날이 샐 때까지 잠이나 자자. 당치도 않은 말이다 .고함을 치면 월맹군에게 발각될 것이고, 우리 아군의 빗발치는 사격에 죽을 판이고, 이젠 눈이 아론거리며 앞이 안 보인다.
얼마나 되었는지 정신이 나서 얼굴을 들어보니 붉으레 날이 샌다. 밤에 뒹굴던 자리에 총을 껴안고 눕다시피 땅에 바싹 붙어 있었던 것이다.
총소리도 멈췄다. 그 제서야 전우들을 일으켜 1소대에 고함을 치며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만 쓰러진다. 그때 저쪽에서 우리 소대장님(해병 중위 최상범)과 전우들이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며 “소대장님!”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며 뛰어갔다. 소대장님이 와락 손을 잡으며, 다치지 않았나 하며 껴안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진지 내로 들어오니 중대장님까지 눈물 섞인 소리로 껴안아준다. 진지 여기저기에는 포탄이 떨어진 곳이 움푹움푹 패어 있고, 우리 3분대장님은 어깨죽지 달아난 방탄복을 가리키며 “너희들은 행운아다”라고 말 한다. 분대로 돌아와 허물어진 벙커 안에 힘없이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심 해병님께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하고 말하니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아침밥도 먹히지 않아 맥없이 앉아 있는데, 2소대는 정찰준비를 하라는 명령이다. 또 단독무장을 하고 중대 CP 주위로 정찰을 나갔다.
어젯밤 우리 청음초 자리에서 20야드 측방에는 월맹군들의 시체가 질서 없이 쓰러져 있지 않은가. 또 다른 곳엔 버리고 간 포탄과 각종 무기들이 딍굴고, 군데군데 피투성이로 물들어 있었다. 아! 어느 모로는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전우신문, 196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