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공세를 겪은 후 6중대는 짜큐마을을 지나서 서부 산악지역이 시작되는 106고지로 진지를 옮겼다. 새로운 중대 방어진지는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의 100고지여서, 저 멀리까지 평야의 논밭들이 발밑으로 내려다보이고, 멀리 보이는 호이안 시내는 물론이고 그 너머로 태평양 남지나해까지 내다보이는 좋은 전망을 갖춘 곳이었다.
또한 프랑스 군대가 구축한 튼튼한 방어진지이기도 하여 이제는 좀 살 것만 같았다. 모든 것들이 안정을 되찾게 되더니, 대책본부 관측장교로 인사 발령이 났다. 이제는 소총소대장 끄읕! 이었다.
대대본부의 분위기는 소총소대와는 판이하게 느긋했다. 대대수송관은 해병학교 33기 최인석 중위였고, 통신관은 해병학교 34기 이기정 중위이고, 군의관은 수도의과대학을 나온 이모 중위였는데, 시간의 여유가 생겨 이 분들과 어울려 캔맥주를 마시며 전쟁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대본부에는 중포중대가 배속되어 있어 구정공세 때 6중대에게 지원방어사격과 조명지원을 적절히 잘해주었는데, 거기에 동기생 권오찬 중위가 있었다. 또한 대대본부 방어에는 7중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동기생 송재원 중위가 있었고, 한편 동기생 신동민 중위가 한국에서 갓 도착하여 대대본부에서 대기 중이었다. 송 중위는 대대본부에서 1번 국도까지 매일 도로 정찰임무가 있었던 중에 베트콩의 기습을 받아 부상자를 많이 내어 침체한 분위기에 있었다.
대대본부 81mm박격포반에는 임만수 해병이 잘 버텨내고 있었다. 임만수 해병은 고향 후배이자 먼 친척으로 이웃에 살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후배였다. 2대대에 배치된 것을 81mm박격포반에 인사발령을 내주었다.
81mm박격포 반장은 김영환 중위(해병학교 34기)로, 나하고는 대학 동기동창이었다. 81mm박격포반 선임하사관에게 양담배 한 보루를 사주고 임 해병을 부탁해놓았었다. 추라이전선에서 대대 81mm 지원을 받아서 중대 정찰을 나갈 때 임 해병이 주간정찰에 참가하게 되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었다. 대대본부에서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반가웠다.
호이안 지역은 월남 중간의 허리가 가장 잘록한 지역이어서 서부 산악지역이 가깝고, 산악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들이 여기저기 어우러져 흐르는 평야지대이다. 호이안의인구는 16만여 명으로, 주민들의 성향은 3할은 공산주의자이고, 2할이 정부편이며, 5할이 중도입장이란다. 중도파는 실상 베트콩들에게 세금을 내어 협조한다고 보아야 했다.
호이안 시는 광나이성의 성청 소재지로, 성장(省長)은 육군 대령으로 대대급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디쉬엔 군수는 육군 대위로 중대급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 지역 내의 베트콩 지방군은 대대급 병력으로 약 500여명 정도인데, 기본화기는 AK소총이고, 61mm와 82mm 박격포, 57mm무반동총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공격 작전 시에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증원부대로 월맹군 2사단 병력과 베트콩 5군 예하의 연대병력이 120mm, 140mm RKT포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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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전지역에서 작전을 마치고 헬기 탑승 준비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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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본부에서 10여리 떨어진 곳에 짜큐마을은 가톨릭촌으로, 이곳 출신의 신부가 티유 대통령의 정치고문이어서 주민들은 청룡부대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2대대 민사(S-5)에서 이 마을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었다. 어느 날 민사장교 김공수 중위(해병학교 33기)가 신부와 함께 여단본부 수송본부 트럭에 밀가루를 싣고 본부와 디쉬엔 군청을 지나서 개울을 건널 무렵, 베트콩이 매설한 전기식 폭발물이 터져 김공수 선배가 즉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굉음을 듣고 급히 달려가 현장을 보니, 폭파된 지점에는 큰 웅덩이가 깊게 파였다. 김공수 중위는 차라리 월남어를 안 배우고 월남에 왔다라면 민사장교도 안했을 것이고, 더욱이 이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늦게 월남에 오는 바람에 나에게 소대장 인수를 받았고, 한 달만에 소대장을 다시 나에게 인계하고 민사장교를 하였는데, 애석하게도 전사하였다.
대대관측반에서는 레이더시설을 운용해야 하지만, 레이더는 없고 병사들도 약간 명일뿐이어서 나에게는 휴양처와 같았다. 여단본부에서 매일 날아오는 헬기를 타고 여단본부에까지 왕래가 가능해졌고, 여단에 나가면 헬기로 다낭 미 해병대 비행기까지도 수송이 가능해져 밖으로의 활동이 가능해졌다.
1967년 4월 15일 부로 중위로 진급이 되어 월남에 도착부터 중위월급을 받게 되었다. 월남에서는 해외근무 수당이라고 해서 소위는 120달러, 중위는 135달러를 받았다. 31일인 달에는 139달러 50센트를 받았는데, 하루 수당으로 보면 소위는 4달러, 중위는 4달러 50센트, 대위는 5달러가 된다. 수당의 80%는 고국으로 송금해야 했고, 또한 전쟁터에서는 돈을 쓸 일도 없었다. 필요한 것은 대대본부에 있는 PX에서 편지지, 편지봉투, 볼펜 정도였고, 그나마 사병은 전방중대에서 대대본부까지 나올 수도 없었다. 1968년도의 우리나라 GNP는 200달러 정도였으니까, 주월 한국군과 월남에 진출한 근로자들의 외화획득은 국력의 막강한 원천이 되었다.
5월 6일부로 귀국명령 일자를 통보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같이 월남에 온 장수근 중위가 1 제대로 4월 중순 꼭 1년 만에 귀국선을 타게 되어 무척 부러웠지만, 나도 몇 주간만 참으면 되었다.
귀국을 앞두고 추라이 미 해병대 PX로 가서 이것저것 둘러보았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는데, 한 코너에 예쁜 콩아이(처녀)가 점원으로 있어 가보니 보석코너였다. 월남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의사소통을 했더니, 다이아몬드 반지를 몇 개 골라주면서, 총각이니 결혼선물로 사가라고 웃으며 권유했다. 좀 큰 것은 149달러 짜리로 0.3캐럿인데, 이것을 사면 주머니에 남는 것이 없어 그만두고, 다른 하나는 쌍가락지였는데, 디자인이 훨씬 예쁘고 값이 좀 싼 129달러짜리여서 흔쾌히 값을 지불하고 사가지고 돌아왔다.
귀국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여 어느 여인이라도 마중 나오기만 하면 멋진 포옹을 하고 이 다이아몬드를 꺼내 손가락에 끼워주고 싶은 공상도 해보았으나, 역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반지는 지금 집사람이 외출할 때면 가끔 끼고 나가는데, 여하 간에 이 반지는 월남전에서 내 한 달치 목숨 값을 의미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