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귀국선에 오르게 되었다. 그동안 1년여의 세월이 지나갔고, 월남 땅에 많은 땀과 피를 뿌리고 귀국하게 된 것이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월남전에서의 소총소대장으로서의 경험은 내가 이 세상에서 생존경쟁에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시험해보는 시험장이었다. 나는 이 시험에 무난히 통과되었고, 앞날에 어떠한 난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헤쳐 나갈 자신이 생겼다. 귀국선에서는 함께 떠나왔던 동기생들도 다시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웠다.
귀국선은 육군병력을 후송하는 중인지라 새로 월남에 오는 장병들을 가득 싣고 다낭 외항에 정박하여 해병대 귀국 장병을 싣고 남하하여 나트낭 항구로 내려가서 육군병력을 내려놓는 동안 시간의 여력이 있기에 나는 배에서 내려 나트낭 시가지를 밟아보기도 했다.
이제 배는 북진을 거듭하여 고국으로 향했다. 갑판에 올라가 태평양의 넓은 바다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고기 떼들이 뛰어오르면서 배를 따라오기도 했다. 남지나해를 지나고 동지나해를 거쳐서 드디어 열흘 만에 부산항에 도착하여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오륙도를 보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배가 제3부두에 도착하여 내다보니 환영 나온 많은 인파들의 환영열기가 대단한지라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를 마중 나올 사람은 애당초 연락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였다.
부산 3부두에서 열차를 타고 가다가 울산역을 지나 포항에 도착하였다. 1년여 만에 다시 밟아보는 포항 땅이었다. 4월 13일 출국하여 이듬해 5월 16일에 도착하였으니, 1년 1개월 3일만이었다.
포항사단에 도착하여 며칠을 대기하다가 부대배치를 받게 되었는데, 김포여단으로 가고 싶었지만, 에상치도 못한 진해교육기지사령부로 인사명령이 난 후였고, 더욱이 휴가기간도 없이 부임기간이 닷새밖에 안 되어 무정한 인심이 섭섭했다. 우러남에서 죽도록 싸우다가 1년여 만에 귀국했는데, 보상휴가나 정규휴가도 없이 전출명령만 있을 뿐이었다.
진해는 정말 가기 싫은 곳이었다. 후보생 기간과 기초반교육 기간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나는 곳이었다. 포항에서 열차로 출발하여 서울역에 내려 남양주 고향집으로 갔다. 하룻밤을 집에서 자고는 이 친구 저 친구 만나러 다니기에 바빴다.
O실이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그 어머니께서는 나를 보더니 대성통곡을 하신다. 반가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동안 변고가 생긴 것이었다. O실이 바로 밑으로 장남 시명이가 있는데, S고등학교를 졸업하고 K대학 생물학과 1학년 신입생이었다. 시명이는 밝고 명랑하고 잘 생긴 학생인데다가 네 번째로 태어난 외아들이어서 귀여움도 독차지 하고 자랐는데, 그만 지난 여름방학 때 제주해안에서 익사하였다는 것이다.
여름방학이 되어서 집에 쉬고 있다가 월남에 있는 나에게 고춧가루를 보낸다고 소포를 꾸려놓기도 하였는데, 고등학교 친구들이 갑자기 제주도에 놀러가자고 해서 그만 따라갔다가 제주 중문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순식간에 익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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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전에서 뒤국하던 해 가을 / 살아서 돌아온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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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이는 나를 무척 좋아했고, 서울시립농대에 누나를 따라 여러 차례 와서 과일을 먹고 놀고 가기도 했었다. 더욱이 생물학과에 입학하고서는 천마산으로 곤충채집을 가게 되면, 우리 집에 들러 인사도 하고 물도 마시고 갔다고 했다.
시명이 아버지는 귀여운 아들이 갑자기 저승으로 가시자, 하시던 간장공장은 큰 사위에게 운영을 넘겨주고 못 드시는 술로 세상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신다고 하였다. 너무나 안 된 일이었다. 전쟁터에서만 사람 죽어가는 줄 알았는데, 전쟁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죽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웠다.
강호태 미금면장을 꼭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월남에 있는 동안 양주군수에게 편지를 보낸 것 때문에, 군직원과 면직원들은 우리 집이 파월장교 집이라고 해서 보리농사며 벼농사를 1년 동안 다 거들어주었다고 했는데, 내기 부대 부임기간이 워낙 짧아서 찾아뵙지 못한 것이다. 장 면장님은 내가 귀국하고 2년이 안 되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묘소라도 찾아가 인사드려야 했지만, 아직까지 그러질 못했다. 그 분은 내가 인사오지 않은 것을 내내 섭섭하게 생각하시다가 저승으로 가셨다고 하니 더욱 죄송할 따름이다.
진해기지교육사령부로 가서 인사과장에게 도착신고를 했더니, 이건 또 왠 날벼락인가! 상남훈련연대로 인사발령을 낸 것이다.
상남훈련연대의 연대장은 우순제 대령(해간 3기)이셨는데, 인품이 매우 좋아보였다. 연대장님께서는 나에게 귀국을 축하한다고 격려하시면서 교수과의 교관을 명령하신다. 교수과장 최훈일 대위(해간 29기)에게 신고를 하니, 내일 보전협동작전(步戰協同作戰) 과목 2시간 짜리 강의가 있으니 강의준비를 하라면서 자기의 담당과목 교안을 넘겨주신다.
나는 기초반에서 보전협동강의를 들은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지만, 하는 수없이 교안을 받아들고 전차의 모든 제원들을 파악하고 90mm와 Cal 50의 제원과 사격술 등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고, 보병과 전차와의 관계를 공부하였다.
수강자는 해사 22기생으로 기초반 교육과정이었다. 교장에 나가서 과업보고를 받고는, 월남 전황을 설명해준 보전협동작전 강의는 대충 하고 전차의 시범기동을 보여주고 강의를 끝냈다. 1년이 지나면 파월하여 소대장 요원이 될 터인데, 죽지 않으려면 강의를 잘 들어야했기 때문에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행군 및 숙영과목도 내가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교육 대상자는 해간 42기 후보생이었다. 상남훈련대에서 전술학과 화기학의 교육이 다 끝나고 나면, 종합 행군이 마지막 과정으로 있어서 42기 후보생들과 경상남도 일대에서 일주일간의 훈련을 같이 해냈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숙직 근무를 마치고 병사 밖에서 세면을 하는데, 어떤 하사관 후보생 피교육자가 구보하면서 지나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경례를 하고나서, 상회형님 아니세요? 하며 인사를 하기에 알고 보니, 고향 평내 담안에 사는 정재훈이었다. 하사관학교에 입대해서 후보생 교육 중이라 했다. 몸 성히 교육 잘 받으라고 위로하고 돌려보냈다.
마침 하사관학교의 중대장이 동기생 김기섭 중위여서, 정재훈 후보생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고 원하는 병과대로 처리해달라고 했더니, 공병 병과를 주어 육군공병학교에 입교시켰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