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훈련소 병과분류장교 (42화)

1969년 1월 9일 해병훈련소 소장 박희태 대령(해병학교 3기)에게 신고하였다. 훈련소 인사장교는 박용하 대위(해병학교 28기)이고, 최종선 상사와 이종선 하사(현재 남양주 금곡에 거주)가 있었다.

병과분류장교의 임무는 매달 입소하는 신병들을 대상으로 중대 단위별로 2시간씩 세 차례 모두 6시간에 걸쳐 병과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이다. 매달 800여명이 입소하는데, 중대는 200여명으로 각 대대는 4개 중대씩이었다.

중대별로 첫 번째 2시간은 해병대 병과의 종류와 병과의 임무를 소개하고, 두 번째 2시간은 면담을 통하여 병과를 의논하며, 마지막 세 번째 2시간은 최종적으로 병과를 분류하는 시간이다. 개인의 특성을 살려서 공업학교 출신이면 병기, 공병, 통신, 수송, 기갑, LVT 등으로 구분하고, 상업학교 출신이면 보급이나 기타 병과를 부여하고, 기술자격증이 있으면 그 분야의 병과롤 결정하지만 대부분이 보병이었다.

매달 1개 기수 800여명이 입소하게 되는데, 그 명단 중에서 내 고향 양주 출신이 있으면 뽑아놓았다가 내가 당직 근무하는 날 밤이면 불러다가 궁굼했던 고향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향수를 달래고 라면을 끓여 대접하기도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두 사람이 BOQ로 찾아왔다. 화도면 마석에서 왔는데, 내 둘째동생 친구들로 다음날이 해병훈련소 가입교라고 한다. 해병훈련소에 입소해서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 무사히 수료하라고 일러 보냈다. 8주가 다 되어 이 두 사람이 수료하게 되어 무슨 병과를 줄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항공병과에 딱 두 명이 있어 항공병과를 주었다. 항공병과는 매 기수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병과였다.

이 두 해병은 포항해병사단으로 가서 항공대에서 근무를 했고, 월남에 가서도 다낭에 있는 미 해병대 비행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M16소총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베트콩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는데, 이 두 해병의 이름은 이해우와 윤동구였다.

해병훈련소에서 근무한지 석 달이 되어갈 무렵, 3월 1일부로 동기생이 모두 대위로 진급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입대하기 전에는, 해병 중위로 3년간 근무하고 제대한 후 미국으로 유학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막상 대위 진급명령을 받게 되니 기뻤다.

어느 토요일 오전과업이 끝나갈 때 제1정문위병소에서 면회객이 왔다는 전갈이 왔다. 군대생활 하는 중에 면회를 올만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없었는데, 면회객이 왔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위병소로 가보니, 어느 중노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해병대위 진급 기념 (1969. 3.1.)

▲ 동기생 전원이 해병 대위로 진급하였다 (1969. 3.1.) / 진해교육기지 동기생들과 임관기념. 오른쪽 끝이 필자이다

이 노인의 말은 이러했다. 해병대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최광웅 대위(해병학교 34기)의 여동생이 자기 딸과 경남여고 동창생이어서 최 대위의 소개로 나를 찾아오게 되었고, 자기의 아들이 지금 해병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병 교육 중에 있어서 면회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면회는 일체 금지되고 있던 시기인지라, 묘수를 생각해냈다. 그 노인이 나에게 면회를 신청해서 해병훈련소 사무실로 들어오게 하고, 훈련병은 내 사무실로 불러들여 내 사무실에서 부자상봉을 시켜주었다.

그 다음 토요일, 면회신청자가 또 있어서 웬일인가 생각하고 위병소로 가보니 또 그 노인네가 찾아온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고마웠다고 인사하면서 담배 한 보루를 내민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니까 염려마시고 돌아가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점심이라도 대접하겠으니 같이 가자고 하였으나 사양하고 돌려보냈다.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분이 찾아오셨다. 면회 왔을 때마다 사례하는 것을 모두 거절하였더니, 섭섭했던지 이번에는 돈다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극력 사양하고 아들은 내가 보살펴 줄터이니 걱정 마시고 돌아가시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소식이 없었다. 그 노인의 아들이 이창범 신병이었는데, 원하는 병과는 보급병과라고 해서 훈련소 교육을 수료한 후에 보급교육반으로 보내주었다.

해병훈련소 병과분류장교는 계급은 중위이지만, 청탁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청탁이라야 병과를 부탁하는 것으로 수송, 공병, 보급 등이 대부분이었고, 청탁해오는 사람들은 고향의 일가친척들을 둔 해병대가족들로 무언가 좀 베풀어주어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중에도 꼭 유의해야 할 것은 보병(03병과)을 부탁하는 고급장교의 청탁이었다. 한번은 최종 병과 분류시간에 서울공대 재학 중인 훈련병이 있어서 공병으로 병과 결정을 하겠다고 의중을 떠 보았더니, 보병을 꼭 원한다는 것이었다. 1년이 지나 해병대사령부에 일이 있어 들렀을 때, 그 훈련병이 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해병훈련소 인사관실에서 충무대(진해교육기지사령부 전화 호칭) 전화는 진해 이외의 지역은 통화권이 불가하였지만, 내가 부탁하는 것은 포항사단이든 김포여단이든 백령도이든 안 통하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는 서울사령부 교환을 통해서 시내 가정집까지 연결할 수 있는 끗발 있는 자리였다. 왜냐하면 충무대에 근무하는 교환아가씨들도 나에게 잘 보여야 혹시 부탁할 일이 생겨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이 나는 총각장교여서 이 아가씨들이 더욱 환대하여 주었다.

한번은 동기생으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 처남 될 사람인데 무슨 병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강화도 출신 훈련병으로 아무래도 처남감이라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냥 처리해주었다. 아마 다리에 다리를 거친 청탁이었을 것이다.

대위로 진급한 뒤 보병대위의 파월로 인하여 중대장 요원이 부족하니 전출을 지원하라는 포항해병사단의 공문이후 방 부서에 와 있던 차라, 해병사단으로 진출원서를 내고 7월 14일 진해를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