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진학을 권유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한다는 것은 여태껏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또한 사립대학교라고는 다녀본 적이 없었으나 여러 친구들의 의견도 듣고 심사숙고한 끝에 그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내가 해외유학을 할 수 있는 가정형편이 도저히 되질 못했기 때문에 결국 동국대학교 대학원박사 과정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굳혔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입학과 박사과정 입학시험을 치르고 등록을 마친 후에 5월말까지 장미원 조성과 식재를 끝내주고 6월 5일 부로 사표를 내고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대전 동학사를 거쳐 계룡산을 넘어 공주 갑사와 마곡사를 둘러보고 머리를 식힌 다음에, 중앙일보사를 정리하고 대학원에서 연구에만 전념하기로 작심했다. 계룡산 골짜기에 만발했던 산딸나무의 아름다운 하얀꽃은 지금도 마음속에 담겨져 있다.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시험에서 영어와 독일어 시험을 치르었는데, 무난히 합격되었다. 군대생활 중에도 Digest는 틈틈이 읽었고, 석사과정 중에서도 전공과목은 원서강독을 하느라 영어는 꾸준히 해온 터였으며, 독일어는 해병학교에 입교하기 전까지도 독일어 학원에서 1년간 꼬박 공부해온 것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이 되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자고 결심을 했지만, 장미원 조성은 어차피 내가 맡은 일이어서 끝까지 마무리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장미를 식재할 때에는 야간에 솜방망이에 불을 밝혀가면서 일을 하여 작업을 끝냈다.
1975년도 신학기에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 되어 동국대학교로 출근 길이 바뀌었다. 지도교수는 임학과 교수 권뢰택 박사님이셨는데, 농림대학 학장이신지라 나는 학장실에서 조교로 근무하게 되었다.
농림대학에 조경학과가 신설되어 신입생 40명이 입학하였고, 임뢰택 학장이 조경학과장을 겸직하게 되어 조경학과의 사무는 자연 내 몫이 되었다. 당시는 유신정권 때인지라 학생관리 업무가 많았다. 학생들의 신상카드를 작성하고, 매달 면담기록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제도가 있었다. 40명 학생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면담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임학과의 교수진은 권뢰택, 정종구, 권영대, 이상식, 김창호 다섯 분이 계셨는데, 이상식 교수는 임학과 1회 졸업생으로 궈뢰택 교수의 수제자였고, 김창호 교수는 2회인데 정종구 교수의 제자였다. 권영대 교수는 안동 권 씨로 안동 출신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교수 간의 대립과 반목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는데, 그런 와중에 내가 권뢰택 교수의 문하로 들어가게 되어 질시와 눈총을 받아야 했다.
박사 과정 1년이 지나자 권뢰택 교수님은 학장 임기가 끝나고 연습림 관리소장의 직책을 맡게되어 본관의 학장실에서 도서관 건물로 옮겨가니,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좋았고, 시간의 여유도 있어서 내 공부하기에 편리했다.
|
|
| ▲ 불교학과 김영길 교수와 함께 / 김 교수는 18년 걸린 박사란다 |
|
중앙일보사에서 거친 일만 하다가 대학 캠퍼스로 돌아오니, 캠퍼스는 젊음의 활기가 넘쳐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되어 아침 9시에 나와서 밤 11시경까지 열심히 내 공부를 하게 되었고, 밤늦게 하교하면서 하루에 한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했다.
3년 간을 이렇게 대학원 박사과정에서만 매달렸더니, 단독주택이 13평 아파트로 줄어들고, 다시 7.5평으로 이사 가야 했다. 박사과정 2학년을 마치고는 상명여자대학교 가정교육학과에서 서른일곱 살 나이에 처음으로 대학 강의를 하게 되니 무척 기뻤다. 대학교수가 되는 길에 한 발자욱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동국대학교에서는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면 강의를 한 과목도 안 주고 박사과정을 마쳐야 겨우 주는 인색한 곳이었다.
어느덧 박사과정도 마지막 학기가 되어 3년 차가 끝나갈 무렵에 조경학과가 폐과되고 그 대신 도시행정학과가 신설되었다. 박사과정 3년을 마치면 전임이 될 것을 꿈꾸고 있었는데,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암담해보였고, 지도교수이신 권뢰택 교수님 마저도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울대 농대에 계신 송해균 교수님이 예산농업전문대학에 가서 학장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라고 하여 찾아뵈었더니, 조경과 전임강사는 유보하기에 강사만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1980년도에 즐겁게 출강하던 중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휴업령이 내리는 바람에 1학기 강의는 이것으로 끝나야 했다.
상지대학교 병설전문대학에서 조경과 교수 초빙 공고가 신문에 나왔다. 이 대학에는 학기 초부터 강의를 나가던 중이었는데,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도 하였다. 면접과정에서 생일을 묻기에 이 대학에서도 중앙일보사처럼 생일날 선물을 주는 줄 알았다.
대학원 박사과정 중에 <조경학원론>. <조경사>, <조경설계시공> 등 조경서적 몇 권을 번역한 것이 있어 면접할 때 이 번역서들을 실적물로 내놓았다. 면접결과는 잘 되어서 대학교수가 되니 뛸 듯이 기뻤다.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면접 시에 박사과정은 이미 수료하였으므로 조교수는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8월 13일부로 조교수 발령을 받게 되었다.
상지대학교 김문기 이사장은 면접 시에 관상전문가를 모셔다놓고 자문을 받는다고 했다. 여하튼 나는 시험에는 약해도 면접에는 강하였다. 중앙일보사 면접 시에도 이병철 회장한테 낙점되었고, 상지대학에서도 면접에 낙점되었으니 관상은 확실히 좋은가보다.
상지대학교 김문기 이사장님은 내 일생에서 세 번째 고마우신 분이다. 첫 번째는 청량상업고등학교에 편입학을 허락하여 주신 박격흠 교장선생님이시고, 두 번째는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학기마다 등록금을 융통해주시고, 중학교 교사 임용과 고등학교 교사 복직에 도움을 주시고, 그리고 상명대학에 강의를 주신 배상명 총장님이셨다.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