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은 내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조경학과 교수로 부임한지 7년째가 되는 해였고, 어느덧 지천명(知天命, <논어>와 공자의 말에서 유래하여 나이 쉰 살을 이르는 말)의 나이가 되는 해였다.
내가 집사람과 결혼하기 전에 처가에서 나의 사주를 보았더니, 내 사주에는 마흔 살까지는 주머니에 동전소리만 달랑달랑 한다고 나와 있었다고 했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어렵사리 농촌에서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해야 했고, 해병대 초급장교 시절에 갑자기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어 칠남매의 장남으로서 가장이 되어 동생들 뒷바라지와 내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마흔 살이 되어서야 대학교수가 된 것이다.
그 사이 동생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 자립하게 되었고, 또한 사주에 쉰 살부터는 관운이 있다고 했다는데, 내 나이 쉰 살에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명예롭다는 학장이 되었다. 대학교수가 된지 꼭 10년 만에 경사로운 일이 생긴 것이다. 처음 맡는 보직이라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해야겠다는 각오로 처음에는 밤에 잠도 잘 오질 않았다.
학장보직을 맡고 나자 교수초빙 문제가 터져 나왔다. OO학과가 신설되어 전공교수를 초빙하게 되었는데, 6명이 지원하였으나 초빙이 보류되어 있는 상태였다. 2학년까지 올라갔어도 학과에 교수가 한명도 없어 신설학과의 운영에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학장으로 부임즉시 신임교수 초빙을 서둘렀다. 교무처장과 교무과장, 그리고 학장 등 3인이 회의를 한 결과 기계안전공학 분야를 교과과정상 우선순위 과목으로 정하였다.
지원자 6명은 기계공학 분야 2명, 건축 1명, 전기 1명, 화공 1명, 기타 1명이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학박사 학위 소지자였다. 교과과정에 맞는 기계공학 분야로 두 분을 선발하여 인사위원회에 신청하였더니, 결과는 상정된 사람 중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고 기타에 해당되는 사람이 내정된 것이었다.
경주, 서울 합동교무위원회의에서 초빙 대상 인사의 부당함을 밝히기 위하여 지원자 여섯 사람의 나이, 학력, 학위, 정공, 논문업적 등을 근거자료로 만들어 교무위원들에게 배포하여 인사가 잘못되었음을 설명하고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나의 주장이 당연하다고 수긍하는 분위기였으나 민 모 교무처장은 억지 변명을 늘어놓고, 조모 경영대학원장은 자기 제자로서 학과를 신설하다시피 했다느니 헛소리를 하고, 오모 부총장이라는 사람은 마치 학장이 기계분야 쪽으로 제출한 사람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처럼 폭언을 하였다.
신모 총장은 최 학장의 충정스러운 말은 이해하지만 양해해달라고까지 하여 총장마저 이렇게 나오니 도리가 없었다. 교무위원회가 끝나고 총장실에 가서 초빙서류를 보니 학장 자리에만 빈 칸이고, 양쪽으로는 이미 붉은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미 인사는 끝난 것이었다.
1학기가 지나고 2학기 초가 되어 OO학과 2학년 대표학생 두 명이 학장실로 왔기에, 면담을 하였더니 새로 부임한 A교수가 문제가 있다고 30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고 당돌한 요구라 내가 감내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었지만, 학장인 내가 잘 처리할 터이니 학생들은 조용히 기다려달라고 달래서 내보냈다.
추석 직전의 일들이라 추석 연휴 중에도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교무위원회가 열린 중이었는데, 꽹과리와 징소리가 들리더니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감하고 있었던 일이라 급히 알아보았더니, 급기야 OO학과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와서 교정으로 돌아다니면서 농악기를 두드리며 구호를 외쳐대는 것이었다.
수일이 지나도 풀린 기미가 보이질 않더니, 학생들은 교수 연구실을 점거하여 농성하다가 결국에는 연구실의 모든 책들을 교수 집으로 택배운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학당국에서 무리한 인사를 감행하더니 이런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그뿐아니라 학장실과 교무처장실 출입문에는 각목을 X자로 대고 못을 박아 폐쇄시키기까지 하였다.
여기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벌어졌는데, 강사의 담당과목 성적을 A교수가 변조한 사건이 연구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어느 학생의 성적이 D였던 것을 B로 변조한 것이다. 그 교수는 학생 본인에게 좋은 점수로 고쳐주었다고까지 자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로 학생들은 더욱 분노하게 되었고, 학생들이 교수의 퇴진을 외쳐대기를 35일간이나 계속하더니, 결국 2학기가 끝날 무렵에 가서야 A교수는 2년 간을 휴직하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교수초빙 인사를 억지로 하더니 결국은 학내 소요의 원인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새해가 되어 신OO 총장 대행은 끝나고, 민OO 총장이 새로 임명되었다. 총장이 바뀌게 되면서 자연대학장 임명장도 새로 받게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더니 이번에는 ××학과 학생들이 교수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B교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B교수 연구실의 집기들을 대학 정문 앞에 쌓아놓고 농성을 하더니 학장실을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했다. 교수문제로 또 학장실일 점거당하게 되어, 해마다 학장실이 점거당하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학과 학생들은 PC컴퓨터를 끌고 다니며 구호를 외쳐댔다. 상황을 파악해보니, 교수 개인의 문제도 있었지만 교수들 간의 알력이 심하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심지어는 학교의 큰 행사인 등산대회에 가서도 술을 마시고 교수 간에 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교수들 간의 알력이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는 한 달 간을 끌다가 겨우 해결되었다.
학장 발령은 두 분의 총장으로부터 각각 받았고, 어려운 많은 일을 겪어가면서 3년간의 임기를 끝마쳤다. 학장 보직이 끝나자마자 나는 연구년(흔히 안식년 이라고 함)을 신청하여 미국에 가서 1년간 쉬고 돌아와서 학생처장을 맡고 있던 중, 갑자기 자연과학대학장 발령을 받게 되었다.
이때에는 학부제는 최초로 시행할 때였는데 총장 말씀이, 최 교수가 자연과학대학장을 맡아서 학부제를 꼭 성공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장은 이미 3년이나 했다고 말했지만, 총장님의 뜻이 너무나 완강하여 하는 수 없었다.
연구년을 허가받아 미국으로 떠날 때 자연과학대학은 새 건물로 이사해서 단독 건물로 갖고 있을 때였다. 나는 새 건물의 새 주인으로서 새 건물을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어서 깨끗한 환경 조성을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중 하나는 자연대에서만 유일하게 ‘교직원 주차장’이라는 표지판을 관제과에 의뢰해서 설치하고 교직원들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오전 10시와 오후 1시에는 교직원 주차장에 학생이 주차했을 때 주차 위반 스티커를 윤전석 앞 유리창에 붙여 시정토록 하고, 학생주차는 체육관 앞 도로 양쪽에 주차선을 만들게 하고 여기에 주차하도록 유도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지정게시판에만 홍보물을 붙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게시판 문화는 정착되어 갔는데, 자연과학대 이외의 학생들이 건물 안에 들어와 아무 벽이나 홍보물을 붙이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자연과학대 건물은 타 건물에 비해서 상당히 깨끗하게 유지되었었다. 세 번째로는 건물 내에서는 금연이지만,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강의실에서는 여학생들의 항의로 담배를 못 피우지만 복도나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면 담배연기가 늘 자욱했고, 복도나 계단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되지만, 청소하는 아줌마들의 일거리였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에서는 12월부터 학교 건물 내에서의 금연을 법으로 정한다니 잘 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