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연과학대학장 시절 교수들의 절실한 요구는 인터넷 망 설치였는데, 실험실습비로 충당하기에는 과중한 부담이 되어서 학교 교수회의에서 실험실습비로 인터넷 설치를 의논하는 한편, 나는 서울 캠퍼스 기획실과 의논해서 예산을 배정받는 일을 해냈다. 기획실장과의 협의 하에 여름방학 동안에 자연과학대 건물 각 연구실마다 인터넷 공사를 마무리하고, 인터넷을 첫 가동하는 날에는 총장님 참석 하에 첫 테이프를 끊었다. 자연과학대가 최초로 해낸 일이었다.
나는 학장 직무를 맡으면서 출근 30분 전 9시에 나와 저녁에는 밤 10시경에 퇴근하는 일을 꼭 지켜나갔다. 퇴근할 무렵이면, 연구실이 4층이니까 1층으로 내려오면서 복도를 한 바퀴 돌아 내려오면 자연히 순찰을 하는 셈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모두 5년간 학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매주 화요일 교무위원회의에서 논의된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회의자료를 만들고, 특히 자연과학대에 관계되는 사항이나 당부의 말들을 실어서 당일 오후에는 각 학과 교수들이 일일이 볼 수 있도록 배부하였다.
나는 동국대학교 개교 이래 영광스럽게도 학장 보직을 5년이나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1990년도에 신국주 총장 대행을 모시고 1년, 다음에는 민병천 총장님을 모시고 2년, 도합 3년 연속 근무를 하였고, 그 다음에는 1995년 송석구 총장님을 모시고 2년, 도합 5년 간의 학장을 하는 최장수 학장이 되었는데, 모두가 부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1992년 9월 경주에서 닷새 동안 세계조경가대회가 열렸다. IFLA본부에서는 경주에서 개최되기를 원했고, 한국위원회에서는 서울 개최를 주장했지만, 결국 개막행사만 서울에서 하고 모든 국제대회는 닷새 동안 경주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경주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준비는 총괄위원장인 나의 몫이 되었다.
회의준비는 서울 홍릉임업시험장에 준비 사무실이 마련되어 나는 홍릉으로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국제대회가 열리는 3일전부터는 경주 힐튼호텔에 총괄위원장 숙소를 마련하고 밤이면 힐튼호텔에서 자면서 대회를 준비하고 점검하였다.
드디어 9월 1일 5시에 참가자 제1진이 서울에서 관광버스로 도착했고, 6시 40분에는 기념식수를 했다. 기념식수는 대한조경이사장으로부터 기증받은 주목 20년생으로 식재행사는 나의 사회로 이루어졌다. 이때에 감격스러웠던 일은 조경가의 대부로 알려진 하바드대학 교수였던 Simonds씨가 기념식수를 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것이다.
밤 8시에는 힐튼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경주 이원식 시장 주최의 만찬이 있었다. 둘째 날에는 참가자의 동반자 행사의 한 부분으로 한국 전통혼례가 있었다. 이 전통혼례는 경주 향교의 지도아래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학생들이 맡게 되었는데, 신랑은 한상권 군, 신부는 조은정 양으로, 모의 결혼식이 아니라 진짜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
|
| ▲ 미국의 대조경 학자 Simonds 씨와 기념식수를 한 후 |
|
오후 화전(花煎, 진달래나 국화 따위 꽃잎을 붙여서 지진 부꾸미. 꽃전이라고도 함.) 놀이행사에는 조경학과 2, 3학년 여학생들이 화전놀이 전문가를 모셔다가 화전놀이를 하였고, 여기서 만든 화전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대접하여 즐거운 행사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우리 조경학과 학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조선호텔의 넓고 푸른 잔디밭에서 펼친 화전놀이는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IFLA 대회에 외국인 조경가 초빙계획이 있었는데, 중국 측은 내가 선정한 인사들로 초빙되었다. 몇해 전 일본 동경대학에서 세계식물원협회의 아시아지역 창립회의를 개최할 때, 서울대 임학과 김태욱 박사, 영남대 조경학과 김용식 박사, 동국대의 나, 이렇게 세명이 함께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때 사귄 친구가 중국 북경식물원장 양송령(梁松齡)이었다.
양 원장은 나와 나이가 같고 같은 해에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을 한 인연이 있었다. 양 원장은 북경 임업대학 출신으로 북한 유학생이 자기와 함께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북한 평양 모 대학 교수로 있다며 나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었다.
IFLA행사에 양 원장을 미롯해서 부원장 장좌쌍(張佐双), 식물원의 고문으로 계시는 양 원장의 대학 스승이신 여수훈(余樹勛) 박사님 등을 양복 항공료에다가 숙박비 전액 부담형식으로 모시게 되었다. 양 원장은 일본에서의 인연으로 한국에 처음 오게 되었고 더욱이 한ㆍ중수교가 이루어진 이후에 첫 번째 중국인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영광을 입게 되었다.
나는 이 행사가 끝나고 나서 이 분들을 서울로 모셔다가 과천에 있는 집으로 초대하여 과천대공원을 구경시켜주고 간단한 선물과 함께 귀국선물을 마련하라고 약간의 달러를 준 일도 있다.
양 원장은 매년 ‘라오펑요(老眀友)’라고 해서 매년 연하장을 꼬박꼬박 보내준다. 양 원장의 북한 친구와 함께 셋이 만날 계획은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세계조경가대회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최초로 실시된 국제대회로서의 큰 의미가 있다. 참가국은 모두 35개국이 되며, 회원 236명, 비회원 607명, 동반자 51명, 학생 364명, 도합 1,258명이 참가한 대규모회의였다. 주 대회장은 힐튼호텔이었고, 행사 및 숙박은 보문단지 내의 경주 도쿄호텔, 조선호텔, 관우호텔, 한국콘도 등이 활용되었다.
행사에는 학술회의와 조경작품 전시 등이 있었고, 연구부문 상금이 2,000달러이고, 설계작품 1등은 3,500달러, 2등은 2000달러, 3등은 1000달러, 4등은 500달러였다. 행사 말미에 고궁, 민속촌, 제주도, 설악산, 공주 등 다양한 관광코스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나는 이 기간 동안에 힐튼호텔에서 푹 쉴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마지막 날 밤 만찬장에서 그간 게양되었던 IFLA기를 선물로 나누어주었더니, 모두들 즐거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