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 간에 걸쳐서 중국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과 수교는 되었지만 공산국가여서 입국이 어려웠었는데 마침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중국연수단 계획에, 학장 보직을 맡은지도 3년이나 되어서 몸도 마음도 쉴 겸 신청하였다.
연수단 일행은 모두 21명으로, 대일여행사에서 일정을 계획하였고 교육부의 하모 국장이 인솔단장이었다. 이때만 해도 중국은 미지의 나라일뿐더러 공산국가여서 중국의 방문은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중국 땅은 워낙 넓어서 우리나라의 22배쯤 되는 960만㎢이고, 인구는 11억 3천여 명이나 되는 큰 나라였다.
11월 13일 오전 9시, 김포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2시간이 좀 지나 11시 16분에 상해공항에 도착하였다. 상해에 도착하니 겨울 철 답지 않은 내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는데, 우리를 마중 나온 가이드는 조선족 예쁜 여인 김란(金蘭)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1년 전에 동국대 경주캠퍼스를 방문하고 불교대학에서 특강까지 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상해는 인구 1천 3백만 명의 대도시로서, 고층건물이 수두룩하고 자동차와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다니는 활기찬 도시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상해임시정부 청사였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정요인들이 6년여 동안 사용했던 곳으로, 마침 한국의 삼성물산에서 3억 원을 들여 복원공사를 한다고 하기에 10달러를 건축비로 헌금하였다.
옥불사(玉佛寺)를 구경하였다. 미얀마에서 운반해온 옥으로 만든 불상이 유명한 곳으로, 입장료 15원을 받는데도 관광객이나 예불 드리러 오는 신도가 많았고, 향 타는 냄새가 역겹도록 진했다. 저녁에는 황초강변을 거닐어보고 보륭호텔에서 하 국장과 함께 숙박을 했다.
둘째 날은 홍구공원(虹口公園, 현 노신공원)을 찾았다. 홍구공원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일본 사라카와 대장을 비롯한 고관들에게 폭탄을 던져 놀라게 한곳으로, 이로 인해 중국인들이 우리의 독립운동을 크게 지원하게 만든 계기가 된 곳이다.
상해역에서 우등기차를 타고 1시간 40분이 지나 12시 7분에 소주(蘇州)에 도착했다. “하늘에는 극락, 땅에는 소주,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이 있을 만큼 소주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소주는 아름다운 정원이 많아 원림지성(原林之城), 비단공장이 발달하여 사주지부(絲綢之府), 공예미술이 유명해서 공예지시(工藝之市), 쌀과 물고기가 많이 나서 어미지향(魚米之鄕), 문인들이 많이 살아 문화지방(文華之邦), 호수와 수로가 많아서 수성풍모(水城風貌)라고 불리는 천하의 유명도시이다. 소주시가지에는 녹나무 가로수가 많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녹나무(Cinnamomum camphora)는 ‘소주시의 나무’라고 했다.
호구공원(虎丘公園)을 먼저 찾았는데, 입장료 15원을 받았다. 산 언덕을 오르면 옛날에 천 여명이 앉아서 설법을 들었다고 해서 생긴 바위 천인석(千仁石)이 있고, 그 끝 벽에는 호구검지(虎丘檢知)라고 붉은 색으로 쓴 큰 글씨가 있는데, 옛날 오나라 시절에 왕의 무덤에서 보검 3천 자루가 나온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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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하의 고장이기도 한 소주(蘇州)시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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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 위로는 송나라 때(961) 지은 7층8각 건물과 47.5m나 되는 운암사탑이 우뚝 서 있는데, 오랜 세월로 무너질 듯 15도쯤 기울어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졸정원(拙政园)은 명나라 왕헌신이 만든 것으로, 5ha 넓이에 동원, 서원, 중원이 있고, 연못과 인공동산, 건물 등이 잘 어우러져 정원으로 인접한 곳에 사자림 정원이 있다.
유원(留園)은 중국 4대정원의 하나로서 1525년에 조성한 것이다. 면적이 4만㎢로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17개나 되는 정자가 있고 물과 건물, 그리고 원림이 조화를 이루며, 특히 태호석을 많이 사용하였다. 비단공장을 구경한 후 현란한 실크쇼를 보고 옥돌공장도 둘러보고 소주에서 1박을 했다.
1월 15일 8시 20분 소주역을 출발하여 9시 40분 상해역에 내려 예원(豫園)을 찾아갔다. 예원은 명나라 때 반윤단이 부친 반은을 위해서 만든 대저택으로 중국 강남 지방 정원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만국공원으로 가서 외국인묘지에 잠들어 계신 애국지사 노백린(盧伯麟), 박은식(朴殷植) 두 선생의 묘를 찾아 참배를 했다. 이 분들은 김구 선생과 함께 상해에서 독립운동으로 몸을 바치신 분들이었다.
오후 5시, 상해국제공항에서 러시아제 낡은 비행기를 타고 서안(西安)으로 날아가 밤 9시 30분에 호텔에 들었다. 서안은 당나라 시대의 수도로 장안(長安)이라고 불린 곳으로, 인구는 300만 정도이고 동서 10km, 남북 8.5km의 장방형 바둑판 같은 모양으로, 도시계획에 의한 질서정연한 모습이 그대로였고, 성벽은 높고 두꺼웠으며 대문도 웅장했다.
1월 16일 토요일, 서안에서 아침을 맞이하여 새벽에 일찍 일어나 거리를 걸어보았더니 석탄으로 밥을 짓느라 석탄냄새가 매캐했다.
서안에서 먼저 찾아간 곳은 진시왕릉이었다. 교회로 35km 쯤 나가니 정삼각형의 낮은 동산이 나오는데,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발굴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지하에는 진시황이 살아 있을 때 26년간에 걸쳐서 70만 명을 동원하여 만든 장대한 지하궁전에서 발굴한 병마도용(兵馬俑坑, 옛 무덤주위에 묻어두었던 병사와 말 모양의 도자기 인형)이 있었다.
실물 크기로 6,000여개로 이루어진 군단으로 죽은 황제를 사후에도 지키기 위해 흙을 구워서 만든 인형의 얼굴표정과 머리카락까지도 각기 다르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땅속에 묻혔다가 2,000여년 만에 세상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 땅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의 위력에 다시 한 번 놀랄 뿐이었다.
청화지(淸華池)를 구경하였다. 3천여 년이나 된 온천으로 양귀비가 사용했다는 목욕탕이라 하여 유명해졌다. 또한 장개석이 서안사건 때 일시 감금되었다는 오간가(五間家) 건물에는 백일홍나무와 비파나무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서안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석류나무 과수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석류(Punica granatum)는 ‘서안시나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