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도착하고 두달 정도가 지나니 살림살이도 안정되고 학교생활도 어느정도 익숙하게되어 미국생활에 눈을 뜨는 시기가 되었다.
대학이 있는 소도시 블랙스버그에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까지는 자동차로 네 시간 반쯤 걸리고 천백리 길이나 되는 먼 거리였다. 450km(270마일)쯤 떨어졌지만,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리 멀다고는 볼 수 없는 거리이다. 남쪽으로 30여리쯤 떨어진 곳의 크리스챤버그에서 81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북방향으로 계속 달려 30분 정도 지나면, 로아녹이라는 비행장이 있는 소도시가 나오는데, 강원도 원주와는 자매도시이다.
두 시간쯤 달리다보면 스타운턴(Staunton)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64번 고속도로를 따라가면 버지니아가 있는 샤로트빌(Charlotleville)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의정부와 자매도시인 리치먼드가 나오며, 계속 동남쪽으로 가면 유명한 버지니아 비치가 나오면서 대서양과 맞 닿게된다.
81번 고속도로의 왼쪽 편은 아팔라치아산맥이 나란히 달리고, 오른쪽으로는 세난도국립공원지역이 나온다. 남북전쟁 때에는 치열했던 전쟁터여서 황폐하였으나, 지금은 숲을 복원해서 아름다운 국립공원이 되었는데, 유명한 관광지로는 루레이동굴이 있다. 우리나라의 동굴같이 아기자기한 게 아니고 웅장한 맛이 나는데, 자원봉사자가 십여 명씩 한 그룹으로 나누어 안내하며 설명해준다.
해리슨버그를 지나자 휴게소가 있어서, 준비해간 간식을 좀 먹고 마시며 세난도 국립공원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쉬었다. 다시 북상하여 스트라스버그에 이르러 동쪽으로 갈라진 66번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정신 차리고 가다보면, 왼쪽으로 덜레스국제공항 간판이 보이고, 조금 더 가면 시가지가 나타나는데, 여기가 북부 버지니아로 우리나라 교민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시가지를 조심스럽게 달리다보면 작은 강여울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유명한 포토맥강이다. 다리를 건너면 국립 멀(Mall)이 곧바로 나오고, 직진하다보면 왼쪽4에 자그마한 백악관이 보이며, 좀 더 가면 웅장한 건물 국회의사당이 우뚝 솟아있다.
워싱턴DC의 중심지역은 국립 멀이다. 멀은 포토맥 강변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긴 직사각형의 녹색지대를 말하는데, 미국을 상징할 만한 주요 건축물들이 놓여 있다. 포토맥 강변 쪽으로 링컨기념동상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앞으로는 베트남 참전 동상과 한국전참전기념동상도 있다. 베트남 참전 기념벽에는 월남전에서 산화한 5만 명의 전사자명단이 검은색 돌에 새겨져 있다.
다음 블록에는 야트막한 구릉 위에 169.6m의 네모뿔 워싱턴기념탑이 높이 서있는데, 워싱턴DC, 어느 곳에서나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가 없는 랜드마크가 된다. 기념탑을 지나면 유명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국립아메리카역사박물관, 국립자연사박물관, 조각정원,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1번 국도변으로 줄지어 있고, 독립의 거리 쪽으로는 국립우주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들어서 있는데, 유명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연구소는 어린이들이 가장 흥미를 끄는 곳이다.
포토맥강 건너 북구 버지니아에는 미 해병대 유황도(Iwojima)상륙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다. 2차대전에서 결정적 승리의 계기를 마련한 전투가 유황도 상륙작전이었다. 그 옆으로 산기슭에 자리 잡은 알링턴 국립묘지의 푸른 잔디밭에는 흰 대리석 십자가에 전사자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데. 한국전에 참전했던 많은 병사들도 여기에 묻혀있다.
케네디의 무덤 앞에는 밤낮으로 불꽃이 타오르며 추모객이 늘 붐비고, 높은 언덕에 누워있는 케네디는 죽어서도 워싱턴DC를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강물을 바라보면서 숲속길 조지 워싱턴 기념 파크웨이를 남서쪽으로 17마일 달려가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생가와 농장을 기념하기 위해서 관광지로 꾸며놓았다, 생가 앞의 넓은 잔디밭과 생가 뒤뜰에서 바라보는 포토맥강의 푸른 물은 멋진 경치였다.
크리스마스에서 신년 초까지 열흘 정도가 겨울방학이어서 따뜻한 남쪽으로 여행지를 잡았다. 유학생 네 가족들과 함께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 월드로 가기로 결정하고, 12월 19일 일요일 새벽 6시 버지니아 블랙스버그를 출발하여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를 거쳐 12시간 30분 만에 플로리다의 제일의 도시 올랜도에 도착했다. 예약된 곳은 개인의 별장주택이었는데, 주인이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관광객에게 임대해주는 집으로 방이 여러 개이고 정원에는 수영장이 딸려 있다.
첫 번째 날은 매직킹덤에 가서 청룡열차와 잠수함 등을 탄 후 소인국 아메리카여행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둘째 날은 이콥센타(Ecop Center)에서 돌고래, 바다사자의 쇼, 수상스키, 하와이 홀라춤들을 즐기고, 셋째 날은 MGM에 가서 영화촬영 셋트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타투어 불꽃놀이 등을 구경하고, 넷째 날은 매직킹덤에 가서 못다 구경한 모험의 나라에 가서 전쟁모습 정글나라 배타기를 하고 퍼레이드를 구경한 후 쇼핑도 했다.
이렇게 해서 닷새간에 걸쳐 디즈니월드를 구경하고 나니 그 다음날이 마침 크리스마스였다. 올랜도 남쪽에 떨어져 있는 사이프로스 가든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프랑스 정원과 동양정원을 구경하고, 대형 플라스틱 하우스 안에 설치된 포인세티아 특별전시장을 보았다. 또한 공중시설물을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약초원, 장미원, 채소원 등 그림같이 펼쳐진 정원을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나비온실에는 12월인데도 나비들이 가득하게 날고 있어 신기했다. 호수에서 펼쳐지는 미녀들의 수상스키 쇼도 일품이었다.
일주일간의 올랜도 관광을 끝내고 유학생가족들은 모두 버지니아로 귀가했지만, 우리 가족은 집사람의 제의에 따라 플로리다의 최남단에 놓여 있는 섬 키웨스트로 떠났다. 키웨스타섬까지는 작은 섬들이 점점이 놓여 있어 다리를 놓아 연결시켰는데, 왼쪽은 대서양이고 오른쪽은 태평양이다. 바다의 수면이 매우 낮아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펠리칸새들의 낙원이었다.
키웨스트에 도착하니, 12월인데도 중국 무궁화(Hibiscus paramutabilis)가 만발하여 우리를 반겨주었다. 크리스마스 휴가철이라 호텔의 빈방이 없어서 한참 헤매다가 겨우 찾아낸 블루마운틴(청산)호텔은 방값이 150달러나 되었다. 정원에는 넓은 수영장이 딸려 있었다. 일찍 일어나 오전에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찾아가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살아생전에 고양이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정말 고양이가 많았다.
이 집에서 명작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가 탄생한 것이다. 코치 트레인이라는 꼬마 관광열차를 타고 시내 구경을 하고 소품 그림 몇 점을 기념으로 샀다. 며칠 쉴 것을 예정했으나 방값이 워낙 비싸서 포기하고 1박2일 관광을 마치고 떠나야만 했다. 연말연초에는 관광철이라 방값이 배로 비쌌다.
플로리다 여행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먼 거리를 달려서 돌아와야 했다. 키웨스트에서 섬들을 지나 마이애미 비치에 와서 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가스 스테이션에 들어가니, 덩치가 대단히 큰 흑인들이 서성거려 분위기가 험악한지라 기름을 넣고 부랴부랴 떠나야했다. 플로리다 쟉슨빌을 떠나 조지아 시골마을에 이르니 밤 11시가 되어, Days Inn에 들어가서 35달러를 주고 1박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간단히 차려놓은 식사를 마치고 노스캐롤라이나를 지나 버지니아의 접경지대에 오니, 산에는 온통 흰눈이 두껍게 쌓여있고 눈발이 계속 내리고 있어 길이 매우 위험스러웠다. 플로리다는 겨울철의 기후가 따뜻해서 첫날은 반팔에 반바지차림이었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백년 만에 처음 오는 폭설과 추위로 긴팔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이렇게 해서 열흘 간의 플로리다 여행은 무사히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