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양읍 상림(上林, 천연기념물 제 154호)은 우리나라 최초로 인공으로 나무를 심어 만든 숲이다. 신라 말 진성여왕(재위 887~897)때 함양군 태수(太守)로 최치원 선생이 있을 당시, 함양읍 가운데로 지나가는 하천(뇌계, 현 위천)이 범람하면 홍수의 피해가 극심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아 개울물을 마을 서쪽으로 돌리고 냇가를 따라서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
이 나무들은 모두 가야산에서 옯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 숲은 원래 대관림(大觀林)이라고 하여 십여리에 걸쳐 있었으나 중간에 마을이 생겨나서 숲이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더니, 하림마저도 공군부대가 들어오는 바람에 파괴되어 상림만 남게 되었다. 상림은 길이가 1,400m, 너비는 200m로 좋은 공원구실을 하고 있어 지금도 함양 사람들은 이 숲을 아낀다.
상림은 1962년도에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된 숲으로 면적이 12ha에 이르는데, 100~500여년 된 활엽수림이 114종으로, 느티나무, 밤나무, 이팝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서어나무, 윤노리나무, 층층나무 등이 주요 수종을 이룬다.
조경에서 식물의 이용은 기능적 이용과 미학적 이용으로 나뉘는데, 특히 기능적 이용을 중요시 한다. 기능적 이용이란 식물이 녹음수, 방풍림, 수원 함양, 공기정화, 소음감쇠, 야생조수의 먹이와 보금자리, 산울타리, 복사열 차단, 녹색지피 경계, 완충식재, 재해예방 등에 이용되어 환경을 개선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최치원은 최초로 식물을 미학적, 그리고 기능적으로 이용하신 분이다 .
<삼국사기> 권46 열전6 최치원조에 ‘영대사 식송죽 침적서사 소영풍월’(營臺榭 植松竹 沈積書史 嘯詠風月)‘ 즉, 높은 언덕에 정자를 짓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고 서사책들로 베개를 삼고 풍월을 읊는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우리나라 역사문헌 중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조경식물로 식재하였다는 최초의 기록인 셈이다. 더구나 여기서 소나무와 대나무 식재는 조경식물의 미학적 이용이다.
소나무의 푸른 솔잎과 붉은 줄기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철 변치 않는 푸른 잎은 나라에 대한 충성을 상징한다. 대나무의 곧은 줄기는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며, 변치 않는 잎 또한 임금에 대한 충성을 상징한다. 솔잎이나 대나무 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솔바람, 대나무 바람소리는 하나의 음악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무를 심으신 분이 최치원이고, 더욱이 식물을 조경에서 말하는 기능적, 미학적으로 이용하여 식재를 최초로 몸소 시행하신 분이다,
신라 말의 위대한 학자이신 최치원 선생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최치원은 경주 최씨로서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며, 신라 헌인왕 원년(857), 당시 신라의 수도 사랑부에서 태어났다. 여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재주가 뛰어나 주위의 경탄을 자아냈다.
고운은 12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6년이 지난 당 희종 원년(874) 18세에 빈공과(賓貢科) 과거에 급제하니 뭇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강소성 선주 율수의 현위라는 지방관을 지냈는데, 율수현은 강소성의 작은 고을로 녹은 많고 일은 적어 밤낮 연구와 저작에 정진할 수 있어서, 글들을 모아 중산복궤집 다섯 권을 저술하였다.
당시 황소(黃巢)가 60만 대군을 모아 당당한 세력으로 중국 전역을 휩쓸고 수도 장안까지 점령했을 때, 최치원이 격황소서(檄黃巢書, 황소를 꾸짖는 글, 880년 7월 8일 지음)를 읽고서 황소는 모골이 송연하여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이 격문은 문장력이 탁월하여 당나라 천지를 진동시켰으니 그 한 대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죽여 내놓고자 생각할 뿐 아니라 문득 또한 땅 속의 귀신들도 이미 몰래 죽이자는 말을 의논해놓았다.”
당 희종은 최치원의 공로에 감탄해 붉은 물고기 그림을 새긴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하였으며, 그 후 최치원이 신라로 귀국할 의사를 밝히자 사신의 자격으로 금의환향하도록 배려하였다.
|
|
| ▲ 조경학과 출신 조교 선생님들과 / 모두 미인들이고 재원들이다. 이들 중 두 명은 결혼식에서 필자가 주례를 섰다 |
|
고국을 떠난 지 17년 만에 29세 나이로 그립던 고국에 돌아오자, 현강왕은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의 요직을 맡겼다. 현강왕과 정강왕이 차례로 세상을 뜨고, 진성여왕이 왕위에 오르니, 나라 정세와 조정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최치원은 모함과 질타를 피해 태산(태인), 천령(햠양), 부성(서산)의 태수(태수)가 되어 목민관으로 일에 힘쓰게 된다.
정강왕 때 대산군 태수로 있으면서 창건하여 소요했던 호남 제일의 정자 피향정(披香亭)의 28개 화강암 기둥은 28개의 별자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 당시의 천문학으로 우주는 28개의 별자리로 이루어졌으므로 이 정자는 우주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최치원은 국정이 혼미한 가운데에도 포부와 기개를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널리 퍼져 그 은덕을 온 백성이 입도록 우주보다 높은 정자에서 백성과 나라의 일을 생각한 심사를 헤아릴 수 있을 듯하다.
최치원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정읍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사당 태산사를 세워서 그의 치적을 기렸는데, 후에는 정극인(丁克仁) 등을 함께 배향하여 무성서원이라 했다. 진성여왕 4년(890) 천령 태수로 부임해서는 함양고을 사람들의 물난리 피해를 막기 위해서 대관림숲을 만들어서 수해를 방지하는데 힘쓰기도 했다 .
경주 금오산(현재 남산)의 아름다운 계곡 문천의 맑은 물이 씻어 내리는 곳에 상서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은 진성여왕 8년(894) 2월에 시무십조(時務十條, 간사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훌륭한 학자들을 불러 정치를 맡기십시오.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난한 자들을 보삽피십시오. 백성이 농사지을 철에는 부역을 줄여 주십시오 등등)를 써서 임금에게 올린 곳이다.
궁예의 반란으로 조정이 더욱 혼란해져 더 이상 포부를 펼 수 없게 되자, 벼슬을 던져버리고 뜬구름처럼 소요자적 길을 떠나게 된다. 합천의 청량사, 강주(의성)의 빙산, 지리산의 쌍계사, 동해 해운대, 합포(마산)의 영월대, 양산의 임경대, 함양의 학사루, 창원의 청룡대, 진주의 남악산, 산청의 광제암문, 안동의 청량산 치원봉과 치원대, 금강산 옥류동, 문경의 봉암사, 이밖에 서산, 익산, 보령 등 거의 모든 명승지들이 그가 머문 유적지 아닌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입산시는 아래와 같다.
僧乎莫道靑山好 승호막도청산호
山好如何復出山 산호여하부출산
試看他日吾踪迹 시간타일오종적
一入靑山更不還 일입청산갱불환
중아,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
산이 좋은데 왜 다시 산에서 나오는가.
뒷날 나의 자취를 잘 지켜보시오.
한 번 청산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