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에서 산화한 전우 (67화)
  제10장 [부록] 칼럼1

지난 6월 6일은 36번째 맞는 현충일이었다.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우리 역전의 해병용사 동기생들(해병학교 사관후보생 제35기)은 국립묘지를 찾는다. 여기에는 월남전에 함께 소총소대장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동기생이 잠들어 있는가 하면, 후보생과 기초군사반 과정을 지도해온 구대장이 영면해 있다. 

더욱이 함께 전투를 했던 소대원들이 누워 있다. 국립묘지 21구역을 찾을 때면 항상 나의 가슴은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너무 많은 전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제1분대장 최춘근 하사! 참 용감했었지...... 날렵한 몸매에 반짝이는 눈! 번뜩이는 지혜를 갖춘 훌륭한 분대장이었다. 귀국 1주일 전이었고, 마지막 작전이었는데 애석하게 전사하였지..... C레이션 먹고 살쪘다고 어머니에게 편지하였는데, 이 몰골이 무엇이냐며 아침저녁으로 유자 철조망 뭉치에 대나무를 걸고 역도를 하기도 하였었는데...... 

3분대 1조장 전상학 병장! 고아원에서 고생하며 자랐다. 야간 기동대에는 자기 분대가 첨병으로 가겠다고 하더니, 그 다음날 적병의 저격으로 두부 관통상을 입고 가버렸지...... 

백성룡 상병! 인물 좋고 키가 크고 성품 좋은 미남형이었지. 한 달만 있으면 귀국인데, 가엾게도 산화하였구나. 

박태근 상병! 참전 4개 월만에 막내둥이로 귀엽게 자랐다가 세상을 떠났지..... 전사통보를 받으신 박 해병의 부친은 슬픔에 차 있으면서도 소대장인 나에게 장문의 편지를 한지에 붓글씨로 깨알같이 써 보내왔었지. 편지봉투를 열기 전까지는 소대장을 얼마나 질책하였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편지 내용을 다 읽고나서 나는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감복하여 머리 숙여 울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은 조국을 위해서 용감히 싸우다가 갔지만, 최 소대장은 아들은 대신해서 편지 잊지 말고 자주 보내달라”는 노인의 애틋한 심정의 글을 읽고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귀국해서 국립묘지를 찾으니 아버지의 애절한 글이 담긴 비문이 오석에 새겨져 있었다. 

이용한 상병! 여단장과 같은 고향이면서도 여단본부로 전출하라는 지시도 거부하면서 끝까지 소총소대가 좋다면서 전우들 곁을 못 떠나다가 귀국 며칠을 남겨놓고 애석하게 먼저 가버렸구나. 파월되어 정글전에 채 익숙하지도 못하고 고국에서 도착한 첫 편지도 못 받고 저승으로 간 김기추 일병!, 김상남 일병, 최한수 일병의 명복을 빈다. 
 
▲ 해병소위 임관 50주년 기념 / 해병학교 사관 35기 후보생들이 중대장 송재신, 구대장 김흔종, 박상이 등을 모시고 해군회관에서 임관 35주년을 자축했다

5월 말일은 월남이 패망한지 꼭 16년째가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의 청룡, 맹호, 백마용사들이 생명을 바쳐가며 싸워주었지만,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월남 패망의 직접적인 원인을 현지에서 참전했던 경험을 살려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긴 세월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던 월남은 한쪽에서는 프랑스의 앞잡이로 출세하여 고급공무원이 되거나 또는 프랑스 현지 장교가 되었는데, 이들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월남 독립을 위해서 프랑스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이는 민족지도자가 있었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 끝나고 17도선으로 남북으로 갈리게 되자 민족 지도자인 호지명이 17도 이북 월맹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17도 이남의 월남에서는 선거를 통해서 고 딘 디엠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월남의 분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고 딘 디엠은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성장(省長)을 지낸 고급 공무원으로 전자에 해당된다. 프랑스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는 민족지도자를 잡아 가두고 국민을 수탈하는 반민족 지도자였으니, 국민들이 존경할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장기집권, 독재,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결국엔 암살당하여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뒤에도 수차례에 걸친 군부 쿠데타로 국력은 쇠진했고, 대통령이 된 티유, 부통령인 키 역시 프랑스 식민지 때에 프랑스 현지 장교 출신들로 월남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데 혈안이 된 자였으니, 존경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도자를 잘 만나야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가 융성해질 터인데, 월남은 신생국가의 첫 지도자부터 잘못 선택되었고, 티유나 키 등 지도자 마저도 부적절한 자들이 선출되어서 결국은 나라를 망쳤다고 본다. 

올해 들어서부터 기초자치단체 의원 선거가 있었고, 곧 광역의회 선거가 있을 것이며, 내년에 자치단체장 선거, 국회의원 선거, 후년엔 대통령 선거 등 대사가 이어진다. 진정 훌륭하고 참신한 지도자가 입후보해야 하고, 유권자들도 선심공세에 놀아나지 말고 양심적인 지도자를 선출해야만 내 지방 내 나라가 튼튼해지리라고 믿는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어김없이 국립묘지를 찾아오시던 고 최춘근 해병중사의 비석 앞에는 늙으신 그의 어머니가 2~3년 전부터는 나타나시지 않는다. 슬픔에 지여 쇠하셨는지 혹시나 돌아가셨는지 궁금할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모친을 직접 상봉도 못했고, 찾아뵐 면목도 없었다. 마치 내가 죽인 것 같아서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월남전에서 함께 정글을 누비던 전우들이여! 비록 먼저 저승 길로 갔지만 지하에서 편히 잠들어 이 나라의 민주화를 지켜봐주시길 빌 뿐이다.

<대구일보, 아침시론. 1991.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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