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을 바로 잡자 (69화)
  제10장 [부록] 칼럼1

경상북도 양포 바닷가에 가보면 ‘지행면을 장기면으로 바꾸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수도권 지역에 새로 건설되는 5개 신도시의 명칭이 일본 냄새가 난다고 하여 지명을 바꾸자는 여론도 있다. 

지방행정구역의 팔도(八道) 명칭이 생겨난 것은 고려중엽 이후로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사용하다가, 고종 32년(1895) 2월 26일 척령 제98조에 의해 8도가 없어지고 23부(附), 336군(郡)제가 생겨나 경기지방에는 한성부, 인천부, 개성부를, 영남지방엔 대구부, 안동부, 진주부, 동래부 등을 두었다. 

이듬해인 1896년 8월 4일에는, 칙령 제36조에 의해 23부가 없어지고 8도를 13도로 분할하였으며, 이때 경상도는 이곳 큰 고을인 경주와 상주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경상북도에는 대구에 관찰사를 두고 41개 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한일합방이 된 후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에서는 부령 제111호를 발표하고, 군ㆍ면의 행정구역을 개편, 통폐합하였는데, 이때 행정구역 명칭이 많이 바뀌고 왜식이 많이 풍기는 지명도 생겨나게 되었으며, 우리 고유어의 지명이 한문자로 음차(音借)되는 과정에서 어색한 지명이 허다하게 생겨났다. 

영일군 지행면은 8도제 당시 홍해군, 청하, 영일, 장기현 등이 행정지역이었을 때에는 장기현지역으로 읍내가 되므로 현내면이라 하였는데, 1914년 군면폐합 때에 영일군에 편입되어 읍내, 마현, 금곡 등 12개 이로 개편되었다. 

그 후 1934년 4월 12일 봉산면의 11개 이를 병합하여 장기의 옛 이름이 지답(只沓)을 따서 지답면으로 작명하다가 그만 ‘답’자를 잘못  써서 ‘행’이 되어 결국 지행명(只杏面)이 되었다. 담당 서기의 무식의 소치인지, 여하간 한 번의 실수로 60여 년 간 병신 지명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정다산(丁茶山)의 유배지이기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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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가야면에서 치인리(緇仁里)가 있다. 해인사 가람 앞마을로, 신라 말엽의 유명한 학자이신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말년에 이곳에서 은거하였기 때문에 ‘치원마을’로 불려왔는데, 1914년 군면폐합 때 치원리가 되어야 할 것이 치인리로 바뀌었다. 해인사 스님이 있어서 치인리라 했다고 하나 정설은 아닌 듯 하다. 

수도권에 새로 건설되는 도시의 이름들은 일산, 중동, 산본, 평촌, 분당 등이다. 부천에 있는 중동은 이미 옛 지명을 따서 주남(柱南)으로 바뀌었으니 잘한 일이라 언급을 피한다. 

산본은 현재 시흥군 군포지역이지만 본래 과천군 남면의 일부 지역으로서, 수리산의 밑이 되므로 ‘산밑’ 또는 ‘산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궁안, 도장골, 문전, 만정, 골안 등을 병합하여 산본리라 한 것이다. 수리산이 이 지방의 지붕이 되므로 ‘수리시’로 지명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 

평촌은 안양시 평촌동이지만 본래 과천군 하서면 지역으로서 벌판이 되므로 ‘벌말’ 또는 ‘평촌’이라 하다가, 마을이 따로 생겨나 ‘두벌말’ 또는 이평촌(二坪村), 이동(二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민백동, 귀인동, 신촌, 평촌, 갈산동 등을 병합하여 이동리(二洞里)라 하여 시흥군 서이면(안양읍)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73년 안양시로 승격됨에 따라 평촌동으로 고치게 되었는데, 옛 이름을 찾아 ‘하서시’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일산은 현재 고양군청 소재지인 일산읍 지역이나, 본래 고양군 중면(中面)지역으로 장항, 산황, 풍동, 마두, 일산, 백석, 주엽 등의 7개 이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김포군의 굴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개편되고 1980년 중면이 일산읍으로 개명, 승격하였다. 

일산은 본래 고양군 중명에 있는 고봉산 밑에 일(一)자로 산이 있었으므로 ‘일뫼’ 또는 ‘일산’이라 한 것으로, 1914년 삼정, 등거리, 중산, 소개울, 밤가시, 왜골, 후동 등을 병합하여 일산리라 하였다. 고봉산의 이름을 따서 ‘고봉시’로 이름 짓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분당은 현재 성남시 분당동으로 5개 신도시 중 규모가 가장 크며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인접해 있는데, 본래 광주군 돌산면(突馬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당모루, 정수터, 벌터, 분점을 병합하여 분점리 또는 분점동이라고 하였다. 1973년 성남시에 편입된 후 1975년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어 분당, 정자, 수내, 율동 4개 이를 관할하고 있다. 

새 도시 이름을 신평이니, 신성이니 운운하는데, 옛 이름을 따라 ‘돌마시’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돌마’라는 이름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오랑캐 무리들이 공격할 때에 우리나라의 기병들이 물밀 듯이 산속에서 달려 나와서 오랑캐들을 쳐부쉈다고 하는 전승지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인 지명을 되찾는 것이 후손들에게 애국심을 키우는 길이 될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의 지명들은 순수한 국어의 명칭들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 16년(757)에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9주를 두고 군현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개변(改變)한 뒤부터 국어 지명이 없어져갔다. 근세에 와서는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면, 이, 동의 명칭이 한자화 되면서 일본식 이름이 생겨났고, 순수 우리말의 지명을 차음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하루 빨리 잘못된 지행면이 장기현의 옛 이름대로 ‘장기면’으로 바꾸어지길 바란다. 아울러 가급적 옛 지명을 되살리는 지혜를 가지고 점점 사라져가는 순수한 우리말의 지명들을 발굴해 내고 보존하며 널리 사용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대구일보, 아침시론. 1991.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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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목의 군사적 이용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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