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고등공민학교 편입학 (7화)

아버지가 안 계신 집안에서 열네 살 맏자식인 나는 집안일을 거들어드려야만 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열네 살이면 옛날에는 장가들어 살림할 나이가 됐다면서 이런저런 농사일을 시키셨다.

처음으로 콩밭 매는 일을 해보았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호미를 들고 콩밭을 한줄 씩 타고 가면서 풀도 뽑고 복주기(농작물의 뿌리를 흙으로 잘 덮어 주는 일)를 하는데, 지금 보면 20~30미터 밖에 안 되는 밭이랑이 그때에는 왜 그리 길어보였는지 모른다. 하루갈이 되는 콩밭을 김매기 해야 하는데, 세 식구가 며칠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한낮에는 쉬었다가 아침 저녁으로 하는 일이지만 지루하고 힘들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왼쪽 세 이랑은 김을 맸고, 잡초가 무성한 오른쪽 이랑은 매기 전이다.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잡초를 뽑아내며 콩나무가 잘 자라도록 흙을 북돋워주는 콩밭매기가 얼마나 중노동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겨울철이 되면 방마다 불을 때야 하는데, 땔나무 하기가 여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땔나무 하는 일이 서툴러서 소나무 가지를 잘라 묶어 지게에 지고 와서 날솔가지로 내 방에 군불을 때려면, 바람이 잘 불어주면 그나마 잘 타지만 흐린 날이나 동풍이 부는 날에는 연기에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정월 새해가 되어 가오실 외가댁과 이모댁에 세배를 드리러 갔더니, 이모부님께서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 입대로 놀고 있는 내가 안 되었던지, 당미(달뫼, 화도읍 월산리)에 배정고등공민학교가 있는데 입학을 주선해줄 테니 허 선생을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편입학을 하게 되었다.

새해 봄에 2학년으로 편입학하여 그해 겨울방학 전까지 다녔는데, 처음에는 가오실 외가댁에서 다니다가 좀 형편이 나은 이모댁에서도 학교를 다녔고, 오뉴월이 되어 해가 길어지면서 널울에서 당미까지 20리나 되는 거리를 기차길을 따라 걸어서 다니기도 했다.

가을이 되자 해가 짧아지니까 이것도 어려워서 동네 집안 누나가 시집가서 사는 당미에서도 다녔다. 이 집 노인은 사냥을 잘하셔서 토끼, 꿩, 노루 등을 종종 잡아오셨다. 꿩고기는 무채를 썰어서 푹 삶으면 맛이 구수하고 좋았다. 겨울철에는 방안이 어찌나 추운지 잉크병이 얼어서 깨어지기도 하고, 밤에 자리끼로 냉수를 방 위쪽에 놓으면 밤새 얼어서 가운데가 수북하게 올라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동네에는 배정고등공민학교를 함께 걸어 다닌 함용호 선배가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나를 만나기만 하면 그때 당미까지 걸어 다닌 이야기를 잘도 꺼낸다. 당미까지 가려면 기차길로 가다가, 마치고개를 넘어 먹갓에서 철길로 다시 들어서가나, 아니면 마치굴 안으로 그냥 걸어서 다니기도 했다.

마치굴은 경춘선에서 가장 긴 터널인데 중간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가운데는 어둡고, 중간 중간에는 사람이 대피할 수 있도록 파 놓은 곳이 있었다. 간혹 굴 속에서 기차를 만나게 되면 그곳으로 피하게 되는데 몸은 온통 그을음투성이가 되고 만다. 마석까지는 철길을 따라가다가 여기서부터는 머재고개를 넘어 당미로 가는 경춘국도로 걸어다녔다.

안경을 쓰신 물상 선생님은 순정 이야기를 잘해 주셨고, 고향이 당미이신 허일령 선생님은 애향심이 대단하셨다. 김순흠 선생님이 계셨는데 연세가 좀 드신 분으로 곱상하게 생기셨던 분이다. 이 분은 나를 무척 사랑해주셨는데, 서울 숭인동에 있는 자기 친구가 하는 치과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덧니를 빼주시기도 한 분이다. 내가 그 학교를 그만두는 통 뵙지롤 못했는데, 그 은혜를 못 갚고 있어 늘 미안한 마음이다.

교장 선생니은 장 씨 성을 가진 분이었는데, 흔히 학생들은 장노루라고 불렀다. 학교 일에 매우 열성이셨는데, 조회 때에는 설교도 하시고 수업시간에 들어오셔서 예배도 보셨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금곡에 공립 중학교가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고향 면소재지(금곡)에 정규 중학교가 세워졌다니 당연히 그곳으로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방학 전까지는 그대로 마저 다니고 겨울방학이 되자 배정고등공민학교는 포기하고 새해에는 금곡중학교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금곡중학교는 남양주(그때는 양주군) 지역내에는 최초로 세워진 공립중학교였다. 개교 날짜는 1955년 6월 8일이었는데, 나는 이듬해인 1956년 3월에 최고 학년인 2학년으로 편입하여 금곡중학교 학생이 되었다. 금곡중학교에 들어와서 2학년과 3학년을 마치고 1958년 2월에 제 1회 졸업생이 되었다.

나는 3년 반에 걸쳐서 중학교를 다녔고, 그것도 청량중학교, 배정고등공민학교, 금곡중학교, 이렇게 세 군데의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