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탄 배는 업셔(Upshur)호라고 하였는데, 1만3천 톤급으로 길이 503, 폭 73피트, 항속 19노트였고, 해군함정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퇴역했던 배를 다시 징발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배에 오르고 보니 훈련도 없고 순검도 없고 부하 사병이 없으니 근심걱정이 없었다. 더욱이 장교침실은 고급 호텔 같았고 매끼마다 주는 식사는 재벌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일주일 간의 항해 기간은 일과 없이 잘 먹고 더운 물에 샤워하고 잠 잘 자며 보냈다. 육군 백마부대 병사들은 배 타는 것이 힘들어서 구토가 심한 모양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필리핀 선원이 종을 댕강! 댕강! 두드리며 해병장교 선실 앞에 와서는 청룡 식사! 청룡 식사! 하고 외쳐댔다. 식사는 그야말로 훌륭한 양식이었고, 후식도 푸짐했다. 오렌지와 아이스크림을 마음대로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대만해협을 지난다고 해서 선상으로 나가보았다. 배 전후좌우로는 잠수함이 호위한다고 했다. 제주도 상륙기습 훈련 때 탔던 LST는 8노트로 느리게 갔는데, 우리가 탄 업셔호는 18노트로 달리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월남 중부지방 퀴논항에 도착하여 멀리서 바라보는 월남의 산하는 아름다워만 보였다.
상륙정으로 갈아타고 상륙한 다음 퀴논 비행장에서 미 해병대 수송기를 타고 북상하여 추라이 미 해병대 비행장에 내렸다. 수송기에 탑승하니 안전벨트를 매라고 안내하였지만, 우리는 매지 않았다. 어차피 싸우다 죽을 몸인데 안전벨트까지 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추라이 비행장은 어마어마하게 컸고, 비행기도 엄청나게 많았다. 미 해병대 17비행단이라고 하는데, 한국 공군기보다 많은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를 호송 나온 병사들의 트럭이 두 대였는데, 한 대는 우리가 탈 트럭이고, 한 대는 호위병력이었다. 이 병사들을 처음 봤을 때는 마치 산적을 보는 듯 했다. 단독무장을 했는데, 살갖은 새카맣고 머리는 길어 덥수룩하고 눈빛은 살기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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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병군을 싣고 월남전선으로 떠나는 부산항의 미 수송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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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를 달려서 여단본부에 도착했다. 청룡부대는 광나이성(恇南省) 추라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단장 김연장 장군(해병학교 1기)에게 신고하고 부대 배정을 받기까지 며칠간을 대기하는데, 야간에는 박격포의 요란 사격 소리로 공포에 질리기도 하였다.
부대배치는 2대대에 세 명으로, 이광복 중위는 5중대, 나는 6중대, 장수근 중위는 7중대였다. 1대대에는 고일웅 중위가 1중대, 권영술 중위가 2중대이고, 3대대에는 박경수 중위가 9중대, 김태일 중위가 10중대, 오윤옥 중위가 중포중대였다. 포병대대에는 최신택 중위(현 남양주 진건고등학교 교장), 전재림 중위, 배효근 중위, 김중치 중위이고, 대대 보급관으로 김광수 중위가 각각 배치 받았다. 또 이재돈 대위(해사 18기)는 중대장, 이성학 대위(해병학교 32기)는 여단 경리장교, 강창만 중위(해병 33기)는 여단본부 항공대, 양해창 중위(해병학교 34기)는 대대 통신관으로 각기 발령받았다.
우리 35기생은 4월 15일 부로 전원 중위로 진급하게 되어 출국할 때에는 중위 계급장을 달고 왔는데, 월남에 도착하고 보니 선배 장교들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어서 우리는 얼른 중위계급장을 떼어내고 소위로 바꾸어 한동안 달고 다녔다. 월남에는 진급공문이 늦게 온 소치였었다.
2대대 본부라는 여단본부에서 3km 정도로 떨어져 여단 내 3개 대대 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동기생 3명은 대대장 고철훈 중령에게 신고를 했다. 고철훈 대대장은 해병학교 7기생으로 날씬한 몸매에 언변이 논리정연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었다.
중대 배치 받기 전 사흘간은 대대본부에서 쉬면서 틈틈이 105mm 박격포 유도훈련을 하였다. 대대장의 말씀인즉, 소대장은 포탄 낙하지점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과연 옳은 말씀이었다. 또한 월남 기후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기간을 배려한 것이기도 했다. 6중대는 대대CP를 방어하고 있었고, 5중대는 동푸억(東福)에, 7중대는 106고지 부근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중대장에게 신고를 했다. 중대장은 해군사관학교 12기생 최형곤 대위로 고참 중대장이었는데, 중대장 근무가 좀 늦은 시기였다. 나는 6중대 제2소대장을 맡게 되었는데, 전임 소대장은 해사 20기생 김성웅으로 중동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소대 전원을 집합시키고 인원과 장비를 점검하였다. 해병소대는 3개 분대와 화기반으로 전시 편성되고 1개 분대는 분대장 1명과 3개조로 구성되며, 각조는 4명으로 구성되어 총 13명으로 이루어진다. 3개 분대는 39명이 되고, 화기반은 반장 1명과 2개 기관총 분대로 구성되고, 1개 기관총 분대는 분대장 1병과 사수, 부사수, 제1탄약수, 제2탄약수 등 5명으로 모두 11명이 된다. 대대본부에 배속되는 위생병 1명, 공병 2명, 로켓트 2명이 있고, 또한 소대본부에는 소대장, 선임하사, 향도 하사와 전령 2명 등 5명이 된다. 해병소대는 이렇게 해서 60여명으로 구성되는 병력이다.
장비를 점검해보니, M79 유탄발사기가 3문이어야 하는데, 1문밖에 없고, 경기관총도 2정이어야 하는데, 1정뿐이었다. 알고 보니 지난번 죽음의 계곡에서 작전 중이었는데, 1소대의 장비 손실이 커서 빌려주었다고 한다.
소대장 배치를 받고서 처음으로 야간 매복작전을 나가게 되었다. 매복지점은 대대본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푸억 마을 부근이었으나, 유난히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어서 야간 보행을 하는데, 도대체 방향도 길도 구분할 수 없었다. 다행히 분대장들이 지형을 잘 아는 관계로 나는 사실상 따라간 꼴이 되었다. 대대본부에서 시행하는 박격포 사격의 굉음이 바로 옆에서 쏘아대는 것 같아, 밤새 불안하여 뜬눈으로 새고 동틀 무렵에서야 철수를 하였다.
두 번째 마을 매복은 푸억토(福土)마을 근처가 매복지점이었는데, 이 날은 처음 매복한 날과는 달리 보름달밤으로 대낮같이 밝아. 매복지점이 그대로 노출되어 폐허가 된 성당 안으로 옮겨서 매복을 하였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아름다웠고, 더욱이 남십자성(南十字星)의 반짝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별 넷이 십자가를 이루어 나를 반기는 듯한 아름다운 밤이었다.
푸억토마을은 가톨릭존으로 큰 성당이 있고 그 주변에 신도들의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던 곳으로, 뒷산 언덕에 마리아동상이 서서 마을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전쟁으로 페허가 되었다.
처음 매복했던 동푸억 마을에는 동복사(東福寺)란 절이 있고, 절을 중심으로 불교신도들이 살고 있었다. 동푸억 주민들의 성향은 베트콩과 가깝기 때문에 늘 경계를 해야 했다. 이와 반대로 푸억토마을 주민들은 월남정부에 우호적인데, 인근 1406고지 뒤편은 베트콩들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피해를 받아 마을을 떠나 피난 가 있는 상태였었다.
월남은 종교 국가로 대다수가 불교신자인데 이들은 공산주의자와 가까운 성향이었고, 가톨릭신자들은 친정부성향으로 티유 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들이었다. 청룡부대 전술책임지역 내의 주민들의 성향은 절반은 우호적인 반면에, 절반은 반정부성향을 띠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