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1월 15일부터 광주군 서부면 남한산성 밑에 있는 육군종합행정학교 정훈특보반 제6기로 8주간 교육과정이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는데, 통근차량은 군용트럭으로 천막을 씌운 것이었다. 해병학교 장교영어반 교육 중에는 동정복을 입고 해병버스를 타고 출퇴근하였지만, 지금은 군용트럭으로 출퇴근 할지라도 서울생활이라 즐거웠다.
피교육자는 주로 육군장교들이었고, 계급은 중령과 소령이 대부분이고 대위는 육군 신 모 대위와 해병대 대위 나 둘 뿐으로 모두 16명이었다. 육군 장교들은 실무에서 정훈장교로 근무하다가 특별보수반 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육군에서는 당시 독립된 정훈병과를 갖고 있었으나 해병대에서는 정훈병과가 별도로 독립되지 않았고, 정훈부서는 여단급 이상 부대에서만 운용하고 있었다.
나는 정훈교육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찾아 어울리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육군종합행정하교 부근의 큰 마을 모란은 서부면의 면소재지였는데, 피교육자들은 여기에 나와서 막걸리도 마셔가며 모두 즐겁게 지내다보니 금세 두 달이 지나가고 7월 17일 수료를 하게 되었다.
나는 운 좋게도 해병대 사령부 정훈감실에 1월 24일자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피교육 두 달간은 서울생활이 임시기간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서울에서 근무를 하게 되니 정말 기뻤다. 대위 계급으로 해병대사령부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이 여간 행운이 아니었다. 특히 나같이 배경이 없는 사람이 좋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좋은 교육을 두 번씩이나 받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해병대에 입대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었고, 나이는 서른 살이 되었다.
해병대사령부는 서울 남산 밑 후암동에 있었는데, 깔끔한 건물에다가 넓은 잔디밭과 숲이 아름다워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수도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진해교육기지사령부도 아르다운 곳이었지만, 해병대 사령부자리는 더욱 아름다웠다. 사령관은 정광호 대장, 정훈참모는 신수진 대령(해병학교 4기)이고, 문도빈 중령(해병학교 8기), 이개태 중령(해병학교 11기), 황의구 소령(해병학교 15기), 김태문 소령(해병학교 29기) 등이 있었다.
정훈감실의 임무는 장병의 정신교육과 홍보였다. 정훈감실에서는 주간으로 예비역 공보를 타블로이드판으로 발간하여, 예비역과 현역과의 가교역할을 하는 홍보매체로 배포하였다. 또한 해병대에서 일어나는 홍보아이템들을 신문사나 TV방송국 보도본부에 배포하는 일도 하였는데, 당시에 있었던 TBC TV보도본부에서 일하는 고향 선배 신종수 기자도 만날 수 있었다.
이때는 동대문 밖 제기동 경동시장 부근의 한옥 주택가에 집을 마련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들을 데리고 살았다. 막내 동생은 홍파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셋째 동생은 효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용문중학교 1학년생이었는데, 두 동생의 생활비와 학비는 당연히 장남이고 가장인 나의 몫이었다.
출퇴근은 해병버스가 운행되어 용두동에서 승하차하였는데, 동기생으로 보급감실의 우길환 대위(현 서울여상 실과부장)와 통신감실 김태호 대위(현 제주대학장)가 있었다. 사령부에 근무하게 되니까 평상시 복장은 정복이었지만, 작업복이 생각날 때면 빳빳하게 다린 작업복을 입고 팔각모를 쓰고 세무워커라고 불리는 구두를 신고 출퇴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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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병대 정훈장교 회의를 마치고 / 앞줄 가운데가 정훈감 신수진 해병 대령이고 필자는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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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자로 국방부 파견근무 명령이 떨어져 국방부 정훈국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군인으로서 최고의 부서인 셈이다. 국방부는 해병대 사령부에서 좀 떨어진 후암동에 있다가 삼각지에 국방부 새 청사를 지어 8월에 이사를 하게 되어, 파견근무자는 이삿짐이라고는 없어서 몸만 옯겨 가면 되었다.
국방부 정훈국 사무실은 1층에 자리 잡았는데, 정훈국에서는 해군 이 소령(서울대 철학과 출신), 공군 강 소령(공사 14기), 육군 강 중령 등 네 명이 파견근무하면서 정훈교재 편찬을 공동연구하게 되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공군 강 소령, 해군 이 소령과 나 3인은 죽이 맞아서 수영장도 같이 다니며 즐거움을 만끽하였고, 시간이 나는대로 9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신문과 잡지, 그 밖의 책들을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보냈다.
국방부에 근무하다보니까 복장은 더욱 자유로웠다. 국방부에서의 복장은 군복이 아니고 사복이 관행이었지만, 나는 해병대 정복이나 작업복을 주로 입었다. 국방부에서 대위 계급장은 극히 귀한 존재였고, 오히려 장군이 더 흔한 계급이었다. 해병대 복장을 하고 복도에서나 혹은 화장실에서 타군 장군을 만나 경례를 절도있게 하면, 무척 반가워했다. 장성은 어깨에 별 계급장을 달고 다니지만 사복한 장교들은 장군을 보고서도 경례를 안 하는 게 보통이었다.
해병대 장교가 귀한 존재이다보니 많은 처녀 문관이나 타자수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국방부 통근버스에도 많은 여성들이 타는데, 나에게 많은 눈길을 주었지만 나는 해병대 장교의 권위를 지키느라 못 본체 하는 것이 예사였다. 내가 도서실에 잘 가는 것을 알고는, 어느 여자는 눈 맞추려고 도서실에 자주 오는 일도 있었다. 같은 노선 통근버스를 타는 예쁘장한 여자를 친구 결혼식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놀란 일이 있었는데, 그 결혼식 때의 신랑이 현재 남양주 김영희 시장으로 아마 신부의 친구인 듯 했다.
국방부에 근무하다보니 친구들이 술 먹자고 연락이 오는가 하면, 나이 30에 입영영장이 나왔는데, 어떻게 안 갈수 없겠느냐고 찾아오기도 하고, 군용차에 사고가 났는데 해결해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 다들이 전방에 근무하는데 후방으로 빼달라고 왔다. 그러면 나는 전쟁터에서 소대장으로 1년 간을 싸운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군대에 가서 고생도 해봐야 새 사람이 된다고 타일러 보냈지만 섭섭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군대 생활에서 가장 자유스러웠던 국방부 파견근부도 5개월 반 만에 끝나고, 다시 해병대 사령부 정훈감실로 원대복귀하여 11월 1일부터 근무하게 되었다. 12월 하순 경에는 국방부 출입기자단의 사모님들을 모시고 해병버스로 김포여단 애기봉을 안내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해병대 장교의 매력을 과시하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좋은 식당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사령부에서 새로운 임무가 정훈감실에 부여되었다. 일선 부대 초급지휘관을 초청하여 3박 4일간 산업시찰을 하고, 중앙정보부로 가서 시설을 둘러보고 북한영화를 보는 일정도 있었는데, 안내 장교로서의 일을 하는 가운데 부평 신진자동차공장에서 고등학교 동창 박현준 과장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을 맞기도 했다. 박 과장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 1회 출신으로 신진자동차 총무과에 근무하고 있어서 업무협조 관계로 만나게 된 것이다.
주월사령부 정훈참모실에는 안일섭 대위(해병학교 35기)가 파견 나가 있었고, 만기가 되어 귀국을 해야 했지만, 교체할 장교가 35기인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훈감은 주월사 근무를 마치고 제대하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나는 이번에 제대 못하면 영 제대 못할 것 같아서 간곡히 거절하였다. 영어학교 교육기간에도 미국 해병대 ATU과정 유학 시험도 있었지만, 장기복무를 서약을 하라는 바람에 질겁을 하고 포기한 적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