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명을 되살리자_2 (76화)
  제10장 [부록] 칼럼1

동해바다에는 봉래, 방장, 영주의 삼신산(三神山)이 있는데, 바로 거북 등에 얹혀있다고 믿었다. 거북은 수중의 신비세계와 지상을 연결하는 신통력의 전달자로서 영역을 부여받고 있다. <심청전>에서 물에 빠진 심청이를 뭍으로 날라다 준 것도 거북이고, <별주부전>에서 토끼를 용궁에다까지 업어다 준 것도 거북이었다. 

또 거북은 들락날락 하는 목이 성혼(聖婚)의 상징으로 위대한 탄생과 창조를 하는 영물로 추앙되기도 하였다. 

조선 개국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성계, 즉 태조의 능이 있었기 때문에 지명을 구지(龜旨)로 정한 것을 간교한 일본인들이 개악한 것인데, 어리석은 우리 고장 양반님 네들은 멋도 모르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려고 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6월이면 지방자치제로 새로운 시장과 시의원들이 뽑힐 것이고 많은 후보자들이 나서게 될 터인데, 이 양반들께서는 필히 이를 인식하시어 바로 잡아주길 바랄 뿐이다. 

묘적산(妙寂山)

우리고장 사람들은 묘적사는 알아도, 묘적산은 모른다.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1/50,000 지형도에서도 묘적사는 나오질 않는다.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러나 백봉(590m)은 표시되어 있다. 백봉은 원래 주민들도 모르는 이름이다. 1960년대 국립지리원에서 발행된 지형도에서는 백봉(栢峰)으로 나오더니, 1970년대에 와서는 백봉(柏峰)으로 나오다가 1980년대에 와서는 아예 백봉(白峰)으로 나오고 있다. 

1990년대에 언젠가에는 또 어떻게 변해갈지가 궁금하다. 원래 주민들은 묘적산의 봉우리가 잣송이 모양과 같다고 해거 ‘잣봉’으로 부르는 것을 유식한 어느 양반이 한자화 애서 ‘백봉’으로 표시한 것이, 해가 갈수록 제작할 때마다 행정착오를 범하고 있다. 

다음 그림 지도는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분명히 ‘묘적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묘적’은 불교용어에서 나온 것인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고 주민들도 잊어가고 있으니, 본래의 산 이름대로 묘적산으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묘적산을 주산(主山)으로 해서 역사 깊은 묘적사가 자리 잡고 있다. 

묘적사는 신라 30대 문무왕(661~680)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서, 조선 세조 때 학열대사가 중창하면서 180여 칸의 웅장한 법당과 요사채 등을 지어서 불사를 이륙하여 사세를 확장한 바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대사께서 군승을 훈련시키는 한편, 국가에서 보낸 무술인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무술 도량이었다. 임진왜란 때 크게 소실되었는데 1971년 자진 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묘적사 주지스님이나 신도들이 일주문을 세우고 ‘묘적산 묘적사’라는 큼지막한 현판을 달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060.jpg

 
묘적산은 풍수로 볼 때,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가 원산을 지나 철령(鐵嶺)에서 한줄기 산자락이 서남향으로 달리니 이것은 한북정맥(漢北正脈)으로 화악산(675m), 강시봉(840m), 청계산(849m), 운악산(935m), 개위산(675m), 주금산(814m), 천마산(812m)의 연봉들이 이어지다가 묘적산(590m)으로 이어진다.
 
풍수사상가 최창조 씨는 남양주 와부면 월문리가 묘적산을 주산으로 하고, 신선봉(242m)이 마을의 조산(朝山)을 이루는 것으로, 월문리의 형국이 약마하전형(躍馬下田形)이라 하여 명당의 택지로 보고 있다. 

금곡에 자리 잡은 조선조의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의 유택인 홍릉과 유릉은 묘적산이 주산이 되는데, 풍수로 볼 때 주산에서 옆자락을 앉혀 고의적으로 나쁜 풍수를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또한 여기에 식재된 수종도 고유수종이 아니고 도입수종, 즉 독일가문비 들 외래 침입종으로 식재했다고 최창조 씨는 주장한다. 

여하튼 지도에서 묘적산이 사라진 것은 왜정 때 제도제작 과정에서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활동무대였던 묘적산을 고의적으로 지워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옛 지명을 이제 우리 스스로가 찾아서 부르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부락(部落)

우리는 ‘부락’의 뜻도 모르고 우리 몸에 밴 듯이 스스럼없이 무심코 너무나도 흔히 쓰고 있다. 버스정거장에서 양정부락, 궁평부락 등의 안내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 관공서에도 거리낌 없이 ‘부락’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지리학에서 촌락(村落) 또는 취락(聚落)이란 용어는 있으나 부락이라는 용어는 쓰이질 않는다. 

원래 ‘부락’이란 용어는 일본어에서 온 것이다. 일본 이와나미서점[岩渡書店)에서 발행한 광사원(廣辭苑)이란 사전에서는 부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部落 -
① 비교적 소수의 집을 구성요소로 하는 지연단체, 민가의 일군, 촌의 일부.
② 신분적 사회적으로 강한 차별대우를 받아온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사는 지역, 에도[江戶]시대에 형성되었고, 그의 주민은 명치 초년에 법제상 신분이 해방되었으나 사회적 차별은 현재에도 역시 완전히 철폐되지 않았다. 

즉, 부락은 일본 사회에서 백정이나 폐기(기생이 은퇴한 것)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서, 저들이 사는 마을은 그렇게 부르지 않고 우리 백성들이 살고 있는 마을들을 모두 ‘부락’이라고 격하시켜 부른 것이었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50년이 되었어도 우리 스스로가 부락의 유례도 모르고 관습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하루 빨리 ‘부락’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순수한 우리말인 ‘마을’로 고쳐 써야겠다,

(풍양신문, 1995. 5.15.)  

 
  우리 지명을 되살리자_1 (75화)
  식물원, 정신건강을 위한 원예요법 (77화)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