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용어 _ 관동별곡 (84화)
  제11장 [부록] 칼럼2

조경용어, 순수한 우리말로 바꿔 쓰자

해마다 10월 9일이면 어김없이 한글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서 우리말이 아닌 외래어나 어려운 한자어들이 예사로 쓰이고 있다. 토목, 건축, 편집, 법률, 의상, 수산물 등 여러 분야에서 여전이 일본의 잔재들이 활개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순수한 우리말이나 우리말의 지명들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신라 때 당나라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순수한 우리말이나 지명과 제도들이 한자어로 변해갔으며, 고려와 조선조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어 왔다. 

특히 조선조말 한일합방이 되면서 1914년에 전국 행정구역 명칭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우리말 지명들은 어거지로 한자어 되거나 차음되어 변형되었고, 이때부터 점차 일본말이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일상어 중 어제, 오늘, 내일, 모레 등의 말 중에서 ‘내일’은 한자어인데 우리말은 소멸되어 찾을 길이 없다. 국어학자 중에는 ‘하제’가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부락’이나 ‘순수’ 등도 일본어인데 무분별하게 많이 쓰인다. 

부락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백정들의 천민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을 가리키는데,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 백성이 사는 마을을 ‘부락’이라고 강등시킨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비하시켜 부락민으로 전락되어 쓰고 있는 실정이다. ‘순수’도 우리말이 아님을 상기하여야 한다. 

지금도 대학가에는 10년 전부터 우리말 쓰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퍽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면 써클은 ‘동아리’, 축제는 ‘한마당’, 신입생은 ‘새내기(신출내기에서 온말)’, 야유회는 ‘들놀이’, 회비는 ‘모임삯’, 호치키스는 ‘박음쇠’, 화장은 ‘으뜸빛’ 등이다. 

정부에서도 행정용어와 법률용어 등 대부분 일제 잔재어들을 고쳐나가려고 노력중인 것으로 안다. 고속도로변의 노견이 ‘갓길’로 바뀌어서 지금은 쉽게 쓰이고 있는 것은 퍽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학용어에서도 한글화작업이 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법제처에서는 어려운 용어, 불필요한 위래서 1,382건을 선정, 정비하여 추진안을 마련하였다. 

조경에 관련된 것으로, 내역서는 ‘명세서’로 고사는 ‘말라죽음’, 굴취는 ‘캐냄’, 묘상은 ‘모판’, 법면은 ‘비탈면(쪽)’, 수종은 ‘나무종류’, 연화병은 ‘무름병’ 등으로 거쳐나가기로 했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직수입된 용어들로 부지, 고수부지, 차폐 등 많은 외래어와 한글사전에 없는 일본어들을 찾아 바로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금세기 내로 남북한이 통일될 움직임도 보이는데, 지금이라도 조경인들은 깨달아서 우리말의 조경용어를 발굴하여 갈고 닦아서 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환경과 조경 55호, 1992. 11.5.)  


평구역을 살리고 관동별곡 시비를

요새 중앙선 철도를 왕복 2차선으로 확장하고 노선을 직선화하는 전철 노선공사가 한창이다. 남양주에는 중앙선이 도농역을 거쳐, 덕소, 팔당, 능내를 지나는데, 도농역과 덕소역 사이에 새로운 역사가 생기게 된다. 우연찮게도 그곳은 조선시대의 역마제도에서 있었던 평구역 터가 된다. 

평구역 터는 조선시대에 평구역이 있었고, 찰방의 직책에 있어서 11개 역을 관할하는 큰 역이 있었다. 평구역은 한양에서 중량포(川), 아차산, 석실, 평구, 두미, 봉안, 용진나루, 계월, 양근을 거쳐 흑천(용문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을 지나 강릉으로 연결되는 육로의 요지에 위치하였다. 지금 경강(서울~강릉 간) 국도의 옛길이 된다. 

평구역은 녹양, 안기, 양문, 봉안, 오민, 쌍수, 전곡, 맥동, 구곡, 김천, 연동 등 11개역을 관할하는 큰 역이었다. 지금도 평구역이 있었던 마을을 역말(마을)이라고 부른다. 새로 생기게 될 역사 이름을 평구역으로 정하여야 함은 당연하다하겠다. 

또한 너무나 유명한 정철의 <관동별곡>을 식자는 모두가 잘 아는 일이다. <관동별곡>의 서사 부분에 평구역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남양주 시민 모두가 <관동별곡>에 평구역이 우리 고장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평구역을 꼭 살리고, 아울러 <관동별곡> 시비를 세워서 기리도록 하여야 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정철의 <관동별곡> 서사 부분의 내용은 “평구역 말을 갈아 흑수로 돌아드니 섬강은 어디메오. 치악이 여기로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평구역은 우리 고장의 삼패리에 있는 평구마을을 가리킨다. 

정철은 조선 선조 때 전남 담양군 성산으로 내려가 살면서 <성산별곡>을 지었다. 27세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45세 때 강원도 관찰사 재임 중 <관동별곡>과 단가(훈민가) 16수를 지었다. 50세에 퇴임하여 창평에 살면서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었다. 54세에 우의정, 55세에 좌의정이 되었고, 1593년 58세에 강화에서 생을 마쳤다. 문집으로 <송강집>과 <송강가사>가 있다. 

<관동별곡>은 정철이 45세 되던 해 정월, 강원도 관찰사에 제수되어 한양에서 남양주의 평구역, 양퍙의 흑수, 여주의 섬강, 원주, 동주, 회향, 금강산, 동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 삼척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등 관동팔경을 유람한 후, 그 여정의 아름다운 자연 경치와 고사 풍속 등을 읊은 작품이다. 

문장의 분위기가 명쾌하고 활달하며 낭만적인 서정이 넘쳐 흐른다. 다음에 정철의 <관동별곡> 중에서 서사 부분만을 담았다. 이 내용을 시비에 담아 기려야 할 것이다. 

(풍양신문, 200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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