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강비결
나는 이순(耳順)을 맞이했지만 건강한 편이다. 건강한 것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후천적이라고 보아야 옳은 말이다. 나는 여뎗 살에 입학해서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십여리 길을 왕복으로 걸어 다녔다. 또한 고등학교와 대학 다닐 때에는 경춘선 시발역인 성동역에서 청량리를 거쳐 전농동까지 10여리 길을 걸어 다녔고, 매일 새벽이면 집에서 경춘선 평내역까지 50여미터의 거리를 백미터 경주하듯 뛰어다녔다.
해병학교에서 후보생 과정이나 기초반 교육과정에서단독무장 구보나 완전무장 구보를 많이 하였는데, 나는 건강한 다리 덕분에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시력도 좋은 편이다. 마흔여덟까지는 좌우 시력이 모두 1.2였지만, 그 후부터는 시력이 점차로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노안이 온 것이었다. 고속버스에서 신문을 통로쪽으로 쭉 뻗고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노안이 시작된 것이다. 대개 마흔 살 초반부터 노안이 온다고 하는데 나는 좀 늦게 시작된 셈이다.
어렸을 때 안방 벽장에 숟가락을 들고 올라가서 숟가락총으로 북어쾌에 묶여 있는 북어대가리 양쪽에 박혀 있는 눈알을 빼내어 오독오독 깨물어먹었는데, 처음에는 딱딱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주전부리가 없던 시기여서, 북어 눈알이 주전부리감이 된 것이다. 동물의 기관에 지닌 영양소가 인체의 기관 영양소와 같은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어서, 나는 북어 눈알을 많이 빼먹어 눈이 총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병장교 초급지휘관은 시력이 좋아야 한다. 먼 곳에서 움직이는 적병을 먼저 보아야만 아군이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안이라 글을 읽을 때면 안경을 써야 하지만, 떨어진 곳에 있는 버스의 번호판은 지금도 식별이 가능하다.
어린 시절에 우리집에서는 늘 큰 황소를 길렀는데, 아침 저녁으로 쇠죽 쑤는 일은 중학교 때부터 내 몫이었다. 쇠죽을 쑬 때에는 흰콩을 한 됫박씩 넣고 끓이는데, 가마솥에 불을 때면서 삶은 콩이 익으면 절반은 꺼내서 심심풀이로 먹었다. 이것이 고단백 식품의 공급원이 되었다.
콩은 ‘땅의 쇠고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추석과 설날에 동네에서 소를 잡을 때만 쇠고기근이라도 사다 먹게 되고 제사 때에만 제물로 쇠고기를 구경하난 것이 보통이었다. 쇠죽에 넣고 삶아 먹은 흰콩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상지대학 교수시절부터 테니스를 시작했고, 동국대학에 와서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동료교수들과 테니스 하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요새는 아침마다 만보걷기를 하는데, 새벽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기분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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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마고우 한상돈 농산물검사소장과 어느 때 천마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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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남양주 널울
2003년은 내 고향 남양주 널울(호평동, 평내동)은 상전벽해를 이루게 되었다. 널울이라는 이름도 50대 이상 된 사람들만 아는 말이고 그 이하의 젊은이들은 모르는 이름이 되었다. 널울은 ‘넓은 고을’이란 뜻이고, 천마산과 묘적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마을이다. 널울은 한문으로 판곡(板谷)이라고 <대동여지도>에 표지되어왔으나, 이것은 식자(識者)들에게만 쓰이는 한자 이름이었고, 평민들은 흔히 ‘널울’이라 불러왔다.
남양주 널울로 입향한 것은 백여년 전 증조할아버지 때였다. 고조할아버지께서는 남인(南人)에 속하셨는데, 천주교 박해가 심했을 무렵, 포천에서 야반도주하시어 가평 평지산 자락 잣둔리 달터란 곳에서 일생을 숨어사시다가, 증조할아버지 때 종중선영(宗中先塋)이 있는 널울로 나오시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구(口)자 형태로 지은 초가집이 1970년대 초까지 있었는데, 후락하여 헐어버리게 되었다. 집이 헐릴 때 지켜보았더니, 지붕의 두께가 1미터가 넘었고 쇠못하나 쓰지 않은 건축물이었다. 집이 헐리는 것을 보면서, 증조고, 조고, 부친, 나까지 4대가 살던 집이 없어지니까 섭섭함을 급할 길 없었다.
지금의 집은 내가 해병대에서 제대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지은 콘크리트집으로, 먼저 집터에서 옮겨서 지었다. 먼저 집터는 논과 채마밭으로 8백여 평이 되었고, 또한 철길 너머로 하루갈이(8000평) 되는 밭이 있었는데, 새집은 철길 너머 하루갈이 밭 끝자락에 새로 짓게 되었다. 그 사연은 이러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매달 내야하는 사친회비가 밀려 아침에 학교 갈 때 사친회비를 달라고 아버지께 말씀 드리면, 주기는 해야 하겠는데 돈이 없는지라, 나를 데리고 이 밭자락 둑길을 지나서 구장(區長)집으로 가서 돈을 꾸어다 주곤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나는 와신상담 하는 격으로 이 밭둑길 옆에다 새로 집을 짓게 된 것이다.
토지공사에서 널울에 아파트터 58만평을 잡고 1만7천 세대를 짓게 되면, 약 6만 명의 새 인구가 늘어나게 되고, 기존 인구까지 합치면 7만 명의 소도시가 생겨날 판이다. 이렇게 도시화 되면 옛날 시골맛은 싹 사라져버리고 오랫동안 터를 잡고 내리 살아오던 마을 사람들은 원주민이란 새로운 딱지가 붙어서 소수주민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장마가 지면 견지낚시질을 하고, 맑은 물속 모래흙에서 기름종개며 모래무지를 손으로 움켜잡던 그 개울은, 구정물 흐르는 도시 하천으로 변한지 오래되었다. 봄이면 산에 올라 진달래 꽃잎 따먹던 그 동산마저도 사라져 아파트 숲으로 변할 것이고, 겨울이면 논에 물을 담아 썰매를 타고 논두렁에 불을 피워 손발 녹이던 논들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5월이면 훈풍에 나부끼던 보리밭의 물결도, 가을이면 잘 익어가던 논의 황금물결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추수 다 마치고 이웃집에 돌리던 고사떡도 앞으로는 옛이야기가 될 것이다.
기차통학 하느라 매일같이 오가던 평내역 간이 정거장마저도 직선화되는 바람에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변한다 해도 천마산만은 우뚝 서서 내 고향 널울을 지켜줄 것이니, 마음 한구석은 든든하다. 서울에서도 바라다 보이는 장엄한 산, 천마산은 남양주 널울의 터줏대감이 될 것이다.
26정보나 되는 종중산마저 절반이나 잘려나가 없어지고. 할아버지, 아버지를 모신 산소마저 옯겨야 할 형편이 되었다. 나는 노후에 천마산 자락에 전원주택을 예쁘게 짓고서, 여생을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고향 땅에서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