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중학교 전학 (8화)
  제2장 청소년기

금곡중학교 전학은 쉽게 이루어졌다. 중학교 1학년 과정은 반 년, 2학년 과정은 두 번이나 다니게 되었다. 신설중학교이고 보니 학생들의 나이차가 심해서 3~4학년씩이나 되었다.

금곡중학교는 1955년 6월 8일 금곡초등학교 건물 한 귀퉁이를 빌려서 개교하였다가, 내가 전학을 하였을 때는 그 이듬해가 되어 새로운 터를 잡아 운동장은 닦는 중이었고, 교실은 건물이 아니라 군용 분대 천막이었다.

천막은 모두 세 개로 1학년에 하나, 2학년에 하나, 교무실에 하나씩이었다. 비바람이 불어닥치면 천막을 받치고 있는 지줏대가 쓰려져서 다시 세워야 했고, 여름철에 뙤약볕이 내리쬐면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한증막이 되었다.
 
새로 닦은 운동장에는 돌멩이가 많아서 삼태기로 돌을 모아 담아서 나르는 일도 학생들의 몫이었다. 운동장 주변에는 나무를 캐다가 옮겨 심고 물을 주고 가꾸기 운동을 했고, 실습으로 양돈을 했기 때문에 아카시아 잎을 60kg씩 따오는 과제도 있었다. 새 건물을 짓고 기와까지 올렸는데, 이 건물이 슬금슬금 넘어가서 나중에는 폭삭 주저앉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고향 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영어 선생님은 김홍준 선생님이었는데, 통역관 출신이어서 영어를 잘 가르쳐 주셨다. 교과서를 일찍 마치고는 로빈손 크루소, 신데렐라 등의 동화책과 영어회화도 가르쳐주셨다.

나는 영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영어 단어를 열심히 암기하고, 공책에는 영어 교과서의 문장을 예쁘게 쓰고, 그 밑에 해석을 달기도 했다. 사전을 찾아 영어 단어장을 만들어, 학교 오가는 길에 단어를 외우느라고 10여리 길이 헛되지 않게 걸어 다녔다. 영어 선생님은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칭찬도 아끼지 않으시고 나를 귀여워해주신 분이다.

수학 담당은 박창순 선생님이었는데, 고향이 와부읍 도곡리였다. 부잣집에서 자라신 분으로 고려대 수학과를 나오셨다고 했다. 나는 수학이 어려워 잘 하지는 못했는데, 이 분은 애향심이 대단하시고 고향사랑을 강조하신 분이셨다. 도곡리에는 조선 중엽의 세도가였던, 박원종(朴元宗)의 무덤이었는데, 선생님과 같은 가문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김동훈 선생님이었다.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나오신 분으로, 문학 쪽보다는 어학 쪽에 더 밝으셔서 국어문법을 철저히 가르쳐주신 분이다. 키가 작고 사리가 분명하고, 총명하신 분으로, 중 3때 담임선생님이셨다. 내가 부탁드리는 책이며, 참고서 등 책들을 서울에서 사다주셔서 항상 고마웠던 분이다. 그때만 해도 금곡에는 서점이 없었다.

한병옥 선생님은 한 분밖에 안 계셨던 여 선생님으로 생물과 음악을 담당하셨다. 원산이 고향이라고 하는데, 예쁘고 똑 부러지는 선생님이셨다. 영어 김홍준 선생님과 연애한다는 소문만 있었지,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늦게까지 교직에 계시다가 몇 해 전에 부천에서 정년퇴직하셨다고 한다. 금곡중학교 1, 2, 3회 여자 졸업생들은 자주 찾아뵙는다고 했다.
 
▲ 금곡중학교 졸업하던 날 (1958. 2.) /뒷줄 가운데가 박창순 수학선생님이고 그 왼쪽이 필자다

역사과목 김송학 선생님은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신 분으로, 키가 9척이시고 스케이트를 잘 타셨다. 역사를 재미있게 잘 가르쳐 주신 분으로, 중학교 때 내가 역사과목에 심취하게 만들어주신 분이다. 이때 나는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모교인 금곡중학교에 와서 역사선생님 하는 게 꿈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김봉산 선생님이셨는데, 젊으신 분으로 걸음걸이를 칼날 같이 걷는 매서운 분이셨다. 고향은 이북 원산이라고 했다. 내외분이 학교 구내에서 사셨는데, 사모님은 아주 젋었고, 다섯 살짜리 아들 홍민이가 있었다.

금곡중학교 기성회장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신 강승구 씨였다. 덕소 출신으로 그 분의 따님 김모 양은 중학교 1년 후배였다.

남양주의 유일한 공립중학교이고 보니, 학생들은 미금면은 물론이고, 진접면, 화도면, 와부면 일대에서 몰려들었다. 당시 남양주에서는 미금면 도농리에 도농고등공민학교(현재 동화중학교), 화도읍 월산리에 배정고등공민학교(현재 화광중학교), 수동면에 수동고등공민학교(현재 수동중학교), 진접면에 사립학교인 광동중학교가 있었다.

금세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에서 최준규, 이근형, 김광신, 나 이렇게 네명이 학교에서 합숙을 해가면서 여름방학 때 입시공부에 정진했다. 친구네 밭에서 감자나 고추를 따다가 반찬을 만들고 밥은 꽁보리밥을 지어 먹었다.

그때는 열성이 대단해서 나는 학교신문도 발행했다. 원고를 모아서 편집하고 등사판에 철필로 써서 프린트해 만드는 신문이었다. 밤늦게 까지 하는 일이지만 모두가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었다.

1회 졸업생은 두 반쯤 되었는데, 졸업할 무렵에는 등록금을 못 내서 중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겨우 60여명만 졸업하게 되었다. 이 중 대학까지 공부한 친구는 모두 네 명으로, 최명수는 한양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국가공무원으로 봉직하였고, 김광신은 서강대 경제학과 1회 졸업생으로 LG그룹에 임원으로 근무하였고, 박필용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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