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15화)
  제3장 대학생활 이야기

어느새 대학 2학년 2학기말 시험도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나는 겨울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특히 세계 여행기는 빼놓지 않고 읽었다. 이때 한참 유행하던 책이 김찬삼 씨의 세계 여행기였는데, 이 책을 읽고 넓은 세상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너무나 위대한 인물같이 부러워 보였다. 당시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6.25 포연이 채 가시지 않았던 때어서, 바깥 세계에 눈을 뜬다는 것은 딴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도서관의 난방은 29공탄의 연탄난로로 했기 때문에, 불이 덜 불었을 때는 추웠고 외풍이 불어대면 연탄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29공탄은 가정용 19공탄에 비해 크기도 하려니와 화력도 좋아서 불이 제대로 붙어 잘 탈 때면 난롯가는 제법 따뜻했다.

사서직 선생님은 예쁘게 생긴 누님 같은 분이었는데, 매일 들락날락 하는 나에게 친절히 대해주셨다. 용원(傭員)으로 일하는 분으로 건국대학교 야간부를 다니는 성실한 대학생이 있었다.

대학생활의 절반이 훌쩍 가버리니 장래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당시 대학생의 고민은 세 가지가 있었는데, 학생지삼고(學生之三苦)라고 했다. 첫째가 병고(兵苦)인데, 곧 병역문제로 현역입영이나 졸업 후 입영이냐, 공군이냐 해군이냐, 아니면 해병대에 지원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고민이었다.

두 번째 고민은 금고(金苦)였다. 한 학기가 금세 가버리고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또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촌의 대학생들은 등록 때가 되면 논밭을 팔거나 황소를 팔아서 등록금을 대야 했다. 그래서 대학건물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렀다. 세 번째는 애고(愛苦)인데 사랑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도서관에 묻혀서 잡다한 정보를 캐냈고, 심지어는 신문에 나오는 퀴즈맞추기에도 정열을 쏟았었다. 매주 나오는 퀴즈를 못 맞추면 다음 주로, 또 그 다음 주로 넘어가면서 상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것 하나를 맞추게 되면 등록금은 고민 끝이다.
 
▲ 다정했던 고 이길흥과 / 서울대 보건대학원 2년 여름방학 때 아깝게도 동해안에서 익사했다

원예학과는 1960년대 초 전국 대학에 몇 군데 되지 않았는데, 교수진이나 시설 면에서는 서울시립대를 추종할 만한 대학이 없었다. 과수원예는 김응룡 교수님이, 채소원예는 김용철 교수님이, 화훼원예는 김준석 교수님이, 조경원에는 박문혁 교수님이, 조경수목은 김정국 교수님이, 작물학은 박찬호 교수님이 담당하셨다.

원예학은 과수원예ㆍ채소원예ㆍ화훼원예ㆍ조경원예ㆍ원예가공 등 크게 다섯 갈래로 나누어진다. 나는 이 다섯 과목 중 어느 것을 전공할 것인가를 골몰히 생각한 끝에 조경원예로 결정하게 되었다. 화훼원예는 시설 재배를 해야 하는데, 오리 고장 널울은 산촌이어서 너무 춥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적합지 못하고 조경원예가 알맞은 것 같았다. 조경원예는 박문혁 선생님과 김정국 선생님이 담당하셨다.

당시 나는 내 가정형편으로는 어림도 없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은 미국유학을 가기로 결심한 것으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미국의 대학들을 뒤져서 찾아낸 것이 코넬대학이었다. 코넬대학은 미국에서 특히 원예학과가 좋은 대학이었는데, 이 대학에는 원예학과가 세분되어 Vegetable Crops, Pomology Floriculture and Ornamental Horticulture 학과가 있었다. 코넬대학 유학을 결심하고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는 열심히 하였고, 대학에서도 영어성적은 항상 A학점이었다.

영어는 권태로 교수님이 담당하셨는데, 그 시간이 재미 있었다. 같은 과 이길흥은 용산고등학교 출신으로 수의학과를 1년 다니다가 원예학과로 전과해 와서 나하고는 이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고향이 천안으로 천안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부친은 천안농고 1회 졸업생으로 당시 천안전매서장이었다.

전매서에서는 자전거로 담배를 판매소에서 배달했기 때문에 자전거가 엄청 많았는데, 나는 여기서 자전거 타는 것을 배웠다.

이길흥과는 방학 때면, 대학도서관에는 친구들의 눈이 많아 공부에 방해가 되므로, 서울 사대 도서관, 고래대 도서관, 건국대 정치대학 도서관(낙원동) 등으로 다니면서 무섭게 영어공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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