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여행 (16화)
  제3장 대학생활 이야기

3학년 2학기가 되자 총학생회장 선거가 10월에 있었는데, 나와 단짝 친구이던 이길흥이 학생회장에 입후보하게 되어 선거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요즘 총학생회장 선거는 현수막이나 벽보를 건물마다 붙이고 정문이나 건물 앞에서 외쳐대는 선거이지만, 그때는 그룹 그룹으로 불러다 술과 음식을 대접해가면서 포섭작전을 하는 것이었다.

후보는 원예학과 이길흥과 농공학과 김근수 두 사람이었다. 상대방 김근수 팀은 엄청난 조직을 가동해가면서 돈을 뿌렸지만, 우리 팀은 순수한 선거운동을 벌였다. 우리 팀의 선거운동은 나와 잠사학과 한상동(현재 농산물검사고 평택소장)이 참모이고, 2학년생들이 운동원으로 뛰었다. 운동원들은 이 후보의 고등학교 후배인 용산고등학교 출신들과 충청도 출신들이었다.

개표결과는 아슬아슬한 패배로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후보자 이길흥, 나, 수의학과 2학년 김세원, 원예학과 2학년 김흥배 넷이서 무전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배낭에 취사도구를 챙겨 넣고 서울역으로 갔다.

이길흥은 집이 천안이어서 서울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플랫폼까지 배웅 나갈 수 있는 출입권을 30원에 넉 장을 사가지고는, 부산행 3등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천안에서 내려 쉽게 역구내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친구네 집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여행준비를 보완해서 같은 방법으로 천안을 출발하여 대구로 내려갔다. 대구의 지리는 누구도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야밤에 기차에서 내려 대구역사 반대쪽으로 담을 쉽게 내려가 싸구려 하숙집에서 눈을 붙이고는, 다음 날 아침밥을 지어먹고 다시 기차를 타고 반야월로 갔다.

반야월은 사과밭이 많은 곳으로 예쁜 이름이었다. 반야월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울 때, 팔공산에서 크게 패하여 장군 신숭겸을 잃고, 왕건은 졸병으로 변장하여 반달이 튼 야밤을 틈타 이곳으로 도피하여 지나간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반야월의 간이 정거장에 내려 과수원을 찾아들었다. 과수원 둘레에는 탱자나무로 잘 둘러싸인 산울타리가 있었지만, 울타리를 따라가면서 침투할 곳을 찾으니 얼마 안 가서 개구멍이 나타났다. 우리 일행 넷은 이 개구멍으로 들어가 잘 익은 사과를 배낭에 가득 채워 넣고, 포식하고는 유유자적 반야월역으로 나와서 기차를 타고 경주로 향했다.

대구하면 사과이고, 경주하면 불국사였다. 불국사역에서 내려 불국사까지 걸어가 절 부근에서 야영준비를 하고 절 구경을 했다. 불국사 입구부터 수목이 울창하고 깊은 연못이 운치가 있었다. 청운교와 백운교가 아름다웠고 다보탑과 석가탑도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둘러보았다.

11월 늦가을인데다가 토함산 자락인지라 밤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우리는 새벽에 토함산의 오솔길을 따라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가 일출을 보기로 했다. 새벽녘 토함산 산마루에 올라서니 더욱 추위를 느꼈지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못 사 마셨고, 석굴암을 보고 싶었지만 보수공사 중이라고 해서 못 보고 아쉬움만 남긴 채 하산하였다.
 
▲ 경주 불국사 옆 연못에서 / 1963년 대학 3학년 때 늦가을

불국사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하면 영도다리였다. 우선 영도다리부터 보고 싶었다. 서울에는 전차길이 철거되었지만 부산에는 아직까지도 전차가 다니는 중이라 전차를 타보았다. 처음 타보는 부산 전차로 부산구경을 하였다. 영도다리는 그때만 해도 큰 배가 지나가려면 다리 상판을 들어 올려서 배를 통과시켰다. 듣던 대로 영도다리는 부산의 명물이었다.

우리는 바다가 보고 싶어 태종대로 향했다. 나는 산골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바다는 나이 스물셋에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다. 참으로 넓고 넓은 망망대해였다. 태종대 바닷가에는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 아주머니들이 있어 고구마ㆍ해삼ㆍ멍게 등을 팔고 있었지만, 나 같은 산골 촌놈이 맛본 것이라고는 고구마뿐이었다. 싸늘한 바닷바람에 따뜻한 고구마가 먹고 싶어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고구마를 사먹기로 했다.

장사꾼 아주머니는 해삼과 멍게도 먹어보라고 하지만, 우리는 돈도 아껴야했고 이런 것들은 먹어본 적도 없어서 사양하였다. 그러나 그냥 맛이나 보라고 하면서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이라고 귀한 손님 대접하듯이 해삼과 멍게를 잘라서 요리를 해주었는데, 처음 맛보는 것이라 도무지 씹히는 것이며 맛이며 이상했다.

우리는 이렇게 일주일간의 무전여행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귀경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수업에 전념하였다.

 
  도서관 (15화)
  식물병리학과 천황산 개간 (17화)
  |71||72||73||74||75||76||77||78||7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