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머리에
  [프롤로그]

새로운 밀레니엄(①천년의 기간 ②지복 천년 ③황금시대)이 열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우리 세대는 20세기와 21세기의 양세기에 걸쳐 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내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인 1960년대에서 90년대인 지난 20세기를 뒤돌아보니 모든 것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되살아난다. 내 나이가 어언 지천명(至天命)을 지내고 이순(耳順)이 지나 그리고 회갑(回甲)과 고희(古稀)를 지나 팔순(八旬)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돌이켜보니 그 사이에 사회의 정신적 사고와 물질적인 모든 것들이 온통 변하였고, 나 또한 시골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4반세기 동안을 자라난 고향 땅을 떠나온 후 지금까지 객지생활을 하면서 너무나도 열심히, 억세게, 그리고 굳세게 살아온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봄이면 동산에 올라 진달래 꽃 따먹고, 초여름이면 천마산 기슭에서 있는 커다란 산벚나무에 올라 새까맣게 달린 버찌를 따먹거나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실컷 따먹어 입술이 새카맣게 되기도 했었다. 장마철이 되어 개울물이 불어나면 물가에서 견지 낚시질을 하고, 햇볕에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개울물을 막나 놓고 미역 감기도 하고, 심심할 때는 양은솥과 된장, 고추장, 파, 쌀 등을 짊어지고 천마산 골짜기에 올라가서 가재랑 피라미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먹고 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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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돈구경 하기가 무척 힘든 시절이어서 매달 내야 하는 초등학교 사친회비도 제 때에 못 내 아침에 학교 갈 때 울면서 아버지께 졸라대면 구장 집에 데리고 가 돈을 꾸어다가 주어서 겨우 내곤 했었다. 앞대(어떤 곳에서는 남쪽지방을 이르는 말) 애들은 양복에 운동화 신고 학교에 다녔지만, 우리 같은 산골 애들은 바지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금곡까지 10여리 길을 걸어 다니던 생각이 떠오른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경춘선 기차통학을 했는데, 한 달치 통학증 사내기도 어려웠었다. 수업료를 못 내면 기말고사도 치르지 못했었다. 기차통학을 하려면 손목시계가 필요했지만 그냥 맨손이었다. 고등학교 입학금은 외삼촌한테 쌀 두 가마를 꾸어다 냈고, 대학 입학금은 진외가댁(할머니의 친정)에서 황소 판 돈을 꾸어다가 납기일이 며칠 지난 다음에야 겨우 낼 수 있었다.

내 고향 ‘널울’은 이제 딴 세상이 되었다. 도시계획 구역에 걸려서 6만 인구가 들어서는 소도시로 변하였다. 이제 뛰어놀던 동산도, 물고기 잡던 실개천도 없어져 갈 판이다.

이 자전에세이에는 과거의 아름답고도 어려웠던 옛 고향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의 무딘 글 재주로 과장도 보탬도 없이 진솔하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이다.

자전에세이 ‘천마산의 품에서’ 연재를 시작하며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머님을 생각한다.
 
최상범  

 
  최상범 약력
  우리 집안의 내력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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