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장례식과 이규도의 ...

공무원 생활을 하다보면 역사의 기록에 남는 사진 한 장의 산증인이 될 때가 많다. 아주 가까이서 본 생생한 역사의 현장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각인된다. 내게 충격을 주었던 사진 중의 하나가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1974년 8월 15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저격을 당해 쓰러졌을 때 당시 나는 행사장의 중간복도 옆에 앉아 있다가 저격 장면을 목격했다.

마침 내 옆에는 유기학 경호과장이 있었는데, 총에 맞고 쓰러진 육영수 여사를 급히 서울대 병원으로 옮기기 위하여 전화를 하였다. 그는 너무 당황하나 나머지 손이 떨려서 전화번호조차 잘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경호과장으로부터 전화기를 빼앗아 대신 전화를 걸어주었다.

그때 영부인이 돌아가신 것이 내 기억 속에 못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은 9일장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장례식 준비를 할 때 문공부에서 추모의 노래를 급히 작사 작곡하였다. 작사는 박목월 선생, 작곡은 김동진 선생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지었다. 그리고 급히 노래를 부를 성악가를 찾는데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기 있는 대중가수에게 추모의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없고, 그러려면 성악가 중에서 찾아야 하는데 신선한 인물이 없었다. 노래만 잘 해도 안 되고 얼굴과 몸매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육영수 여사와 잘 어울리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결국 나는 오페라의 대모 김자경 씨에게 육영수 여사 장례식 때 추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성악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딱 한 사람 있어요.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규도라고 신인 성각가가 있는데, 마침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집에 있지요.”

이규도 씨는 당시 미국에서 벨칸토 창법의 소프라노 성악을 공부하고 귀국한 신예 성악가였다. 김자경 씨는 내가 어떤 성악가를 원하는지 금세 알아들었고, 그러므로 그녀의 소개라면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였다.

▲ 열창하고 있는 성악가 이규도 (1980년대 중반이다)

“그 사람 한번 봅시다.”

나는 더 깊이 생각해보고 어찌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다만 김자경 씨가 소개하는 사람이니까 믿고 한번 맡겨볼 생각이었다.

김자경 씨는 급히 이규도 씨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만나보니 첫 인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체구는 작은 편인데 뛰어난 미모에다 몸매도 좋았고, 조용한 분위기이면서 아주 매력적인 데가 있었다. 특히 잘 드러나지 않는 표정 속에 예술가 특유의 카리스마가 숨어 있는 듯하였다. 그만큼 인상이 강하게 남는 여성이었다. 노래만 잘 한다면 육영수 여사 장례식 추모노래 성악가로는 적격이다.

“좋습니다. 노래를 한번 해보도록 하지요.”

나는 곧바로 이규도 씨와 함께 누상동에 있는 작곡가 김동진 선생을 찾아갔다.

노래를 시켜본 김동진 선생도 이규도 씨의 노래 솜씨의 독특한 창법에 매우 흡족해 하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벨칸토 창법의 진수를 맛보았다.

당시 이규도 씨는 3일 동안 집중적으로 노래 연습을 했고, 곧바로 육영수 여사 장례식날 중앙청 광장 추도식에 나가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 하나로 추도식장은 금세 눈물바다가 되었다.

▲ 육영수 여사 장례식에서 추모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규도 (1974.)

그날 추모의 노래 하나로 이규도 씨는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그 이후 문공부에서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녀는 초청가수로 나와 노래를 불렀고, 그때마다 텔레비전 뉴스를 타면서 점차 인기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김자경 씨와 이규도 씨가 함께 하는 자리를 자주 갖게 되었다. 그 무렵 우리는 자주 어울려 갈비도 먹고 차도 마셨다.

나와 김자경 씨와의 친분은 문공부 사무관 시절부터였다. 오페라 공연이 있을 때마다 김자경 씨는 직접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표를 팔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오페라에 대한 열정이 그런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그런 열정을 가진 김자경 씨를 좋아하였고, 마음속으로 존경해마지 않았다. 가끔 가까운 지인이 김자경 씨에게 오페라 공연 초대권을 부탁하는 경우를 볼 수도 있었는데, 그런 때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하였다.

“직접 사가지고 보러 오세요! 사서 보아야 만이 오페라의 진수를 더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김자경 씨는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