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세상을 떠난 외아들_2 (20화...

준호가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단독 주택에 살았다. 그 무렵 준호는 학교에 갔다 오면 오후에 집 건너편에 있는 패아노 선생 집에 가서 레슨을 받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피아노 선생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레슨을 받지 않아도 된다며 신바람이 나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에서 큰 도로로 나오다가 질주하는 택시에 치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문공부에서 종교를 담당하는 종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낌새란 원래 이상한 것인 모양이다. 덜덜 떨리는 듯한 전화벨 소리에 무심코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댄 나는 몹시 떨리는 아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왜 그래?”
나는 직감적으로 집에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 챘다.

“우리 준호가......”
아내는 차마 그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정신 차려! 똑바로 말해봐! 준호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가 크게 사무실을 울렸다.

“준호가 글쎄, 우리 준호가... 교통사고로......”

아내는 그러면서 준호가 한양대 부속병원에 실려가 혼수상태로 누워 있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택시가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병원 응급실에 들어가보니 준호가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누워있었다. 간신히 숨은 쉬지만 의식불명상태였다.

나는 담당 의사의 손은 잡고 말했다.
“우리 준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나 나는 의사의 눈빛을 보고 절망하였다.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의사는 더 말을 잊지 않았다. 더 들어보았자 준호에 대한 좋지 않은 말만 나올 것 같아 나는 고개를 푹 꺾었다. 순간 내 잎에서 “하느님!”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준호의 상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그 순간에는 의사보다 하느님께 아들의 생명을 구걸하는 길밖에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이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였다.

당시 나는 종교를 담당하는 종무관이었기 때문에 많은 신부님과 목사님, 그리고 스님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도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신부님과 목사님은 내게 그들의 목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당시 나는 천주교 신자였고 내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묵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서 땀 솟아 묵주가 미끌거렸다.

준호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 된지 3일이 되었을 때, 의사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의사는 준호가 택시에 부딪히면서 뇌진탕을 일으켰는데, 머릿속에서 뇌가 썩어가고 있기 때문에 살수 없다는 것이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며 숨만 겨우 쉬고 있을 뿐,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말로는 산소호흡기를 계속 꽂고 있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 3대독자 준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네 딸의 부러운 시선이 인상적이다)

나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라자로마을 이경재 신부님과 상의하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들을 편하게 해주는 길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의사의 말대로 머릿속에서 뇌가 썩어가고 있다면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아내를 설득하기로 하였다.

“우리 준호를 자유롭게 놓아줍시다.”
“뭐라구요! 당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내는 벌벌 떨고 있었다.

“신부님과 상의했는데 그것이 좋겠어.”
내 목소리도 사뭇 떨려서 나왔다.

“안 돼요. 나는 그렇게 못해요.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아요!”

아내는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의사도 절망적이라는 거야.”
“기적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여보, 우리 기적이라는 것을 한번 믿어 봐요!”
아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내가 실컷 울 수 있도록 놔두었다. 울다가 지쳐 진정 기미가 보일 때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움켜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을 하느님이 부르시는 거야. 그러니 하느님 앞으로 보내는 게 좋겠어.”

아내는 말없이 숨죽여 울기만 하였다. 나는 다시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은 뒤 준호가 누워있는 응급실로 들어갔다. 나는 준호의 고사리 같은 손에 묵주를 쥐어주고 같이 손을 잡은 채 기도를 드렸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1981년 8월 31일, 여름의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나는 기도를 다 마친 후 준호의 몸에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냈다. 그리고 나서 응급실을 나오자마자 나는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아들의 장래 미사는 이경재 신부님이 주관하였다.

나는 아들을 화장해서 그 유해를 한탄강에 뿌렸다. 장례식의 모든 일은 친구인 김상배 교수가 앞에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는 한탄강에 배를 띄우고 아들의 유해를 뿌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다. 내가 그 날 쓰러지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 덕분이었다.

아들이 죽고 나서 몇 년 간 아내는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였다. 너무 슬픔이 깊어, 그 캄캄한 우물 같은 고통의 짓눌림 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아내는 가끔 죽은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수심에 잠겨 있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