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 (12)
  제8장 명사들이 보는 이종덕2

이세중 (변호사)

나는 이종덕 씨가 대학생 시절 한때 광화문 주먹패들과 어울려 다녔다는 사실은 안다. 천성적으로 악하지 못한 사람이 그들과 어울렸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는 가끔 의문을 갖곤 하였다. 

단언하건대, 이종덕 씨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명색이 법조인인 내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그의 ‘인간성’은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인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대학생 시절을 풍운아처럼 보냈다. 

다시 단헌하건대, 이종덕 씨는 누구보다 의리가 강한 사람이다. 그가 문화예술제를 망라하여 각계 두루두루 끈끈한 인맥을 맺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의리가 아교질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이종덕 씨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은 의리는 천성적인 것이고, 그런 내면 세계가 밖으로 표출되면서 한때 광화문을 풍운아처럼 누비고 다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주먹패들의 세계에서는 폭력성에 앞서 인간미가 넘치는 낭만이 있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의리는 첫째가는 규범이다. 

이종덕 씨가 대학생 시절 그들과 어울렸던 것은 바로 그 낭만파 의리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주먹패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껴 대학생 본분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나는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나는 이종덕 씨와 아주 오랜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나의 처남(전승우)이 그와 아주 절친한 친구로 지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나의 처가를 자주 드나들었고, 당시 여중생이었던 아내가 “종덕이 오빠! 종덕이 오빠!” 하며 잘 따랐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나이가 든 지금도 아내는 이종덕 씨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아무튼 내가 가까이서 겪은 이종덕 씨는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의리파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모임의 중심에 있으면서, 조직을 만들고 이끌어나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더구나 그는 어떤 일을 할 때나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진행해나가는 강한 추진력 소유자이기도 하다. 

몇 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1999년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이종덕 씨가 점심을 함께 하자며 우리 부부에게 같이 나오라고 특별히 초청을 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그는 내게 말했다. 

“세종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하여 광화문벨트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광화문문화포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변호사님이 그 모임의 회장이 되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광화문문화포럼 발기인모임

약간 더듬거리는 말투였지만, 이종덕 씨의 그런 어투는 매우 진지 하였다. 달변인 사람보다 오히려 신뢰가 더 가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문화인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나는 변호사라는 내 직업이 문화포럼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 청을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아닙니다. 광화문문화포럼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뿐만 아니라 각계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화예술계 인사 중 어느 누구를 회장으로 세우게 되면 나중에 말이 많을 것입니다. 미술이면 미술, 음악이면 음악, 무용이면 무용 등 회장이 소속된 분야에 따라 편파적으로 모임이 운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립적인 인물로 이 변호사님을 추대하려는 것입니다.”

이종덕 씨는 그동안 참 많이 생각한 후에 나를 회장에 추대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다시 이렇게 짐짓 뒤로 빼자, 이번에는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이종덕 씨를 지원하고 나섰다. 

“종덕이 오빠가 모처럼 부탁하는 건데 들어줘요. 일은 종덕이 오빠가 다 할거고, 당신은 그냥 회장으로 있으면 되는 건데 뭘 그래요.”

결국 나는 이종덕 씨의 강권과 아내의 강력한 압력에 못이겨 광화문문화포럼 회장에 직접 나서게 되었다. 

2000년 1월 정식으로 광화문문화포럼이 창립될 때 이종덕 씨는 나를 적극 회장으로 추천하였다. 이미 그것은 미리 정해진 수순이었고, 나는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출되었다. 

나중에 아내가 이야기해서 안 일이지만, 이종덕 씨는 미리 아내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고 나서 점심식사에 우리 부부를 초청했던 것이다. 내가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주도면밀하게 사전 계획을 세워 나를 광화문문화포럼 회장 자리에 앉힌 것이었다. 

사실 광화문문화포럼은 이종덕 씨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고, 기획단계에서부터 창립이 될 때까지 그의 강력한 추진력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그는 나를 앞세우고 자신은 운영위원으로 뒤에 숨어서 모든 일의 진행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종덕 씨가 하면 어떤 일이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의견을 따르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가만히 따져보니,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야말로 ‘예술경영의 CEO'로 알려진 이종덕 씨의 진정한 경영철학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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