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쁨이 차오르게 하는 사람 (13)
  제8장 명사들이 보는 이종덕2

 
이수성 (전 총리,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지난 2003년 초여름의 일이었다. 종덕 형의 부탁으로 나는 제주도에 가서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 최고경영자과정 특별강연을 한 적이 있다. 수강생들이 대부분 예술인들이라 주로 예술과 관련된 견해를 피력하였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저녁 술자리를 가질 때였다. 종덕 형이 내 옆으로 다가와 그 특유의 눌변으로 말하였다. 

“이 총리! 우리나라는 예술을 많이 발전시켜야 합니다.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것은 예술밖에 없습니다. 예술이야말로 우리의 훌륭한 자산입니다. 그걸 개발해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쟁이나 경제에만 관심이 있지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백번 옳은 이야기였다. 종덕 형은 평소 나를 ‘이형’이라고 즐겨 부르는데, 내가 총리를 지낸 다음부터는 ‘이 총리’와 ‘이형’을 같이 쓰곤 하였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총리’라고 할 때는 공식석상 또는 사무적인 일을 할 때 주로 쓰는데, 나는 그것보다 ‘이형’이라고 친근감 있게 불러 줄때 더 기분이 좋다. 

사실 종덕 형은 나보다 한 살 연배이고, 개인적으로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지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와 나는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40년 이상 친교를 맺고 있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다닐 때에는 연세대학교 친구들을 많이 두고 있었는데, 신촌에 놀러가서 친구들로부터 종덕 형을 처음 소개받았을 것이다. 너무 먼 옛날 일이라 기억이 희미해 처음 만났을 때의 인연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는 대학생 때부터 유명인물이었다. 그는 친구들 간에도 의리가 강했는데, 특히 내가 좋아했던 것은 그의 인간적인 면이었다.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종뎍 형에게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풍긴다. 그는 잘난 체 하지 않으면서 제일 잘난 사람이다. 중국 고사성어에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즉 주머니 속의 송곳은 곧 드러난다는 말인데, 그는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곧 눈에 띈다. 바로 그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 

종덕 형의 인간적인 매력은 그의 가슴속에 숨어 있는 열정에서 뿜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그 열정이 행동력을 뒷받침하여 무슨 일을 할 때 강력한 추진력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 이수성 전 국무총리

용산 미군기지를 옮긴다는 말이 처음 떠돌 때의 일이었다. 어떤 모임에선가 종덕 형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이형! 저 용산기지 자리에 예술문화회관을 지었으면 참 좋겠는데, 정부에서 말을 들어먹어야 말이지요. 서울은 한강을 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데, 그 좋은 한강변에 문화예술시설은 만들지 않고 온갖 아파트만 짓도록 허가를 해주니 참으로 한탄스럽소. 이번에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한다고 해서 정부당국자들에게 슬쩍 이야기를 비쳤더니 다른 말들만 해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종덕 형의 한숨소리가 그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술기운이 벌겋게 올라 있었다. 그때 나는 그의 가슴에 들어앉은 숯검정같은 열정을 보았다. 불을 지피면 곧 이글이글 타오를 것 같은 열정이 점화의 때를 기다리며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열정은 종덕 형이 예술의 전당 사장을 하면서 곧 점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나는 총리로 있을 때였는데, 그가 초청하면 부득이한 사정이 아닐 경우 거절을 하지 못하고 달려가곤 하였다. 그는 상대가 거절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어떤 어떤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었다. 조용하게 필요한 이야기만 하는데, 마력처럼 상대를 빨려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술의 전당 행사를 할 때마다 종덕 형의 초청에 의해 자주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명사 부인들을 행사 도우미로 세우기도 하였는데, 그 덕분에 아내(김경순)와 함께 가기도 하였다. 아내는 예술의 전당 돕기 후원회 부회장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인연이 깊었다. 

또 하나의 인연은 종덕 형의 아내가 내 친구의 사촌여동생이기도 해서 나와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에 있다. 그는 또한 풍부한 아이디어맨이고,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지녔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갈등이 심할 때, 그는 두 그룹의 화합하는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 음악의 앙상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정지용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향수’를 부르게 하는 등 문화예술계를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종덕 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신념이 있으면 행동력이 따라준다’는 말을 거듭 마음 속으로 되새기곤 한다. 예술에 대한 남다른 신념이 오늘날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 CEO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나는 종덕 형에 대하여 남다른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 그를 볼 때마다 성실과 관용과 조용한 용기의 표상을 보곤 한다. 그는 많은 사람을 충족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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