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꽃피운 공연예술 (14)
  제8장 명사들이 보는 이종덕2

임헌영 (문공회 상임이사)

사람은 누구나 하고자 하는 욕망과 뜻을 이루고자 하는 성취욕이 무한하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화려한 공직생활을 탈 없이 마감하고 조용히 되돌아보며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자서전을 내는데, 가까이에서 본 이종덕의 인간성과 그동안의 주요 활동상을 간단히 소개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고 좀 망설이다가 한편 고맙게 생각이 되어 쾌히 수락하였다. 

아마도 내가 문예진흥원과 서울예술단에서 가까이 모시고 근무하였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문예진흥원 상임이사 재직기간과 서울예술단 단장으로 있을 때 약 5년을 가까이 모시면서 이전에 몰랐던 여러 측면을 알게 되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마당발’이라고 할 정도로 각계 다방면으로 지인들이 많다. 

그는 바쁜 가운데도 매일 아침 헬스를 비롯하여 조찬회 모임에도 꼭 참석하고 있으며, 공연이나 전시 등 각종 행사에도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친지들의 애경사에도 가급적이면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불참 시에는 축의금을 꼭 보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가장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그는 대체적으로 누구의 부탁을 받으면, 일단 부탁을 받은 즉석에서 전화로 직접 해결해준다. 만약 전화로 해결이 안될 경우 수차례 걸쳐 끝내 해결해주는 인정미를 볼수 있다. 

그밖에 설사 불명예스럽게 퇴직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앞장서서 관계기관과 협의하여 직장을 알선해주고, 직접 채용하여 근무할 수 있게 해준 사례를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주요 활동상황을 말하면 특히 문예진흥원에 근무할 당시 그는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지금도 유형적으로 뚜렷하게 남아있는 몇 가지 업적 중 그 추진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 임헌영 [출처 ; news300]
 
문예진흥원이 위치하고 있는 대학로에 있는 마로니에공원은 그의 큰 공적이라 할수 있다. 당시 월간잡지 출판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그는 앞장서서 문공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하여 <객석>을 출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예음>의 대표 최원영 씨가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당시 약 5천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마로니에 ㅠ공원을 조성해주었다. 

또한 현재의 예총건물의 확보에도 크게 공헌한 바 있다. 그 당시 이 건물은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건물이었다. 그 무렵은 대학로 거리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해야 한다는 문화예술계 여론이 비등할 때였다. 

마침 자동차공업협회의 전무로 있던 임종도 씨가 그의 연세대학교 대학원 최고위 과정 동문이었다. 그는 임종도 씨에게 자동차공업협회를 강남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예총이 들어와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그리고 당시 조경희 예총회장과 협의하여 서울시 일부 보조비와 문화진흥기금 등으로 예총을 자동차공업협회 건물로 옮기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나는 58세에 문예진흥원을 정년퇴직하였다. 그런데 한국방송공사 소속인 ‘88서울예술단’이 해체되고 나서 재단법인 서울예술단으로 창단되면서 그는 정년이 58세인 정관을 61세로 개정하기까지 하여 나에게 사무국장의 직책을 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그를 단장으로 모시며 마지막 공직생활이란 신념으로 약 3년간 열심히 일한 바 있다. 

당시 서울예술단 예산이 28억 원이었는데, 그 다음해에는 25억 원, 그 다음은 22억원, 그리고 19억원으로 매년 공익자금 지원이 축소되었다. 반면 서울예술단의 공연 횟수는 ‘88서울예술단 시절인 38회였던 것이 재단법인 서울예술단으로 발족하면서 연간 총 128회를 기록하였다. 따라서 국, 공립예술단을 제쳐놓고 대전엑스포 개, 폐막식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종덕 단장은 끈질길 노력과 상상을 초월하는 열정으로 이 같은 공연예술의 꽃을 피운 것이다 .

그동안 공직생활을 회고하면 서울예술단 사무국장 3년 동안 나는 가장 열성적으로 일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모두 이종덕 단장 덕분이었다. 그 이후 나는 또한 국악의 해, 미술의 해, 문학의 해, 세계연극제 등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문공회 상임이사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모두 그의 덕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한시도 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으며, 여러모로 존경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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