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나이>라 부르고 싶은 그 사람 (16)
  제8장 명사들이 보는 이종덕2

차범석 (극작가)

이종덕 씨의, 아명은 ‘쫀득이’였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말투에 아직 일본말 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뒤늦게 들었을 때 ‘쫀득이다’라는 형용사가 떠올랐다. 음식을 먹을 때 쫀득거린다는 말이 있다. 쫄깃쫄깃하다는 말일 수도 있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의 성품이 그렇게 쫄깃거리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경우란 그렇게 흔하지 않을진대 이종덕 씨의 경우는 바로 그 말에 해당된다고 혼자서 웃었다. 

이종덕 씨는 얼핏 보기에 무겁고 무뚝뚝한 게 거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달막한 키에 어깨가 쫙 벌어져 있고 얼굴은 언제나 홍조를 띤 데다가 면도한 자리가 유난히 푸르스름하여 털이 많을 것 같은 짐작에서 쉽사리 가까이 갈수 없는 타입이다. 어찌 보면 일본 사무라이 후예 같기도 해서 친근감이 덜 간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이종덕 씨와 나는 대학교 동문이며 그는 문화공보부에서 오랫동안 봉직한 후에도 문예진흥원, 예술의 전당,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등 주요 관변단체에서 30여년을 보낸 관계로 공식석상에서는 자주 만났지만 단 한 번도 무릎을 맞대고 술잔을 나눈 적이 없었다. 내 천성이 관(官)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그렇게 목과 어깨에 힘주는 타입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해방이후부터 우리들이 살아나온 흔적은 대부분 관(官)이 차지했고, 민(民)은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다닌 꼴이었다. 표어를 내다 붙이고, 플래카드가 걸리고, 무슨 무슨 달이라는 행사로 시작되고 행사로 끝이 나는 우리네 살림이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문화예술계는 관하고 가까이 해야 예산도 타낼 수 있고, 출세도 하고 국회의원도 실례가 있어 관(官)의 눈치 보기나 충성이 곧 출세가도로 통한다는 현실에 눈이 먼 사람도 있었으니 그 이상 얘기를 한들 무엇하랴.

그런데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종덕 씨와 나는 공교롭게도 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늘어났다. 그러는 동안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면사(裏面史)를 알게 되자 나는 스스로 낮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 차범석 선생 등단 50주년 및 희수연을 삼청각에서 치른 후 / 아랫줄 가운데가 차범석 선생이고, 바로 그 위가 필자다

이종덕 씨는 처음 다르고 두 번째 다르고 세 번째도 다르니, 이를테면 씹을수록 감칠맛 나는 사람이 아니던가. 쫀득거리는 인절미 같고, 갑오징어회 맛 같고, 회냉면 면발 같은 인상이 새삼 놀라웠다. 그것은 첫째로 부지런한 생활철학과 남의 일을 돕는 인생철학과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을 암탉이 알을 품듯이 감싸주는 인간 냄새가 바로 그 매력의 근원임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그 인간냄새가 지나쳐서 여성들을 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없진 않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주간지에 오르내릴만한 스캔들은 없었으니 이종덕 씨의 대사회 철학은 합격점을 줘도 무방하리라.

쫀득거리는 인간미의 주인공 이종덕. 사회각계각층에 친구가 있고 안면 있는 지인이 많다보니 마당발이 될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부귀영화를 챙기는 일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는 필경 의협(義俠)의 사나이가 분명하다. 

나쁘게 말하면 일본의 조직폭력계에서 하나의 신조로 삼는 의리(義理)와 인정(人情)이 그의 핏속에 흘러내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환히 웃는 얼굴과 푸른 빛도는 구레나룻에서는 언제나 따스한 입김이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니 그 누가 그를 마다할 것인가. 

어쩌다 술자리에서 지켜보면 이종덕 씨는 상대 파트너와 조용히 제 자리에서 스탭을 옯기는  춤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만약에 내가 그의 파트너가 되었다면 그의 뜨거운 입김과 까칠까칠한 면도자국에 숨이 막히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추하거나 천한 작태가 아니라 침묵속의 교류라는 사람과 사람의 정일진대 그 누가 이종덕 씨를 ‘푸른 수염의 사나이’라고 욕할 것인가. 

이종덕 씨는 사내 냄새가 진한 사람이다. ‘사나이’가 넘쳐서 ‘싸나이’가 제격인 남자다. 의리에 살고 인정에 웃는 그의 인간성이 오랜 관(官) 생활에서도 닳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마르지 않은 정의의 샘물을 넉넉하게 내뿜고 있는 그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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