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길만 걸어온 행복한 남자...

강선영 | 무용가, 태평무 전수관 이사장

한눈 팔지 않고 오직 자기가 가야할 길만 굳건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가 지켜본 이종덕 씨는 오직 한길, 예술행정 분야에만 종사해온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행복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글을 쓰다 보니 편의상 ‘이종덕 씨’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그렇게 불러본 적이 없다. 나는 그가 문화공보부에 근무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그가 ‘주사’일 때는 ‘이 주사’라고 불렀고, 그가 국장일 때는 ‘이 국장’이라고 불렀었다. 서울예술단을 이끌 때는 ‘단장’으로,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 있을 때는 ‘사장’으로 불렀으며, 지금은 단국대학교에 나가고 있으니 당연히 ‘교수’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종덕 씨 역시 내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명칭을 바꿔 불렀다. ‘단장님’ ‘의원님’ ‘이사장님’ 등...... 그러나 사석에서는 간혹 ‘누님’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부를 때 더 정겹고 듣기에도 좋다. 나도 그를 남동생처럼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친하게 지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식으로 호칭을 불러 서로 깍듯한 예의를 지키기도 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종덕 씨가 문공부 주사로 있던 시절 약 1년간 내 차를 타고 출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홍제동에 살고 나는 홍은동에 살았는데, 매일 아침 시내로 나오는 길에 그를 태워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말이 많아 같은 차로 출근하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 강선영 (무용가) [출처 ; mbc tv 캡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오해의 소지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출근 시간과 장소가 그와 거의 같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예술행정을 맡은 그와 예술가인 나의 입장이 남들에게 오해를 받게 하기 쉽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이종덕 씨는 공직 수행에 있어서 매우 정직한 사람이다. 그는 공사를 분명하게 구별하였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 받는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다. 예술계처럼 말 많은 데도 드물다. 그런 곳에서 공무원으로서 직분을 다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공정하게 일을 수행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972년에 나는 이종덕 씨가 인솔자로 나선 세계 24개국 순회공연예술단에 참여하였다. 그때도 그는 예술단 개개인을 참으로 마음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까지 그는 ‘72’회를 이끌었으며, 나도 그 회원이니 참으로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종덕 씨의 둘째 딸(이상은)은 이화여자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시작했는데, 1년 후 한국무용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살풀이를 배우기 위해 이매방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어디선가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때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고전무용을 하겠다는 딸이 있다면 당연히 사전에 내게 상담을 했어야 했는데, 그는 일언반구 그런 말이 없었던 것이다.

▲ 강선영 씨와 이종덕 교수

그동안 나와의 친분정도라면 이종덕 씨는 딸이 고전무용을 하겠다고 할 때 태평무를 권유했어야 하고, 당연히 내 제자로 들어오게 주선을 했어야 마땅하다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아니, 그것은 나의 욕심이었다고 해야 옳다. 아무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2003년 6월에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태평무 전수관에서 전통무용 경연대회를 주관하였는데, 거기에 이종덕 씨의 둘째 딸이 참가하였다. 참가 종목은 살풀이였는데, 일반부에서 대상 다음인 금상을 받았다. 대상은 대통령상이고 금상은 문화관광부장관상이었다.

그때 이종덕 씨 부부도 와서 내게 둘째딸을 인사시켰다. 나는 대상이 아닌 금상을 준 것이 조금 미안했지만, 심사는 공정하게 실력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주 잘했다. 이번엔 금상이었지만, 다음엔 대상을 타도록 하여라.“

나는 이종덕 씨의, 둘째 딸을 이렇게 위로해주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오래 전에 나를 찾아와 고전무용 하는 딸을 인사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이종덕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대회에 참여하여 만나게 되자, 그때서야 인사를 시켰다. 이처럼 그는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이다.

이종덕 씨는 융화정책을 잘 써서 적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친구가 많은 그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나도 그의 오랜 친구의 한 사람으로서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임기를 끝내면서 이종덕 씨는 예술행정의 일선에서 떠났다. 이제 우리 예술계는 ‘제2의 이종덕’을 기다려야 하는데, 과연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