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멋쟁이 신사 (10)
  제8장 명사들이 보는 이종덕2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

인간 이종덕! 그는 한마디로 누구나가 다 부러워하는 ‘보람찬 인생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외길로 한평생 매진할 수 있었고, 그 소중한 것들을 뒷받침 하여 꽃피운 전문행정관료로서, 국가예술발전에 크나큰 공을 세운 대표 공로자이다. 그러면서 인간적으로 주위의 모든 문화예술인은 물론 각계각층의 사랑을 받는 외롭지 않은 거인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67년 <서울신문> 정치부에서 총리실과 공보처 출입을 시작한 경력 2년의 새내기 기자시절이었다. 당시 공보처(장관 홍종철) 연예계 주사로 갓 부임한 이종덕 씨는 기자인 나에게 다소 거만스러워 보이는 관료였다. 하지만 호탕하면서도 행동반경이 큰 그는 나름대로 수더분한 매력을 지녔고, 두주불사의 성품이 젊은 기자들과 쉽게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연예계를 주름잡는 그를 통해 내가 당시 인기 최고였던 가수 이미자를 비롯하여 많은 정상급 연예인들과 어울리는 반(半)문화인이 된 것도, 아마 그와 자주 어울린 탓이었으리라. 

나의 출입처가 다음에 국회로 바뀌면서 사이는 다소 멀어졌지만, 국회 문공위 회의가 있을 때면 국회에서 가끔 옛정을 나누는 우정이 계속되었다. 당시 나는 국회 문공위 출입기자였으므로 그가 하는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1980년 민정당 창당과 더불어 제11대 국회에 진출하게 된 나는 소속이 문공위에 배속되면서 공보처, 문화부 직원들과의 관계가 더욱 활발해졌다. 제 13대 국회에서는 문공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국정감사 등으로 또한 이종덕 씨와 만나게 되었다. 
 
▲ 이민섭 문체부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imbc 캡처]

제14대 국회가 시작된 다음해인 1993년 당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김영삼 문민정부의 방침에 따라 내가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합친 ‘문화체육부’ 초대 장관에 취임하면서 이종덕 씨와의 인연은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취임하고 보니 그는 어느새 문화공보부를 더나 서울예술단 단장으로 봉직하고 있었다. 그 후 예술의 전당 사장을 거쳐 다시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활동하면서 그 화려한 문화예술행정의 불꽃을 태웠다. 

내가 4선 의원으로 오래 정치를 하면서도 이종덕 씨와의 접촉과정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인간관계를 빠뜨린 것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나와 본이 같은 전주 이씨 종친인데, 그것을 간과한 것이다. 15년간의 언론인 시절에 나는 종친 관계를 소홀히 하였다. 그러다가 정계에 진출하면서 종친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그때 그가 종친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종친들 중에는 나를 후원하는 몇 개의 모임이 있는데, 공직자들 중심의 <강촌 이화회(江村李花會)>에 이종덕 씨가 뒤늦게 동참하면서 함께 활동하는 기쁨을 누렸다. 내가 원내 생활로부터 벗어난 1988년 이후 나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그는 그 회장직을 맡아 최근까지 나를 따뜻하게 도와주고 있다. 

중간에 공백이 있긴 하였지만 37년간 꾸준히 이어져온 우리의 인간관계는 이제 ‘유종의 미’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화려하게 여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당차고 결단력 있으나 결코 거만하지 않고 폭넓은 포용력과 수더분한 인간미를 지닌 이종덕 선생은 우리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고, 그를 알고 있는 누구의 가슴속에도 훈훈한, 영원한, 그리고 밝게 비치는 촛불이 되리라 믿는다. 

지금도 바바리코트의 옷깃을 세우는 등 언제나 멋을 잃지 않고, 힘있게, 젊게 살아가는 이종덕 선생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멋쟁이 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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