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연인 이종덕 (11)
  제8장 명사들이 보는 이종덕2

이세기 (소설가, 언론인)

이종덕 사장은 움직이는 사람이다. 사람이 셋만 모여도 무엇인가 해야 할일을 찾고 하나의 일이 정해지면 주저 없이 이를 추진하여 진행시킨다. 경조사는 물론 그 많은 사적, 공적 모임에 나가고 전날 아무리 술을 마셔도 다음날 새벽 조찬에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절륜의 건강 탓도 있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한다는 강한 책임감 때문이다. 

이종덕 사장에 대해서는 부산 국제영화제와 핸드폰, 최현 선생의 병실 미사, 울산과 홍어회, 나의 출판기념회에 얽힌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즐거운 추억담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에는 광화문문화포럼과 허행초 모임 등 주로 공직인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 이세기 [출처 ; 교보문고]      
내가 이종덕 사장을 만난 것은 1970년대 초 그가 문공부 보도과에 군무할 때다. 지금은 미국에 가 있는 무용평론가 이병임의 소개로 만난 후 그가 문예진흥원 상임이사 시절 소설가 서기원 원장과 신문사에 들리면 잠깐씩 마주쳤고, 본격적으로 그의 패거리가 된 것은 1996년 무용가 최현 선생을 따라 허행초 모임에 가면서부터다. 

그는 많은 모임을 만들었고, 내가 아는 모임만도 서울 예장로타리클럽, 낭만파클럽, 광화문문화포럼과 허행초 모임이 있다. 낭만파클럽은 각박한 현대 도시생활에서 낭만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그의 친구인 정홍택 전 영상자료원 원장과의 합동작품이고, 광화문 문화포럼은 그가 사장으로 있던 세종문화회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세종로에서 ‘광화문 시대를 연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세중 변호사를 대표로 내세운 광화문 문화포럼은 지난 3년여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세종문화회관 소연회실에서 조찬과 함께 명사 초청특강으로 이루어진다. 초청강사만 150여명을 넘은 걸 보면 명실상부한 지성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허행초 모임은 1994년 12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최현 무용발표회 이후 최현 선생이 춘 <허행초>를 보고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은 초기에는 수시로 또는 간간히 모이다가 지난해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그 전까지는 술자리나 벌이던 것을 차범석 선생 댁에서 가진 2000년 신년모임에서 우리는 새 세기를 맞아 뭔가 모임의 뚜렷한 족적을 남기자는 결의에 따라 ‘호행초상’을 제정하게 되었다. 문화예술분야에서 남모를 공적을 쌓아온 숨은 인물을 찾아 해마다 연말에 상을 수여하고 허행초의 정결한 정신을 기리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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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제1회 수상자는 언론사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문화예술분야에서 다양한 인맥을 형성해온 삼성문화재단 손기상 고문이 받았다. 2회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정착시킨 김동호 위원장, 3회는 월간, <춤>지를 한 호도 결간 없이 발행해온 조동화 대표, 이번 제4회는 한국음악사를 인물로 조명한 책을 내는 등 중요한 행사의, 명사회자로 알려진 한상우 음악평론가를 선정했다. 

1회와 2회까지는 그가 세종문화회관 사장 시절에 이루어진 만큼 보도자료나 초청장, 상패를 만드는 모든 진행에 무리가 없었다. 우리는 때때로 사장실에 모여 세종문화회관 운영, 시립 산하단체 공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차범석 선생 연극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를 삼청동 삼청각에서 떡 벌어지게 펼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 <노닐며 스러지며 숫구치며>의 대본과 구성을 맡는 등 그가 있는 사장실은 문화예술인들의 활기찬 아지트였다. 

지지난 여름, 최현 선생이 돌아가시자 우리는 상을 관리하고 앞으로 또 다른 할 일을 도모하기 위해 기본 재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연회비를 걷기 시작했다. 총무 격이던 한용외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발탁된 후 그 후임으로 당시 이실 전무(현재 삼성문화재단 부사장)를 내세워 지금은 이실 부사장이 허행초의 살림을 관장하고 있다. 

멤버는 대표인 차범석 선생을 비롯, 김수용, 김동호, 최만린, 이태주, 이종덕, 손기상, 이만익, 한용외, 이실, 원필녀, 박윤자, 김윤철과 이만익의 부인 김대화 등 나까지 모두 15명이다. 한달 중 마지막 월요일에 인사동 이모집에서 만나서 우리는 고인을 추모하는 술 한 잔을 따라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른 약속이 있어도 이 모인에는 전원이 열심히 출석하는 것이 자랑이다. 

사람들은 그의 사나이다운 겉모습만 보고 곧잘 화려하고 번다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는 그것은 그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면서도 어느 한순간엔가 그것이 아니라는 대답이 보이면 이를 매정하게 뿌리치는 냉엄성과 식물적인 결벽증이 심한 편이다. 그러니까 싫은 것도 싫고, 좋은 것도 좋은 것이다. 그 대신 옳은 것의 편을 들고 인정할 것은 인정할 줄 안다. 모든 자리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전형적인 보스기질도 그만의 특징이다. 

그는 만인의 친구이자 애인이다. 전에는 속물취와 지성적인 양면이 있었으나 날이 갈수록 시속기를 배제하고 지적인 분위기에 경도되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사는 동안 허점 없는 계획들이 역행하는 것을 경험했고, 걸핏하면 등을 돌리는 얄팍한 세태에 질리다보니 사람다움의 격조는 지성의 분량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모임에 게으른 편이지만 그가 오라는 자리나 의논하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없으면 되는 일도 없고, 신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있어야만 모든 자리에 활력이 치솟고 생동감이 되살아난다. 

이제는 사장이 아니라 교수가 된 그를 굳이 ‘사장’으로 부르는 까닭은 70, 80년대만 해도 진정한 석학들이 있고 그들은 당연히 선모의 대상이었으나 요즘은 아무나 교수이다 보니 흔해 빠진 교수 호칭보다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이다. 또 그것은 그가 문화예술계 실무에서 언제나 현역으로 남기를 바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계획해야만 어울린다. 그의 앞날이 더욱 창창하여 더 많은 일들이 추진되고 그런 가운데서 그의 만년이 싱그러운 내면의 향기로 꾸며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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