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일 하는 사람 (7)
  제7장 명사들이 보는 이종덕1

봉두완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 회장)

나는 이종덕 씨를 ‘이형’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도 그냥 편하게 이형이라는 호칭을 그대로 쓰고 싶다.

나는 올해로 33년째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에서 일하고 있다. 제4대 회장을 지낸바 있고, 이경재 신부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나고 나서 김화태 원장신부가 대를 이어받은 후부터 제7대 회장으로 재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형 역시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으며, 운영위원장을 맡은 지도 벌써 15년 이상의 연륜이 쌓였다. 그러므로 회장인 나와 운영위원장인 그와는 그 연륜으로 봐서도 명콤비인 셈이다.

‘명콤비’라고 하니까 내가 좀 쑥스러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는 회장보다 운영위원장에 의해 실무적인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나는 그저 허울만 회장일 뿐이고 모든 일은 이형이 도맡아 진행한다. 그러니 둘이서 대등하게 어울려 일을 썩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 ‘명콤비’라고 할 때 좀 어폐가 있는 것이다.

어차피 속내를 밝히는 자리라면, 솔직하게 내 심정을 털어놓고 싶다. 나이로는 내가 이형보다 한살 위지만, 사실 그는 나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미덕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형은 한마디로 ‘행동하는 양심’이다. 그는 숨어서 일을 하며, 그 일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의 공로로 돌릴 줄 안다. 그리고 그 모든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각한다.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 일만 해도 그렇다. 운영위원장인 이형이 모든 일을 진행하면서, 정작 생색을 내야 할 자리엔 나를 내보낸다. 회장이니 앞에 나서야 한다며 그가 내 등을 마구 떠미는 것이다.

간혹 이형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일로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얼마 전 그러니까 2003년 10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성 라자로마을에서 10시 미사를 끝내고 났을 때였다. 성당문을 나서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사를 보려고 한 시간 전에 성당으로 들어설 때도 없었던 플래카드가 성당 앞마당에 떡하니 걸려 있는 것이다.

‘축! 봉두완 회장 칠순잔치’
 
▲ 독일 프랑크프르트에서 세계 나환자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개최하고 / 왼쪽부터 이종덕 교수, 김수환 추기경, 레만 독일 추기경, 봉두완 라자로마읍 돕기회 회장

나는 플래카드에 적힌 글을 읽다가 적이 당황하여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플래카드는 그렇다 치고 성당 앞마당에는 어느새 천막이 쳐져 있었고, 그 안에 잔칫상이 차려져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라자로마을 나환자들과 그 가족들 300여명이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여 있었다.

사전에 조그만 귀띔이라도 주었다면 나는 그리 황당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런 잔치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내가 극구 말렸겠지만, 그래서 비밀리에 일을 추진했다는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비밀리에 이루어진 칠순잔치 이벤트는 모두 이형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였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하여 미사 전에는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다가 미사가 진행되는 그 짧은 시간에 성당 앞마당에 잔치 마당을 푸지게 벌여놓은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잔칫상 앞에 앉게 되었고, 그야말로 황망한 순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술잔을 받았다. 이형은 내가 손사래를 치며 극구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극구 술잔을 올리고 넙죽 엎드려 절까지 하였다. 근 순간 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 쩔쩔 맬 수밖에 없었으며, 어디론가 달아나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 일생을 두고 그렇게 낮 뜨거워 본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줏대가 없는 사람이어서 금세 얼굴에 환한 웃음이 돌았다. 잔칫상을 물리고 나자 곧바로 나환자와 그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꽹과리를 치고 춤을 추며 농악놀이를 펼치는데 그 흥겨운 가락에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이었다.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에 관여한지 33년이 되었지만, 나는 그날처럼 즐거워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나환자와 그 가족들이 신나게 먹고 즐겁게 노는 것을 보니 감격에 겨워 갑자기 꽉 메어오는 것이었다. 마치 무엇을 먹다가 가슴께에서 걸리기라고 한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해오기까지 하는 그런 감격을 맛보았다. 감격이야말로 기쁨을 뛰어넘어 즐거운 고통임을 알게 해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무튼 이형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나는 그 감동을 받을 줄만 알았지, 베풀 줄을 모른다. 내가 앞으로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베풀 줄 아는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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